국립군산대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초청 '명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성료국립군산대는 12일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초청해 '명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를 성황리에 개최했다./사진=국립군산대 제공[베리타스알파=박소현 기자] 국립군산대는 12일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초청해 '명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를 성황리에 개최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행사에는 박규연 자율전공대학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많은 학생과 교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고도원 이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아침편지문화재단의 비전과 주요 활동을 소개하며,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22년 동안 꾸준히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책읽기와 글쓰기의 중요성과 연결지었다. 그는 "책읽기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열고 삶을 성찰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또한 "진정한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독자에게 진실된 감정을 전달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글쓰기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소통하는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고 이사장은 아침편지문화재단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정서 함양과 삶의 질 향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독서와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아침편지문화재단은 국민의 정신 문화 진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꿈을 가진 젊은이를 위한 장학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고 이사장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것이 결국 사회의 균형적 발전을 이끌어낸다"고 말했다.고 이사장은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일종의 정신적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진솔한 글을 전하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긍정적으로 시작하고,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 고 이사장은 "아침편지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성장하고, 그들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도원 이사장은 22년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를 "책읽기와 글쓰기가 나에게 주는 힘이 크기 때문"이라며, 글쓰기를 통해 얻은 교훈을 나누었다. 그는 '절대고독', '더 사랑하고 싶어서'와 같은 책을 집필하면서 얻은 통찰을 공유하며, 글쓰기에서 중요한 점은 '진심'을 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좋은 글은 화려하거나 과장된 문장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과 성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글을 쓸 때 자신만의 명상법과 심리적 접근법을 활용하는 등 독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고도원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미래 인재로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뢰를 바탕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고 조언했다. 또한, 사회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며, 학생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전적인 목표를 세울 것을 권장했다.국립군산대는 2024년 1학기부터 '명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를 정식 교양 과목으로 개설해,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직원과 지역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을 초청해 인문학적 통찰과 삶의 지혜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대학 측은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그들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교과목은 실제 사회와 연결된 비전 제시와 사회적 책임감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학생들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국립군산대는 11월27일 수요일 오후 4시, 제1학생회관 고춘곤홀에서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국회의원을 초청해 '마음을 사로잡는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 POWER SPEECH!'를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박소현 기자 gummming@veritas-a.com출처:https://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29473
[창조를 말하다]‘희망 우체부’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꿈너머꿈’은 내 꿈을 바탕으로 다른사람에게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 8년 전 쯤으로 기억된다. 메일함에 낯선 이가 보낸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제목은 ‘희망만 있다’ 였고, 보낸이는 고도원이었다. ‘뭐지?’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였었다. 여행가 신영길의 ‘막장에서’라는 상반된 제목의 시가 나왔다. 시 아래에는 편지를 보낸 이의 글이 덧붙여져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삶의 막장에서, 고통과 절망으로 울부짖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 내려갈 수 없는 막장임을 깨닫는 순간, 남은 것은 희망뿐이라는 글귀가 가슴을 칩니다. 절망의 끝자락에 붙어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막장에서도 삶은 계속됩니다. 이제 희망만 있습니다….’ 온 세상이 싱그러운 풀내음으로 가득하기만 해도 부족한 20대 초반, 절망의 늪에서 헤매이던 그 때 그 편지는 나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인데 마치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토닥여주며, 희망을 속삭였다. 몇년 뒤 나는 경기일보 기자가 됐고, 창간 25주년을 맞아 선정한 창조 25인에 그가 있었다.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여전히 아침마다 편지를 배달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전하는 힘의 정체를 알고 싶어졌다. 그를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 차를 몰아 아침편지문화재단 명상센터가 있는 충북 충주시 깊은산속 옹달샘을 찾았다. (게면쩍은 웃음을 지으면)오늘도 아침편지를 배달하셨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하죠”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편지는 새벽 0시 정각에 독자들에게 자동으로 이메일이 발송되게 돼 있어요. 오늘 주제는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하다’였는데, 오태진의 ‘사람향기 그리운 날엔’에서 발췌했어요. 우리는 아버지가 됐을 때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죠. 아버지가 왜 울고 왜 아파했는지요. 오늘은 부모님의 마음을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전송했습니다.”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은… 1952년 전북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학보사 편집국장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된다. 장사를 하며 생계를 잇다 뿌리깊은 나무,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게 된다. 1998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자(청와대 1급 비서관)로 발탁됐고, 2001년 8월1일부터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발송했다. 아침편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띄면서 책으로도 출간됐다. 저서로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위대한 시작」, 「당신이 희망입니다」등이 있다. -첫 시작은 언제였나요? “2001년 8월 1일, ‘희망’이라는 글로 시작했어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연설문 담당자로 일했는데 5년간 4일 쉬었죠. 치열하게 일했고, 고민했고. 그러다보니 어느 날 아침 번개맞은 것처럼 쓰러졌어요. 이제는 나를 위한 치유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창 인터넷 열풍이 불었고, 메일이 대중화 될 때였어요. 컴퓨터에 정리한 좋은 글들을 메일로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후배들, 아는 사람들 수소문해서 메일을 전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그동안 읽었던 독서카드 정보를 정리하고 좋은 내용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는데 지금처럼 323만명의 독자가 생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323만, 엄청난 독자인데, 편지가 지닌 파급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회원 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단 한사람이라도 제가 보낸 아침편지를 읽고 힐링이 됐거나 새로운 출발을 했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거죠. 한 사람을 울릴 수 있는 가사는 만인을 울릴 수 있는 가사잖아요.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처음에는 아침편지를 글 재주로 보냈는데, 이제는 마음 속에서 샘물처럼 우러나오는 것을 녹여서 쓰고 있죠. 내 땀과 삶, 눈물을 마음의 비타민으로 요약해서 보내는 글이 한 사람에게라도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한 게 323만 아침편지 가족을 있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2001년부터면 꼬박 12년입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앗을 겁니다 (당연) “쉽지 않아요. (웃음) 오히려 고통인 날도 많았죠. 그러나 제 글을 보고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해소했다는 독자들의 반향을 보면서 무한한 에너지를 얻고 있죠. ‘죽을 것 같았는데, 글 하나가 나를 살렸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희망을 얻었다’, ‘기쁨이 됐다’ 이런 독자들의 반응에 매일매일 놀라고, 책임감을 느껴요. 건강한 울림과 희망을 계속 전파하고 싶기 때문에 보람이 더 큽니다.” -건강한 울림과 희망 전파, 깊은산속 옹달샘 명상센터를 설립하신 이유는 뭔가요 “네, 많은 분들이 건강한 에너지를 이 곳에서 얻어갔으면 해요. 사실 글이라는 게, 기자님도 잘 아시겠지만 내 안에서 에너지와 영감이 솟구쳐야 잖아요. 그래서 명상 공부를 시작했는데, 삶에 쉼표가 생기고 에너지가 생기더라고요. 많은 이들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재단을 만들자고 결심했죠. 제가 집을 기부해서 5억의 기금을 마련하고, 여기에 아침편지 회원분들이 벽돌 하나에서부터 건물까지 하나씩 소중한 마음으로 기부해 주셔서 탄생했죠. 이 곳은 누가 와도 비타민을 줄 수 있는 공간, 긍정의 힘을 극대화하는 공간, ‘꿈 너머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 되려고 해요.” -‘꿈 너머의 꿈’,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요즘 청소년들한테 꿈을 물어보면 다들 ‘돈 많이 벌겠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겠다’고들 해요. 그런데 꿈의 진정한 의미는 내 꿈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에게 사다리를 놓아주는 거예요. 백만장자가 되는 게 꿈이 아니라 내가 백만장자가 돼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게 꿈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꿈이 두 사람, 세 사람, 백 사람에게 자라나는 거죠. 꿈 너머의 꿈은 자신뿐만 아니라 더불어 행복해지는 거죠. ” -이사장님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적 부터 책을 워낙 좋아하고 글을 써댔어서(웃음) 글쟁이였어요. 20대때 학보사 편집국장을 했는데,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 당했어요. 수배, 감옥살이, 강제징집. 시대도 어둡고 내 앞길은 더 칠흑같고. 포장마차, 문방구 운영하다 전재산을 사기 당하고, 아내가 두 번 유산하고. 가장 밝아야 할 20~30대가 엉망진창, 하나도 풀리지 않은 시절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아, 나에게는 꿈이 있었지, 언젠간 이 시련들이 좋은 글을 쓰는 재료가 될 거야’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기하게 그 이후로 신문 기자가 됐고, 대통령 연설문 담당자가 됐고. 지금도 그때의 다양한 경험들이 바탕이 돼 아침편지를 보내며 사람들과 함께 꿈을 나누고 있네요. 꿈은 자신이 바라보는대로 가기만 하면 이뤄집니다. 하하 -‘바라보는대로 이뤄진다’좋습니다. 그런데 기자시절에도 꿈과 희망을 논하는 분이셨나요. 제가 기자를 좀 압니다만…(웃음) (역시나,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하, 전혀 아니었죠. 오히려 세속적인 사람이었어요. 정치부 기자를 오래하면서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 꿈도 꿀 수 있었죠. 그런데 살아가는데 세속적인 꿈 말고도 더 중요한 ‘꿈 너머의 꿈’을 발견했어요.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지금의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고 해야할까요.” -하고 싶은 일은 다 하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포장마차 장사에서부터 기자, 청와대 1급 비서관까지.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최고점까지 다양한 인생을 살면서 화려하고도 비참한 순간을 경험했어요. 저는 꿈꾸는 사람, 멘토이길 바래요.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저씨’로 불리고 싶어요. 친숙하고 편안한 아저씨가 있는데, 그 아저씨가 겪은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승화시킬 수 있는 아저씨 말이죠. 누구에게나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얘기해줄 수 있고 꿈과 희망을 얘기해 줄 수 있는 아저씨. 이런 아저씨가 필요하지 않나요?” 정자연기자 jjy84@kyeonggi.com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더 이상 꿈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 세상에 띄우는 편지! 아침편지 고도원 선생님의 꿈 찾기 멘토링 “꿈을 가지면 공부는 저절로 되는 겁니다” 북극성은 옛날부터 방위를 알려주는 기준이 된다 해서 ‘길잡이별’, ‘여행자의 별’로 불렸다. 북극성을 바라보며 걸으면 길을 잃을지언정 방향을 잃지는 않는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3백20만 명의 아침을 깨우는 사람, 고도원. 그가 목표 없이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대한민국 1천만 청소년에게 편지를 썼다. 삶의 좌표가 돼줄 북극성을 찾아주려고 말이다. “고래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 해요. 고래를 잡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방향은 바다죠. 또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으로 가야 하고요. 못 잡을 수도 있겠지만 산에 가면 고라니라도 잡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고래 잡는다면서 산으로 가고 있어요.” 「고도원의 아침편지」 저자이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인 고도원(61)은 그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 꿈이 없는 요즘 아이들에 대한 걱정 어린 애정도 그가 하는 말 속에 진하게 묻어 나왔다.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지만 꿈을 찾아주기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다급함과 간절함이 조금이나마 전해졌다. 3백20만 명의 아침을 꿈과 희망으로 깨워온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은 현재는 충북 충주에서 아침편지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운영하며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11년부터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인 ‘깊은 산속 링컨학교’를 통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소중한 꿈을 찾고 세상을 빛내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1천만 청소년을 만나고자 깊은 산속 링컨학교를 통해 얻었던 지난 3년간의 값진 결과를 정리해 「위대한 시작」을 펴냈다.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그의 첫 번째 편지라 할 수 있다. 꿈을 찾아야 하는 이유부터 그 꿈을 위해 준비하고, 꿈을 이루는 실질적인 방법과 과정까지 자세하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고도원. 「레이디경향」 독자 자녀를 위한 그의 지상 특강을 지금부터 펼쳐본다. 꿈을 가져야 하는 이유 “강연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답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요. 그런 질문은 난생처음 받아봤다는 듯 당황해요. 되레 왜 꿈을 가져야 하느냐고 물어요.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고도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꿈을 가지고 있기는커녕 한 번도 꾸어보지 못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고래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 하는데, 이건 고래를 잡으러 산으로 가는 것처럼 방향 설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엇을 잡겠다는 목표조차 없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고도원의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 학교, 사회, 어른들은 오로지 시험 점수만을 물어왔다. 몇 등인지만 궁금했던 것이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최고가 되라고, 일등이 되라고 채찍질을 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왜 안 되는 건지 탓만 한다. 아이도,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결과는 그만큼 되지 못하는지 의문만 가진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어디가 잘못됐고, 어떻게 개선하면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고도원은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꿈은 목표이자 방향입니다. 배가 바다로 나갔을 때 방향이 분명하면 힘차게 속력을 내지만 어디로 갈지 모르면 이리저리 표류해요. 꿈이 있는 사람은 목표가 분명해서 망설이고 방황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아요. 또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합니다. 꿈을 가지게 해주세요. 저절로 알아서 공부하고 인생을 꾸려나가게 됩니다.” 꿈이 없는 아이와 꿈이 있는 아이는 어떻게 다를까. 꿈이 없는 아이는 눈빛이 흐리고, 어깨는 움츠려서 구부정하고, 시큰둥하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시계추처럼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간다. 하지만 꿈이 있는 아이는 눈이 빛나고 표정도 밝고 매사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꿈을 향해 속도를 내 적극적으로 나아간다.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예를 들면 매우 간단하다. 같은 축구교실에서 똑같이 공을 차더라도 축구선수의 꿈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을 읽더라도 숙제여서 의무감에 마지못해 읽는 아이와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아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훗날 꼭 축구선수, 작가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며 크는 성장 과정에서 가지는 무수히 많은 꿈들은 분명 아이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고 원동력으로 작용함은 분명하다.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출발선에 선 자세와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래서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 자꾸 변해도 괜찮아! 개성 있는 외모와 입담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우먼 박지선. 그녀도 보통의 청소년들과 다르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도, 교사의 꿈도 없이 그저 점수에 맞춰 사범대에 진학했다. 듣고 싶은 과목을 골라 스스로 시간표를 짜야 하는 대학에서 그녀는 당황했다. 늘 시키는 것만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박지선은 4년 내내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수업만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꿈 없이 남들처럼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노량진 임용고시 학원에 가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제야 ‘왜 내가 여기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순간 그녀는 친구들을 모아놓고 웃기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 길로 학원을 박차고 나와 개그맨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무척 극적으로 들리는 얘기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과 비슷한 사례입니다. 집과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만 살다가 어느덧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내가 뭘 좋아하지?’ 하고 일상 속에서 꾸준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그 대답을 들으려고 노력하세요. 자신을 알아갈수록 꿈에 이르는 거리가 줄어듭니다.” 고도원은 꿈이 자꾸 변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꿈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도 같다면서 말이다. 꿈이 자꾸 변한다면 구체적으로 꿈을 정하기보다 먼저 관심 있는 큰 줄기, 큰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해양학자가 꿈인 학생이 있다고 하자. 이 학생은 바다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보면, 꼭 해양학자가 아니라도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직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혹은 해양학자가 되기 위해 바다의 생태, 자원 등을 공부하다 더 흥미 있는 세계를 발견해서 꿈이 바뀔 수도 있다. 바닷속을 공부하다 사라진 도시에 관심을 갖고 고고학자가 될지도 모른다. 꿈이 자꾸 변한다고, 구체적이지 못하다고 실망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관심 분야와 방향을 알고 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시작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방향과 목표, 꿈을 저는 북극성이라 부릅니다. 꿈을 갖는다는 것은 북극성을 띄우는 일이거든요. 북극성은 옛날부터 방위를 알려준다 해서 길잡이별이나 여행자의 별로 불렸어요. 가슴에 북극성이 떠 있는 사람은 중간에 길을 잃어도 방향을 잃지는 않아요. 내 가슴에 어떤 북극성을 띄울 건지 생각해보세요. 방향이 없다면 길조차 잃을 수 없어요. 제자리에서 맴돈다는 것이죠.” 꿈 결정권조차 없는 요즘 아이들 고도원은 어떻게 청소년들의 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까. 지친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시작한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계기가 됐다. 명상센터에는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이 많았다. 그런데 고도원이 만난 요즘 아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지쳐 있었다. 꿈도 없고, 비전도 없었다. 더욱이 우리의 교육 현장은 처참할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꿈나무들에게 어떻게 하면 꿈을 심어주고, 미래를 개척해나갈 힘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영어 단어 몇 개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안의 도전정신, 이겨내는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더 시급했다.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을 고도원은 ‘위대한 시작’이라고 표현했다. “작은 점 하나가 위대한 시작이에요. 새로운 경험, 경이로운 만남이 시작을 알리는 점이 되는 거죠. 이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고, 이야기가 됩니다. 그 이야기가 풍요로우면 삶도 풍요로워져요. 그 이야기가 빛나면 그 인생도 빛나고요. 그 이야기가 위대하면? 그래요, 그 사람의 인생도 위대해집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 점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점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또 무엇이 아이들에게 위대한 시작을 알리는 점이 돼줄까. 고도원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책이나 잡지 속의 한 구절이 될 수도 있고,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아이들은 끝없이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데, 정작 어른인 우리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작은 점 하나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이 ‘깊은 산속 링컨학교’를 만들게 했다. “요즘 아이들은 꿈의 유무를 떠나 결정권 자체가 없는 경우를 자주 봐요. 그래요, 어쩌면 아이들이 꾸는 꿈이 어른의 기준에서는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 스스로 가게끔 해야 해요. 거기서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들은 불안해하지마세요. 아이들에게는 되돌아 나올 시간조차 충분하니까요.” 잘못된 길과 되돌아 나온 길이 결코 아이들 삶에 헛된 시간과 경험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하지만 그것이 혹 방임이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고도원은 고래잡이를 예로 들며 적절한 부모의 자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포경선은 큰 고래를 작살로 찍은 뒤 절대 바로 고삐를 당기지 않는다고 한다. 고래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풀어준다. 작은 고기를 잡듯 바로 줄을 당기면 되레 배가 전복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고래도 못 잡고 포경선도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고래를 잡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다. 힘이 빠질 때까지 풀어주는 것이다. 포경선은 여전히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다. 위대한 씨앗 심어주기 “요즘 부모님들은 고삐를 너무 타이트하게 죄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튕겨 나가거나 거칠어지는 거예요. 그도 아니면 광대한 세상을 모르고 엄마 치마폭에 싸여 작은 일에 앙앙거리면서 좌절하는 거예요. 부모는 고삐를 놓치지 않고 그저 지켜봐주는 것만으로 족해요.” 그는 아이가 가고자 하는 세상 속으로 마음껏 갈 수 있도록 줄을 풀어주라고 조언한다. 내버려두는 것과 풀어주는 것은 분명 다르니 부모도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마음껏 자기 세상에 살다가 힘이 어느 정도 빠졌을 때 혹은 이건 아니다 싶을 때 붙들고 있던 고삐를 당기면 된다. 핵심은 고래를 잡았는가 하는 것이다. 꿈을 꾸고, 꿈을 가지고, 꿈을 실행하는가 말이다. 공부란 꿈을 완성해가는 과정 속의 일부분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저절로 알아서 찾아서 하는 게 공부다. 그는 자신도 꿈이 없이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렇다면 고도원의 작은 점, 그 위대한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저에게 점 하나를 찍어주신 분이 바로 저희 아버지세요.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전 3권)를 던져주시며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읽어놓으라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엉터리로 그은 그 밑줄들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돼주었어요.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죠.” 아이들은 양질의 책이 아닌 저급한 도서를 읽을 수도 있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음란물을 찾아본다. 피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막으면 되레 덧난다.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인정해야 한다. 세상이 변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진리가 바뀌고, 좋은 책이 없어지고, 멘토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맑은 물줄기 하나를 삶에 대준다고 생각하자. 시간이 가면 그 물이 저절로 흘러넘쳐서 아이 스스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게 된다. 아버지가 밑줄 그으며 읽어보라던 책 네 권이 고도원의 삶에 맑은 물줄기가 돼주었다. “이 시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사서 고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유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하지만 그만큼 나약해졌어요. 이전에는 고통이 아니었던 것들이 지금 아이들에겐 너무 힘든 일이 됐거든요. 내면의 힘, 내면의 근육을 단단하게 갖춰주지 않으면 무너질 거예요.” 즐겁게 공부하고, 재미있게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혹은 꿈을 찾아 실행하는 과정 모두에서 말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좌절, 어려움은 어쩌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느끼게 하고 싶다고 고도원은 말한다. 그것이 결국 청소년 문제의 핵심이고, 꿈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위대함’의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도 똑같지 않으며 저마다 빛나는 보석입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그 보석 같은 씨앗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해요. 그 씨앗들이 자라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시작이라고 고도원은 말한다. 자, 그럼 그 위대한 시작을 해보자. 아이야, 너의 꿈은 무엇이니? [기획 장회정 기자 글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조민정] ‘위대한 시작’을 위한 고도원 선생님의 실전 멘토링 잘 읽고, 제대로 쓰고, 바르게 말하는 법 멘토링 책읽기 멘토링 대부분 너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사실 저도 책을 읽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특히 여행을 갈 때는 여행지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일부러 책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날은 다섯 권 이상 읽기도 합니다. 오랜 독서 습관으로 책과 상황에 맞는 효율적인 독서법, 즉 ‘2·2·5·10독서법’이라고 부르는 저만의 속독법 덕분에 가능합니다. 2·2·5는 2분은 무슨 책인지 살피는 것이고, 다음 2분은 눈에 띄는 단어를 줍는 것이고, 5분은 밑줄을 긋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분은 정독을 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하면 30분 안에 책 한 권을 읽을 자신과 기술이 생깁니다. 일단 책 제목을 보고, 차례를 보고, 책장을 끝까지 넘깁니다. 이때 단어 한두 개가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단어를 보면서 넘깁니다. 그러다 보면 단어가 몇 개 더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때는 문장이 보입니다. 다시 또 넘겨보면 ‘어디쯤에 이런 글이 있지’ 하는 감이 잡히면서 자기 것으로 소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다섯 번만 넘겨보면 그 책은 자기 것이 됩니다. 물론 아주 자세하게 내용을 전부 이해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일단 책의 전체적인 면모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읽기 어려워 아예 펼쳐볼 엄두조차 못 내는 고전도 그렇게 하면 읽어낼 수 있습니다. 사실 책은 꼼꼼히 봐야 할 경우가 많지만, 책 읽기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는 사람에게 이 독서법은 특히 도움이 될 겁니다. 글쓰기 멘토링 스피치가 차원 높은 말하기라면 글쓰기는 차원 높은 ‘자기 표현’입니다.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성숙, 성장, 승화의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순히 매끄러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담겨 있고 감동이 있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글쓰기는 훈련하면 누구나 실력이 좋아집니다. 탁월한 글쓰기 실력을 갖추고 싶다면 어휘의 보물창고인 사전을 늘 가까이하세요. 또 자연과 세상과 교감하며 섬세한 관찰력과 감수성을 키우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나만의 빛나는 문장들이 탄생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글부터 써볼까요?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글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것들에서 배운 경험과 지혜가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기와 편지로 시작해보세요. 일기처럼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서 글이 시작돼야 나중에도 살아 있는 글,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또 편지는 다른 이와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편지에는 솔직한 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편지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좋은 글쓰기 연습이 돼줍니다. 최근에는 블로그나 페이스북과 같이 나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는 사이버상의 서비스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세요. 스피치 멘토링 스피치는 한 사람이 걸어 온 길과 나아갈 길의 수준과 깊이가 드러나는 ‘차원 높은 말하기’입니다. 요즘은 각종 면접, 프레젠테이션 등 남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특히 꿈이 있는 사람, 리더가 될 사람이라면 스피치 능력을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스피치는 어릴 때부터 익히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남 앞에서 말하는 능력뿐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에서 자신감 있는 말과 행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표력은 물론 학습력과 표현력까지 높아져 꿈을 이루는 데 좋은 디딤돌이 됩니다. 그렇다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피치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내용, 자세, 표정, 시선, 목소리, 시간 이렇게 6가지 요소입니다. 물론 연설은 탁월한 언어 감각과 논리로 대중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이 아닌 표정과 호흡, 자세, 눈빛 등이 모두 청중을 움직이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스피치 연습을 할 때는 진정성 있는 내용을 담고 말하는 태도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또 스피치 원고는 되도록 외우세요. 원고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녹여내야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작은 습관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했다. 고도원 작가의 경우 그 작은 습관을 자신의 미션으로 정하고, 10여 년이 넘도록 성실하게 이어왔다. 바로 '아침편지'라는 이름으로 이메일을 통해 전달되는 그의 짧은 글귀다. 처음 한둘, 그 다음 십 수명으로 이어졌던 독자의 숫자는 이제 320만명에 이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아침편지의 위력이었다. 그의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많은 독자들이 그에게서 잃었던 용기와 희망을 찾았다는 메세지로 답해왔고, 개중에는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는 이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작가는 더욱 고심하고 힘을 내어 아침편지를 써나가며 한편으로 새로운 미션을 정하기도 했다. 바로 2003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한 명상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편지를 써내려 가듯 또 다른 미션을 정하기도 했다. 바로 2003년부터 '깊은산속 옹달샘'의 터를 찾아 다녔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았으며 끝내는 마치 마법과 같이 처음 구상했던 그대로 '깊은산속 옹달샘'을 완성해 냈다. 촉촉한 장맛비가 내리는 날, 그 놀라운 과정을 듣기 위해 '깊은산속 옹달샘' 집필실에서 고도원 작가와 마주했다. "우리가 밥을 지을 때, 맛있는 밥을 짓는 기술이 아무한테나 있는게 아니잖아요. 하물며 라면을 끓이는 것도 기술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죠. 밥 짓는 사람이 언짢은 기분으로 밥을 지으면 그 기분이 그대로 밥에 들어가요. 기술을 다루는 사람 역시 부정적인 마인드, 불평과 어두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지 않은 채 기술을 다루면 그 기술은 사람을 위협하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편지를 이어 갈 수 있었던 힘 고도원 작가에게 아침편지는 이제 일상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고민과 신중함이 서려있다. 짧은 글귀지만, 그간 아침편지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길이 되기도 했고 영혼을 살리는 울림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힐링을 위해서도 아침편지는 12년째 그가 가장 집중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강연과 집필, 그리고 '깊은 산속 옹달샘' 운영에도 신경 써야 하는 역할의 짐이 지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 빠짐없이 아침편지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작가를 만나 제일 먼저 떠오른 궁금함이었다. "그저 잠 잘 때 자고, 식사 할 때 식사하고, 일 할 때 일을 하는 것뿐이예요(웃음). 물론 일정이 바쁠 때도 있지만 24시간 놀고, 24시간 일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죠. 일과 놀이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물론 10년 이상 아침편지를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반복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예요. LG이노텍의 미션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쟎아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필요하지만 사실 모두 반복을 통해서 시스템화하고 고도화하는 것들이죠. 제게는 그것이 아침편지인 것이고요." 아침편지와 함께 그는 최근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이어가고 있는 '깊은산속 링컨학교' 프로그램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단순히 은둔하고 명상에 잠기는 곳이 아닌,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아침편지는 새로운 꿈을 연이어 낳았고, 이루게 한 시작인 셈이다. 그는 오늘도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아침편지를 써 오며 언젠가부터 부담이 컸어요. 글 한 줄 때문에 밤잠을 못 자기도 일쑤였죠. 그 동안 아침편지를 써 온 글재주로는 한계에 부딪힌 거에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명상이에요. 명상을 공부하다가 명상센터를 꿈꾸게 된 것이고, 또 공공의 재산으로 되물림 할 수 있는 아침편지문화재단을 만들게 된 것이죠. 따지고 보면 아침편지가 주는 부담이 제게 명상과 힐링을 꿈꾸게 하고 그것을 이루게 한 것이예요. 부담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웃음) 고민을 함으로서 그 다음 길이 열리는 법이거든요." 사랑과 감사를 담은 미션 수행의 과정 오래도록 아침편지가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작가로서 그의 재능이기도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 의해 형성된 독서 습관 덕분이기도 하다.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작은 작은 원칙에는 철저하면서도 큰 잘못은 오히려 호탕하게 용서하는 분이었다. 끊임없이 책을 권하고, 읽게 한 아버지 덕분에 그는 자신의 또 다른 재능인 글쓰기를 일찌감치 발견하기도 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독서 습관과 삶을 살아오며 만난 경험과 인연은 그의 글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언론을 비롯해 모든 것이 정부의 통제를 받던, 힘겨운 시절이었다. 그 동안 그는 이런저런 사업을 하며 세상을 배웠다. 때론 사기도 당해보고 때론 성공을 맛보기도 했다. 그 모든 경험은 그의 글에 더욱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오랜 외도 끝에 그를 다시 잡지 '뿌리깊은 나무' 기자로 만든 것도 그의 글 덕분이었다. 그 후 글은 다시 그를 중앙일보 기자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연설담당비서관으로 살아가게 했다. "연설문은 쓰는 일이 너무 무겁고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어요. 결국은 건강이 무너지고 몸이 굳어지는 상황에 이를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그래서 머리가 터지기 직전에 바늘구멍하나 내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아침편지였죠.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소박했어요. 긍정적으로 변화를 주기 위해 시도한 것이 꿈이 되고 그것이 커진 셈이죠. 아침편지를 쓰고 난 후 제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어요. 계단이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닌 내려가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고, 내려감으로써 얻은 행복감도 느끼고 있죠. 그러면서 예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휠씬 중요한 가치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물론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보이지 않는 땀과 눈물이 있죠. 외부에서 볼 때는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기적처럼 이뤄졌어요.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은 제게 일종의 사명과 같은 미션이었던 것 같아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둘째 문제고,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미션이었던 거죠. 미션을 이뤄낼 수 있었던 저의 내적 원동력은 그 과정에서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것에도 감사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힘이 나거든요" 문득 혁신적인 기술로 미래를 창조한다는 우리 회사의 미션과 고도원 작가의 미션이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일치하는 부분이 꽤 많음을 느꼈다. 그의 경험과 깨달음이 우리회사 직원들에게 최고의 조언이 될 수 있는 이유다. " LG이노텍 임직원들은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미션들을 이뤄 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에요. "우리가 밥을 지을 때, 맛있는 밥을 짓는 기술이 아무한테나 있는게 아니잖아요. 하물며 라면을 끓이는 것도 기술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죠. 밥 짓는 사람이 언짢은 기분으로 밥을 지으면 그 기분이 그대로 밥에 들어가요. 기술을 다루는 사람 역시 부정적인 마인드, 불평과 어두움으로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지 않은 채 기술을 다루면 그 기술은 사람을 위협하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자신을 맑게 가꾸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루면 그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고 편하게 하는 기구가 될 겁니다." 작가는 또 살아가며 감당키 어려운 스트레스와 슬럼프에 직면할 때는 잠시 멈추고 쉴 것을 권했다.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 역시 성공적인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밝게 웃음 지으며 전하는 그의 마지막 말에 작은 위로가 담겨있는 듯했다. "오래 멈추는 게 아니라 잠깐 쉬어보세요. 산행을 하다 지쳤을 때 잠깐 쉬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짐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둘러메고 올라가면 되는 거니까요. 잠깐씩 내려놓는 훈련들에서부터 자신의 스트레스, 슬럼프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게 되요. 그래야 다시 짐을 들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광명시 청년 취업 힐링캠프 취업 희망자에게 꿈과 도전정신 심어줘 전국 지자체 최초, 청년 20명 7월15~18일 '깊은산속 옹달샘 명상센터'에서 취업 힐링 실시 광명시는 7월15일부터 18일까지 청년 취업 희망자 20명을 대상으로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 위치한 '깊은산속 옹달샘 명상센터'에서 '청년 취업 힐링캠프'를 운영했다. 취업난으로 위축돼 있던 젊은이들은 명상과 2분 스피치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며 밝은 표정을 되찾아갔다. '아침편지 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은 특강에서 "삶이 저점과 실패를 성공을 향한 디딤돌로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꿈을 그려보자"고 말해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명상 통해 내면의 상처 치유하고 2분 스피치로 꿈 되새겨 조정현(25, 철산3동) 씨는 "그동안 리더 역할을 많이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라난 자만심이 발전에 장애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캠프 참여를 계기로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CEO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황보라(22, 광명5동) 씨는 "취업을 준비하며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캠프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참여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반응 뜨거워 지속적으로 시행 예정 캠프에 참가한 많은 청년들은 이구동성으로 "내면의 변화와 도전정신을 갖게 해준 광명시에 감사드린다" 면서 "캠프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취업에 성공하고 자기계발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명시에서는 이들에게 취업을 알선하는 한편, 청년 힐링캠프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광명시 일자리 창출과 ☎ 02-2680-6273
- KBS 1TV '강연 100℃' 영상 - '꿈꾸는 자는 늙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방송된 16분 짜리 강연영상입니다.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 MBC 뉴스데스크, 이브닝뉴스 - 지난 16일 MBC 이브닝 뉴스와 지난 14일 오후 8시 MBC(충주) 뉴스데스크에 방송된 옹달샘 명상 프로그램 영상입니다. 2분9초짜리 짧은 영상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편지 문화재단-뉴질랜드 녹색의학협회, ‘자연치유법 세미나’ 공동개최 `아침편지 문화재단`과 `뉴질랜드 녹색의학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자연치유법 세미나`가 지난 13일 충북 충주에 위치한 아침편지 명상치유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개최됐다.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세미나는 신체와 정신 건강을 위해 사용되는 메디컬 허브에 대한 올바른 정의와 효능, 효과에 대한 내용을 소개했다. 걷기명상, 통나무명상 등 옹달샘의 대표 명상 프로그램과 옹달샘 건강밥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연치유법 세미나`의 주제 발표를 맡은 뉴질랜드 녹색의학협회 부회장 아이즌 심 대표는 "녹색의학의 기초가 되는 허브는 약초, 생약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메디컬허브(Medical Herbs)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며 "국내에서 허브가 저평가 되어 검증을 받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는 이런 인식들의 변화가 진행되어야 국내 녹색의학 산업이 발전을 이룰 것으로 본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허브를 바라보는 시각과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의사, 한의사, 허벌리스트 등을 비롯해 환경과 자연치유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300여명이 참석했다. 뉴질랜드 녹색의학 협회는 오는 21일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다이너퓨처 클래스 서울 본원에서 올해 첫 `녹색의학 비즈니스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로마테라피를 주제로 하는 본 세미나는 참석자 1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매경닷컴 김윤경 기자]
고도원의 꿈너머꿈, 그리고 꿈 글/사진:안지섭 18기 학생기자/한국전통문화학교 편집자 주 _ 온라인상에 이리도 긴 글을 맘 좋게 내보낸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한 번 읽으면 결코 끊을 수 없는 호흡을 보장합니다마는,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방해될 상황을 고려해 꼭 끝까지 읽어달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읽은 후 하늘을 보게 될 테니까요. 대한민국 3,130,965명의 사람들은 아침마다 설레는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바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아침편지의 주인공 고도원 작가는 자신의 저서 처럼 아침마다 꿈을 통한 즐거운 스텝을 밟고 있다. 꿈이 저를 견디게 한 원동력이었어요. 그래서 가끔 그런 얘기 해요. 그땐 먹을 것이 없으니까 꿈을 먹고 살았다고. 책 한 권으로 맺어진 인연 책으로 가득 찬 그의 서재, 아버지가 물려주신 정신적 유산이었다 고도원 작가의 인생은 꿈과 책, 이 두 단어로 수식할 수 있다. 책을 통해 꿈을 꾸었고, 꿈을 원동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다독多讀 인생은 아버지의 회초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아버님은 시골교회 목사님이었는데, 매우 가난했어요. 궁핍한 가운데 아버님은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죠. 온 집안이 책으로 가득할 만큼 우리나라 목사님 가운데서 장서가로 유명하신 분이셨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님은 책을 읽게 하고 검사하셔서 회초리로 때리기도 하셨어요. 그때 전 도시락도 없었던 가난한 아이였는데, 책까지 읽게 하고 혼내니까 고통스러웠어요. 반항의 시기였죠. 그의 인생의 책. 아버지가 주신 이 책 한권으로, 그는 전 김대중 대통령과 평생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인생의 책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 받았던 함석헌 선생의 와 아놀드 토인비의 다. 중학생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책이었지만 이 책으로 그는 자신의 꿈과 더불어 소중한 만남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서재에는 지금도 두 권의 책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라는 책이 우연하게도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의 책이었어요. 어느 날 그분이 기자들과 인생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때 이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른 기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요. 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기자생활을 하는 내내 수없이 읽었어요. 그 책을 읽으면 미래가 보이고 기사가 써지거든요.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젊은 기자와 노련한 정치인의 재미있는 독서 토론이 벌어졌죠.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죠. 그분께서 ‘아, 젊은 기자 중 이 책을 섭렵한 사람이 있구나!’라고 감동하셨어요. 그 이후부터 저를 동지同志로 생각했죠. 이때의 인연으로 저에게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써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이처럼 젊은 시절에 인생의 책을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격동의 시대, 펜을 잡다 아버지의 책으로 그는 기자,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 아침편지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원래 그의 삶은 어머니로 인해 목회자를 예정하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쟁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는 비록 목회자가 되지 않았지만, 아침편지를 통해 세상 어느 목회자보다 아름다운 말씀을 나누고 있었다. 대학에서 기자를 하면서 긴급조치로 제적당했어요. 민주화 투쟁에 학생으로서 의분을 생각하면서 인생의 길이 바뀌었죠. 재적으로 목회자의 길을 접고 기자, 대통령 연설 비서관, 아침편지, 이렇게 목회자와는 다른 길이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맑게 정화하는 면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보고 있어요. 글 하나로 인해 재적이 되었다니, 꿈까지 접어야 하는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저항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대한민국의 피 끓는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저항은 선택이 아닌 시대가 부여한 의무였다. 에서 최초로 대학생 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는 ‘십계명’이라는 기명 칼럼이 있었어요. 그 글이 늘 문제가 되었죠. 의분에 넘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겁 없이 헌법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 그것이 늘 문제가 되어 긴급조치에 위배되는 사태를 맞은 거예요. 대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통해 사회 비판적, 미래지향적인 칼럼을 썼어요. 당시는 저항의 시대였어요. 젊은이에게 저항정신이 배어 있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었죠. 저항하면 찍어 누르던 시대, 찍어 누를수록 더욱 발버둥쳤죠. 긴급조치를 위배하면서 군대로 강제징집 되고 학적에서 제적 당하면서, 그는 대학을 졸업할 수 없었다. 졸업장 없이 대학에서 사회로 쫓겨나듯 나오게 된 고도원 작가. 이 때문에 장사부터 시작해 웨딩드레스 판매원의 일을 하면서 온갖 가난과 고통과 함께해야만 했다. 저항정신을 지닌 대학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모든 어려움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기자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한다. 기자로 몰입했던 순간이 지금 생각해도 행복했던 순간이에요. 4년 동안 학교 캠퍼스 안에서 잠자고, 밥 먹고, 신문을 만들면서 살았어요. 정말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몰입했던 것인데, 그 시간이 지금도 제겐 굉장히 값진 경험이죠. 아무리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잡념을 갖지 않고 일에 몰두할 수 있었어요. 그걸 참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때 이것저것 생각하고 그랬으면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만남, 세상을 향한 통로 세상은 홀로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만남의 순간을 가진다. 그러나 그 만남이 항상 유쾌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그의 인생 속에도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다만 그는 우리와 달리 불쾌와 유쾌를 떠나 그 모든 만남을 자신의 품으로 보듬어 안았다. 그래서 그의 아침편지가 그토록 따뜻했던 것이다. 모든 만남이 다 소중해요. 부모님, 대학에서 신문 함께 만들던 교수님과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은인들, 그리고 현재 저를 도와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들.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귀한 선물이에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요. 서로 사랑한다면 다 소중한 존재에요. 그래서 사랑이 필요하죠. 그때는 정말 독소와 같은 사람이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변화시킨 은인이 돼요. 그래서 세상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에요. 원수와도 함께 살아야죠. '깊은산속옹달샘'을 위해 만난 아침지기들과의 오전 회의, 그에게는 모든 만남이 소중하다 그가 본격적인 기자로 활동했던 는 당시 혁신적인 기사로 큰 주목을 받았던 매거진이다. 그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쓴 기사의 제목은 ‘생리대 쓰레기’였다. 80년대라는 시대배경을 고려했을 때 기사의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의 파격적인 기사보다 중요한 것은 ‘반정부 학생’으로 낙인 찍힌 그를 기자로 발탁해준 와 파격적인 만남이었다. 당시 ‘Anti Government Student’라는 낙인이 찍히면 어디서도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취업이 불가능하죠. 이력서를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밖에 못해요. 그래서 장사부터 시작했죠. 그러다가 졸업장도 없는 절 기자로 채용해준 분이 사장님이었고 제 인생의 은인이세요. 그분이 저를 기자로 뽑아줘서 사회 밖으로 나올 수 있었죠. 그는 만나는 어떤 이에게든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가 왜 이토록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은인과의 만남 덕분에 졸업장도 없던 그는 기자가 될 수 있었고 사회로 나설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언제 올지 모르는 이런 만남을 향해 늘 문을 열고 있어야 한다. 살면서 자신을 사회 밖으로 끌어주는 안내자를 만날 때가 있어요. 정말 선물처럼 주어져요.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죠.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지금도 열심히 장사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가진 글을 쓰는 재능, 글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을 알아보고 실현하게 해준 거죠. 무대 위로 끌어낸 그런 인연들이 참 감사하죠. 의 폐간은 가까스로 이룬 기자의 꿈이 다시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꿈꾸는 자에게 세상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절망을 이겨내고 기자로 재기할 수 있는 또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 비판적인 기사들 때문에 광주항쟁이 끝나고 폐간이 되었어요. 그렇게 또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죠. 그때 를 열심히 보던 당시 최우석 경제부장이 제가 쓴 기사를 주목해서 보고 ‘아, 이런 좋은 글쟁이를 실험적으로 한 번 신문기자를 시켜보자.’ 했어요. 그래서 중앙일보 기자가 되었죠. 지독한 고통의 시간은 그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덕목을 선물하였다. 유치장에 갇혀있는 억울한 이의 고통을 공감하는 글을 쓰게 하였다. 덕분에 15년의 기자생활 동안 그에게는 ‘특종기자’라는 수식어가 함께 따라다녔다. 실패와 고통의 경험은 그를 특종기자로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손끝에서 나온 모든 글에는 따뜻한 공감을 더해졌다는 점이다. 때로는 성공의 경험보다 실패의 경험이 더 좋은 글을 쓰게 해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자살 지경에 이르는 밑바닥의 경험이 좋은 글을 만들기도 하죠. 그때는 견뎌내기 힘들지만,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겨내면 그 고통의 경험이 나중에는 선물처럼 되돌아와요. 기자에게는 좋은 취재거리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고,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사람에게는 민심을 읽게 하는 밑천이 되죠. 고통을 알아야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눈물 흘린 경험이 있어야 눈물 흘리는 사람의 찢어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20대는 성공하는 시기가 아닌 성공을 준비하는 시기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성공 자체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갑작스레 닥쳐오는 고통에 너무도 쉽게 좌절한다. 그는 20대 시절 고통의 경험이 담긴 글을 통해 이 시대의 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고통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순간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20대에는 고통의 경험도 필요한 시기에요. 가슴이 찢어져 봐야 되요.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겨내야 해요. 그런 경험에서 지금 젊은이들은 잘 무너지죠. ‘젊어 고생은 사서 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죠. 젊은 시절에 고생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는 많이 어려워요. 고통의 순간에 피어난 아침편지 그는 한 권의 책을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연설 담당 비서관이 되었다. 기사가 아닌 연설문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더욱 무거운 책임감과 역사적 사명감이 부여되었다. 5년의 연설 담당 비서관 시절 동안 그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연결하는 견고한 다리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이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그의 아침편지는 탄생하고 지속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놀라운 혜안을 가지신 분이에요. 좋은 정치 지도자는 미래의 혜안을 가져야 해요. 그런데 너무 앞서 가면 국민이 따라가지 못해요. 대통령의 혜안도 읽어내야 하고 당시 사람들의 마음도 읽어내야 하죠. 그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연설문이에요. 고민이 많죠. 그래서 연설문을 쓰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 큰 훈련이었어요. 아침편지를 11년 동안 지속할 수 있게 했던 훈련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연설 담당 비서관은 그야말로 훈련의 시간이었다.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일하는 동안 그의 모든 촉수는 연설문을 향해 있었다. 단 하루도 연설문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런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은 5년 동안 그의 몸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다. 그러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단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든 다른 사람보다 1~2시간 일찍 출근했어요. 그래야 하루가 편했어요.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연설 비서관 5년 동안 딱 사흘 쉬었어요. 정말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대통령 연설문을 썼기 때문에, 일과라고 할 것이 없었어요. 청와대에 틀어박혀서 연설문에 관한 키워드를 구상하고, 다음 연설문 어떻게 쓸 것인가 방향을 정하고, 거기에 몰입했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잠을 못 자고, 일어나려면 식은땀이 즐비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런데 또 출근해야 하고,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몸이 굳고 건강이 무너져버렸죠.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뛰어난 걸작은 고통의 순간에 탄생한다. 2001년, 건강이 무너져 내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아침편지는 탄생할 수 있었다. 약물로도 회복 불가능했던 그의 몸은 아침편지의 시작과 함께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침편지의 탄생은 굳어진 그의 몸을 살아나게 했으며 황폐해진 사람들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였다. 그래서 아침편지를 걸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1년에 아침편지를 시작했어요. 연설비서관 딱 중간 지점, 청와대에서 몸이 완전히 무너졌을 당시였어요. 그때 이메일 주소가 확산했던 초창기에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독서카드를 하나씩 소개하는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 아침편지였어요. 연설문을 쓰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데, 아침편지는 개인적이고 말랑말랑하잖아요. 아침편지를 시작하면서 내가 살아나기 시작했죠. 아침편지는 고도원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80년대 생리대를 주제로 기사를 썼던 뛰어난 발상과 5년 동안 꾸준히 연설문을 작성했던 성실성, 그리고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책이라는 유산을 통해 그의 손에서 아침편지가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재 3백만명이 구독중인 아침편지, 고도원의 아침편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언론사, 친구들, 청와대 직원들에게 썼어요.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신선한 충격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메일을 통해 아침편지를 보낸다는 발상 자체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잖아요. 그리고 짤막한 좋은 글을, 축구로 치면 슛 장면만 모아놓은 것이죠.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석이 들어가죠. 같이 일했던 기자가 고도원 기자니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했고, 그 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죠. 부족한 영양, 아침편지 한 끼로 해결하다 영양가 가득한 그의 저서들 아침편지를 시작하고 1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3백만 명의 사람들은 매일 아침 그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아침편지는 죽기 직전의 사람을 살려냈으며,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수많은 독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내면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아침편지가 벌써 11년이 되었어요. 변화가 참 많았죠. 11년 사이에 제가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했어요.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5년 만에 집필을 마치고 “나의 정신세계가 완성되었다.”라고 선언을 했거든요. 제가 아침 편지 11년 정신세계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나의 정신세계가 많이 자랐고, 열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미료와 같이 자극적인 글은 처음 섭취하는 순간 열광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금방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의 글은 평생 먹을 수 있는 진실이 담긴 밥, 마음의 비타민을 지향하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영양가 있는 그의 글은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마음의 비타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비타민이라는 것이 안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결핍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망가지게 되죠. 마음의 비타민은 감정 조절과 같은 정서적인 면과 연관이 돼요. 마음의 비타민이 사라지면 별거 아닌 일에 막 화를 내고, 흥분하고, 낙심하고, 비탄에 빠지게 되죠. 제가 쓰는 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더라도 우리 마음의 비타민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침편지는 오늘도 수많은 독자에게 마음의 양식이자 비타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침편지에 그토록 영양가가 넘치고 자극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침편지를 쓸 때는 나의 글재주에 의존했는데, 지금은 명상을 통해 내 안에서 영감이 솟구치지 않으면 글재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했어요. 그래서 걷기 명상을 하면서 내면의 고독을 견뎌내고 많은 영감을 얻어요. 이제는 손끝에서 나오는 글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글을 쓰고 있어요. 20대,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인터뷰를 끝으로 그가 보낸 20대를 위한 아침편지 그에게 20대를 위한 아침편지를 부탁했다. “고대 이래로 젊은이들에게 후한 평가를 내린 사람은 없다.” 그가 한 첫 마디였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따끔한 훈계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꿈을 지키라는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지금 형편이 어떻든 꿈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20대를 바라보면서 제일 관심이 가고, 물어보는 것이 꿈이에요. ‘꿈이 있는가’, ‘어떤 꿈을 가졌는가’, ‘그 꿈을 말하고 적어놓아라’, ‘자꾸 좋은 사람을 만나라’, 그러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 이런 기본적인 메시지가 젊은 사람들에게 안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대를 위한 아침편지에는 응원의 메시지와 더불어 꿈을 이루는 위인들의 비결에 대해 살짝 귀띔해주었다.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으나 그가 이야기했기 때문에 왠지 더 신뢰가 간다. 그렇게 아침편지는 우리에게 꿈을 향한 삶의 좌표를 제시해주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의 전기나 저술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길목은 전혀 다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나 삶의 태도는 비슷해요. 꿈을 가진 사람에게는 우선 도전정신과 남이 가지 않은 길로 가는 용기가 필요해요. 때로는 도처에 장애물이 있어요. 그 앞에서 주저앉으면 꿈을 이루지 못해요. 그 장애물이 오히려 더 많은 길을 내주어요. 장애물을 이겨내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길을 발견하게 돼요. 그래서 또 도전하고 성취하면서 용기를 갖게 돼요.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꿈을 이루게 되는 거예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꿈 너머 꿈’이었다. 개인적인 꿈을 이루었다면 공동체를 위한 꿈 너머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겨울 추위 속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와 같이 꿈 너머 꿈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바통을 받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차례다. 꿈은 개인적인 목표에 국한되죠. 그러나 꿈 너머 꿈은 이타적이에요. 위대한 것이죠. 자신의 존재로 인해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공동체적인 꿈을 말하죠. 링컨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있음으로써 우리 사회가 좀 더 좋아지는 것이다.” 이 말처럼 세상을 밝히는 꿈 너머 꿈을 갖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어요.
A place for fun and healing Children attend a class at Godowon Healing Center’s English-learning camp. (Ahn Hoon/The Korea Herald)Godowon Healing Center offers something to enjoy for all ages. The center opened in 2010 with funds donated by Go Do-won’s readers. The property, located in Chungju, North Chungcheong Province, gives visitors an opportunity to have a quiet time to learn more about themselves, away from their daily lives.The center’s program is very diverse. There is a program for soon-to-be mothers, newly married couples, young adults, and those who suffer from painful disorders. There is also a walking program, where one can take a slow walk while meditating. The center also welcomes many volunteers to assist in the running of its programs. Every volunteer has to go through a training program, where they learn the basics of meditation and what it means to serve others.Those who are concerned with their health can check out its “meditation and healthy eating” program. The program consists of meditation sessions and eating healthful food, but overeating is not allowed. One can enjoy a healthy meal such as this at Godowon Healing Center. (Ahn Hoon/The Korea Herald)Those who are single may be interested in checking out the center’s program created exclusively for singles in their 20s to 40s. The program offers an opportunity to make new friends while experiencing different kinds of meditation, including dancing meditation and fragrance meditation.The center also runs an English-learning camp, named after Abraham Lincoln, the 16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t is held twice a year; applications for its winter edition are closed for this year. The next camp will be held in the summer.Visitors are served with healthful meals throughout their stay. Soybean sprout rice, tofu, and soybean soup are some of its lunch menus. No MSG is used in the kitchen, said director Go. For more information, call 1644-8421 or visit www.godowoncenter.com. Morning Letters Since 2001, Go Do-won has been sending his “Morning Letter” to email subscribers from Monday to Saturday. Each email (in Korean only) consists of a quote from a book as well as a short message written by Go. Those who are interested can subscribe online at www.godowon.com. The website also provides an overview of the books that Go used in writing his letters, as well as an archive of Go’s letters sent since 2001. A smartphone application is also available. By Claire Lee (dyc@heraldcorp.com)
In search of inner peace ‘Morning Letter’ guru Go Do-won shares tips on living well Go Do-won enjoys the view at Godowon Healing Center in Chungju, North Chungcheong Province, Jan. 3. (Ahn Hoon/The Korea Herald)CHUNGJU, North Chungcheong Province ― Located in Chungju, North Chungcheong Province, Godowon Healing Center is a serene place, a rarity these days. Surrounded by mountains and trees, it is where people meditate, eat what’s healthful, and go for slow walks in the hope of clearing out what is cluttering their mind. It may be hard to believe, but the center’s famous director, Go Do-won, used to be a very busy man. He enjoyed a prolific career as a journalist and as a speech writer for late President Kim Dae-jung, until his health began to fail in 2001. It would have been no exaggeration to call him a workaholic in those days. “I only took three days off during my five-year term as President Kim’s speech writer,” Go tells The Korea Herald.The 60-year-old now spends most of his time at his meditation center, where he greets a few hundred visitors every day. His famous “Morning Letter” brings him many fans, many of them young visitors, who bring him a piece of paper and shyly ask for his autograph. He had never imagined the kind of life he enjoys now, though it still lets him do what he has always done: read, write, and share his knowledge. Even after accomplishing so much, however, Go still dreams big. “I want to reach out to the international readers someday,” he says. Go is best known for his “Morning Letter,” a special project that he started in August 2001. For the past 12 years, the former journalist has been sending emails to his subscribers every morning, each of them consisting of a quote from a book as well as a short message written by him. Go Do-won speaks during an interview with The Korea Herald at Godowon Healing Center in Chungju, North Chungcheong Province on Jan. 3. (Ahn Hoon/The Korea Herald) Participants meditate at Godowon Healing Center. (Godowon Healing Center)“I wanted my letters to be the first thing the readers would read after they woke up,” Go says. “Just like how many people pick up their newspapers first thing in the morning.”The first email, sent on Aug. 1, 2001, was received by a few hundred people, mostly Go’s friends and reporters he had worked with. Now, his letters have 3.13 million subscribers nationwide. In 2010, he opened the meditation center in Chungju with funds raised by his avid online readers. In 2001, Go’s health was arguably the worst it had ever been: His arms were paralyzed, while he could not move his neck. To improve his condition, Go started marathon training. Running helped him regain his physical health, but his mind was still uneasy. That’s when he went to his vast collection of quotes from all kinds of books he had read ― ever since he was a kid. “It’s a habit of my father that I inherited,” Go says. “When I was in middle school, my father would make me read a book and highlight all the ‘important sentences.’ At first, I’d just highlight random ones, because I had no idea what was important and what was not. Eventually, this led me to write down the quotes that touched me whenever I read a book.” The view of Godowon Healing Center (Ahn Hoon/The Korea Herald)In his first email, Go wrote about hope. He wrote about it through the words of Lu Xun, one of the most prominent Chinese writers of the 20th century. He found comfort by revisiting Lu’s sentences; Go read Lu Xun’s text for the first time when he was in his 20s, when “no company would even accept his resume” after being expelled from university. He had been arrested for his writings for a student newspaper during the authoritarian regime in the ‘70s.Go later found a job as a writer for a local magazine, and eventually became a politics beat reporter for the Joongang Ilbo, one of the major dailies here. He became President Kim’s speech writer in 1998.“Hope cannot be said to exist, nor can it be said not to exist,” he wrote down Lu’s famous quote, the quote that gave him hope. “It is just like roads across the earth. For actually the earth had no roads to begin with, but when many men pass one way, a road is made.”Born in Jeonju, North Jeolla Province, Go had to move 17 times throughout his childhood. His father was a Protestant pastor who was dedicated to establishing churches in remote areas of the Jeolla provinces. “I’ve been to pretty much everywhere in the province of North Jeolla,” he says. “I’ve been to port towns and mountain towns. My father found a total of seven churches in different locations.” Go grew up watching his father reading and writing his sermon for the services. Go helped whenever his father had to build a new church, using dirt, stone and a shovel. During worship services, Go always sat in the front row, listening to his father’s sermon while studying the reaction of the church members. His father in fact wanted Go to become a pastor, a well-read one at that. “My childhood experience with my father really helped me during my years as a speech writer for President Kim,” Go says. “I understood the loneliness of leadership at an early age.”Things weren’t always great between his parents. His mother was furious whenever her husband brought his newly purchased books home; she thought it was absurd to buy books when there was not enough money in the house.“What fascinated me was he would manage to look as if nothing had happened during his church services, after going through those fights with my mother,” Go says. “He once told me, it can be done when one decides to act like a duck. Ducks manage to look clean, even after being in the mud, after two or three shrugs. Although your reality is fighting with your spouse almost every night, you have to put on a brave face and pretend that it is not affecting you. You just continue doing what you have to do for the people you are responsible for.”Shortly after he started his “Morning Letter,” Go was introduced to the world of meditation. By meditating, he learned to concentrate in critical moments, such as a moment of anger or frustration, and turn negative emotions into positive ones. Those concentration techniques often remind Go of his father, who seemed to be capable of it especially in front of his audience. “Anger is a strong emotion and so is passion,” Go says. “They can be very similar and switched to one another. I learned to appreciate spiritual values and what’s invisible, whereas I used to be very ambitious and career oriented.” One of Go’s role models is Abraham Lincoln, the 16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He sees a lot of similarities between his life and Lincoln’s ― neither had much while growing up, yet both found hope in reading. The Godowon Healing Center’s English-learning camp for children is therefore named after Lincoln. Its program includes reading Lincoln’s famous speeches, as well as writing one’s own speech in English and delivering it in front of a crowd.“My dream is to send the morning letters in English to readers overseas,” says Go. “I don’t want my morning letters to be exclusively a Korean cultural product. I wish to share them with as many people as possible.”By Claire Lee (dyc@heraldcorp.com)
[PBN] 피플 人 피플 - 마음의 비타민` 고도원 (총 15분 8초) ※ 유투브(Youtube)로 동영상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꿈을 잃어버린 채, 혹은 팍팍한 현실에 안주한 채로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꿈 전도사, 꿈의 산파라는 공통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을 만났다. 취재_김민주 기자 사진_이민희(studio lamp) 촬영 협조_깊은산속 옹달샘(1644-8421, 043-723-2033)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기자는 볕이 좋은 가을날,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선생이 충북 충주에 지은 명상 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으로 향했다. 깊게 숨을 들이쉬자, 매캐한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청량하고 무결한 공기가 몸속으로 쑥 들어와 절로 정화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책 몇 권만 달랑 챙겨 들고 와 종일 산책과 독서만 하다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오늘 이곳에선 조금 특별한 만남이 준비되어 있었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등을 쓴 김수영이 ‘아침편지’로 유명한 ‘꿈 아저씨’ 고도원 선생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 명상 센터 내에서도 제법 고즈넉한 자리에 위치한 선생의 서재에서 첫 인사를 나눈 두 사람. 보는 이들을 무장해제시켜버리는 선생의 넉넉한 미소 덕에, 첫 만남의 어색함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버렸고 온기만이 감돌았다. 미디어나 책 등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고 마음으로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넸다는 신?구 멘토는 상처 받은 이들의 영혼을 토닥토닥 다독이듯, 메마른 일상에 희망의 물길을 터주듯, 서로를 향해 꽃처럼 향기로운 말들을 주고받았다 고도원 선생은 300만 명의 회원에게 이메일로 매일 아침, 위로와 희망의 비타민을 전하고 있어요. 수영씨는 꿈 멘토를 자처하며 누구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독려하고 있지요. 사람들에게 열심히 꿈을 심어주는 두 힐러가 만났네요. 김수영_저는 혼자 꿈을 이루면서 다니고요. 선생님이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영감을 주고 계시죠. 사실 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죠. 마더 테레사가 되기보다는 안젤리나 졸리가 되고 싶어요(웃음). 제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이루면서, 타인에게 무한한 용기와 영향을 주는 인물 말이죠. 그러려면 일단 제 내면을 채우고 제 안에서 넘쳐날 때 고도원 선생님처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고도원_내가 수영 님(선생은 대화 내내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녀를 수영 님이라 불렀다)의 활동을 눈 여겨보고 있었는데, 아주 잘하고 있어요. 우선 자기 자신을 채워야 에너지가 모아지거든요. 나 또한 많은 활동을 하지만 늘 사색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을 확보하죠. 그나저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데, TV를 보니까 수영님도 그러대요. 우리한텐 공통된 DNA가 흐르는 것 같아요(웃음).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그 꿈을 말하라 그런데 두 분은 왜 타인의 꿈을 묻고 다니게 된 것인가요? 질문을 받는 이들 입장에선 놀라울 것 같아요. 남에게 내 꿈을 말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물어보는 이도 딱히 없고요. 고도원_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5년을 보냈죠.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죠. 몸에 마비가 오고 고개가 안 돌아갈 지경이었으니까요. 터지기 일보 직전인 뇌에 바늘구멍을 낸 게 바로 ‘아침편지’였어요. 제가 감흥을 받았던 책의 한 구절과 감상을 짧게 적으면서 제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었었고, 이를 이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이 현재는 300만 명까지 늘어나는 기적을 만들었죠. 그러면서 제 안에 꿈이 생겨났어요. 몽골에서 말타기, ‘깊은산속 옹달샘’ 같은 힐링 센터 만들기 등 12가지 정도가 됐는데, 당시에 제가 꿈을 말하면 다들 이죽거리고 조롱을 했죠. 현실 가능성이 없게 들렸나 봐요. 그래도 난 그걸 계속 말했고 정말로 하나씩 다 이뤄가고 있어요. 말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늘 꿈을 물어보게 돼요. 꿈을 물어보면 절반 이상은 “없어요” “몰라요” 그러면서 겸연쩍어하고 당황해하죠. 하지만 “네가 되고 싶었던 것 없어?” “어릴 때 꿈은 뭐였어?”라고 두세번 물어보면 대답이 달라져요. 요즘 많은 사람들은 꿈을 잃은 채 그냥 남과 경쟁하고 분별 없이 질주하잖아요. 하지만 전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보라고 말하죠.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죠. 우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말해야 하고, 기록해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한다는 것이죠. 김수영_저 또한 꿈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자신의 꿈을 찾고 이를 펼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늘 질문을 해요. 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서(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완치되었다) 너무 충격이 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이니 하고 싶을 걸 하면서 살자’ 했는데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당시 73개의 꿈을 써내려가면서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죠. 남들이 보기엔 허무맹랑할지라도 그 꿈을 늘 말하고 도전했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커리어도 쌓았고, 부모님께 집도 사드렸고, 인도 발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고, 킬리만자로에도 올랐잖아요. 꿈을 상상하는 사람의 하루는 너무도 벅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엔 거부 반응을 보이던 이들도 진득하니 물어보면 나중에 표정이 달라져요.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물어봐줘서 고맙다” “당신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라고 말해요. 저는 일단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10년 후엔 뭐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라고 3가지를 물어봐요. 현재, 미래, 미래로 향하는 중간의 자신을 모두 짚어볼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는‘꿈너머꿈’을 품어야 한다 두 분 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대중을 향한 치유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게 되었죠. 고도원_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저는 항상 ‘꿈너머꿈’을 말해요. 꿈의 방향이 1차적으로는 자기중심이었다가 이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백만장자를 꿈꾸고, 의사가 되어서 나 혼자 호의호식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꿈이잖아 요.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 더러는 그게 재앙이 되기도 하죠. 그런데 백만장자가 되어서 학교를 세우고, 의사가 되어서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으로 바뀌면, 그 꿈은 위대함과 품격을 갖추게 되죠. 전 바로 이런 지점을 주창하고 지향해요. 제가 ‘깊은산속 옹달샘’이라는 명상센터를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죠. 여기는 명상 치유 공간이기도 하지만 꿈의 징검다리예요.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변화의 시작을 갖게 하는 곳. 바로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거든요. 김수영_선생님은 완전 제 미래의 모습이에요(웃음). 저는 아직까지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꿈도 참 많아요.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거나 전문가급 사진작가가 되거나 하는 것들요. 제 삶이 이타적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근데 궁극적으로 제가 바라 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제가 영감을 주는 일이에요. 왜냐면 제가 그렇게 해서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폭주족에 가출도 일삼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제가 골든벨을 울리고, 대학을 가고, 세계를 향해 뻗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힘든 건 맞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다 같이 성장하고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인 거죠. 고도원_본인은 이타적이 아니라 하지만 사실은 한 가지 꿈이 아니라 복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타적이에요. ‘나도 김수영처럼 도전을 하면서 살아봐야지’라는 생각을 심어주며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있잖아요. 근데 꿈과 ‘꿈너머꿈’을 가진 사람들은 늘 체력 관리를 잘해야만 해요. 정신없이 내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맥이 풀려버리거든요. 여러 사람의 꿈을 이뤄주는 멘토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멈추지 않고 계속 전력을 다해서 위로 솟구쳐야만 해요. 그때 개인적으로 외로움도 느끼게 될 것이고, 예상치 못한 장벽과도 맞닥뜨리게 될 거예요. 하지만 젊으니까,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수영_제가 강연회를 할 때, 저를 만나고 싶어서 지방에서 서울로 오셨는데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사인을 못해드려 저한테 상처를 받았다, 이용을 당한 것 같다는 식의 메일을 받으면 많이 속상하고 힘이 빠지기도 해요. 그런 게 아닌데 말이죠. 고도원_지금은 젊으니까 사람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원하는 대로 나가요. 지금 나이는 충분히 모든 것을 되돌릴 수도, 다시 쌓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부터 나를 향한 모든 상처를 다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마구 저질러요. 김수영_걱정 마세요. 들이대고 다시 일어나는 건 제 주특기예요(웃음). 고도원_나는 이 진리를 인생의 후반에 알았는데, 수영 님은 전반에 알았으니 나보다 한발 앞섰네. 수영 님은 앞으로 더 중요한 인물이 될 거예요. 난 그렇게 믿어요. 모든 실패와 굴곡은 결국 다 선물이다 그런데 항상 사람들이 나를 향해 힘든 것, 괴로운 것들을 이야기하잖아요. 어느 순간 ‘고통 받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은 안 드나요? 고도원_정말 많은 사람이 ‘깊은산속 옹달샘’에 힐링을 받으러 와요. 요즘 사회생활하기가 힘들다보니 다들 상처를 열 꾸러미씩 어깨에 짊어지고 살거든요.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이들도 내면엔 다 트라우마가 있어요. 솔직히 그걸 쏟아내기 시작하면 때론 나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어떤 기운으로든 회복시켜 보내야 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명상이나 기도로 제가 에너지를 채우지 않으면 어두운 주파수 하나에 그냥 밀려버려요. 처음엔 저도 굉장히 휘청거렸어요. 힐러가 된 이상 내가 고요해지는 법을 훈련해야 할 거예요. 눈물도 많이 흘리게 될 거고요. 김수영_처음에 책을 내고 이름이 알려졌을 땐 제게 연락이 오면 일일이 답장도 해주고 취업까지 직접 시켜주기도 했어요. 그들의 고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요. 근데 제가 일일이 다 개입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고, 결국 자기 인생은 스스 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냥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꿈의 파노라마’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전 세계 사람들의 꿈을 인터뷰해봤죠. 다른 사람의 꿈을 통해 자기를 돌 아보라는 취지예요. 민족 간의 분쟁 때문에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와 제3국을 떠돌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 유명 가수였지만 병으로 목소리를 잃은 사람, 잘나가는 회사에 다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심플한 삶을 사는 사람 등등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꿈과 인생을 통해 해답도 찾고, 갑자기 내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변하기도 하니까요. 수영씨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던진다는 그 질문. 이번엔 제가 해볼게요. 10년 후 두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고도원_계속 꿈을 꾸는 꿈 아저씨로 살고 싶어요. ‘꿈너머꿈’을 갖다 보면 할 일이 점점 늘어나거든요. 이메일 하나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제가 2003년 9월 아침편지에 ‘제가 꾸는 꿈의 종합 편입니다. 산 좋고 물 맑은 대한민국 어느 깊은 산속 에 세계적인 명상센터를만드는 것이죠’라고 썼는데 지금 이렇게 이루어졌잖아요. 국가나 기업의 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십시일반 후원금을 받아서 이걸 이룬 거예요. 믿어지세요? 이게 바로 꿈의 힘입니다. 앞으로는 어린 세대부터 노년까지 모두에게 힘을 주는 프로그램을 원활히 진행하고 싶어요. 향기가 나는 아침편지(공학도인 아들이 이뤄줄 거라 믿는단다)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김수영_제 커리어도 쌓아가겠지만,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오프라 윈프리처럼 방송도 하고 재단도 만들어서 아이들의 꿈을 지원하고 싶고요. 서로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없나요? 고도원_나는 학교에서 제적도 당해보고, 콩밥도 먹고, 사기도 당하고 젊은 시절에 10년간을 완전한 아웃사이더로 살았어요.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본 사람이죠. 근데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좋은 경험이 되더라고요. 수영 님도 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길 바 라요. 상처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수영 님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힐링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너무 유명해지는 것도 경계하고요. 인기란 언제든 떨어지는 법이니까 말이죠. 김수영_지금처럼 열심히 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기댈 수 있는,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멘토가 되어주세요. 고도원_얼마든지요. 아, 그리고 연애도 많이 해봐야 해요. 딱 100명의 남자와 사귀어봐요. 우리 같은 사람은 사랑을 알아야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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