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서류와 면접으로 선발(충주=뉴스1) 윤원진 기자 | 2024-03-10 11:07 송고10일 충북 충주에 있는 국제학교 '꿈너머꿈스콜라스'가 지역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학교 소개 영상 캡처.2024.3.10/뉴스1충북 충주에 있는 국제학교 '꿈너머꿈스콜라스(이하 BDS)'는 지역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을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이번 장학사업은 고도원 이사장의 '아침편지문화재단'이 전액 후원한다. 이달부터 장학생 모집과 선발을 진행한다.학년별 입학 면접(1차 서류, 2차 대면) 전형으로 선발한 지역 장학생에게 졸업할 때까지 전체 학사과정에 필요한 학비의 50%를 지원한다.고 이사장은 "BDS 장학사업은 지역 내 인재, 국제교육 과정에 관심 있는 부모, 나아가 글로벌 리더로서 이타적인 꿈을 꾸는 모든 대한민국 청소년을 위한 후원사업"이라고 말했다.BDS(Beyond Dream Global Leader Scholars)는 2020년 9월 개교한 충주지역의 유일한 국제형 교육기관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남아공, 호주 등에서 초빙한 원어민 교수가 영어만 사용해 토론, 스피치, 전시・공연 기획 등 프로젝트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한다.한국어 교육, 한국사, 한국문화 답사 기행, 고전문학 향유하기, 부모가 들려주는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도 제공해 대한민국의 건강한 정체성을 가진 미래사회 리더도 육성한다.blueseeking@news1.kr
MBC TV 뉴스매거진, 나의 건강비결 2011년4월20일, 'MBC 6시 뉴스매거진' 방영 ...
MBC 스페셜, [마음에 근육을 만들다] 2011년2월18일, 'MBC 스페셜' 방영 ...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더 큰 성공을 이룹니다 많은 사람들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끊기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고,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자동차도 기름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고장이 나기 전에 멈춰서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 마냥 달리기만 하면 강제로 서버리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멈추어야 더 큰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고도원, 《잠깐 멈춤》 중에서 한 남자가 있다. 목사 아버지 밑에서 회초리 맞아가며 강제로 ‘밑줄 긋기 독서’를 하며 자란 소년은 연세대 신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공명심이 강했던 남자는 기자가 됐다. 중앙일보 사회부를 거쳐 정치부에서 기자생활을 오래했다. 박학다식한데다 대인관계에 능통하고 사람 속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남달랐던 남자는 청와대로 가 대통령 연설담당 1급 비서관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을 5년간 담당했다. 힘과 권력이 생겼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마음은 공허하고 몸 여기저기는 굳어갔다. 마음의 쉼터가 필요했다. 남자는 자신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 독서노트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단 편지를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보낸다.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쉽고 짧은 편지. 편지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고, 10년이 지난 지금 수신인이 218만 명에 달한다. 그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명상마을을 만드는 것. 남자는 숲속에 오두막 명상센터를 하나 둘 늘려갔고, 아침편지 회원들의 후원으로 명상센터는 점점 자라고 있다. 남자의 꿈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그 꿈의 종착역은 누구도 모른다. 한 남자가 시작했지만, 꿈을 키우고 실현시키는 것은 218만 명의 회원들이고, 그 회원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쓰는 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10월 충북 충주에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개원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이 빽빽한 산속에 자리한 ‘깊은 산속 옹달샘’은 전날 내린 폭설 때문에 더욱 이질적으로 보였다. 인적 없는 숲 속 마을에는 한낮에도 투명한 정적이 흘렀고, 곳곳에는 좁은 보폭의 사람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명상센터 마을에는 옹달샘 카페, 만남의 집, 나눔 의 집, 명상의 집 등이 띄엄띄엄 있고, 뒤편에는 ‘김정국의 동그라미집’ ‘최재홍의 네잎클로버집’ ‘허순영의 하얀 하늘집’ 등 후원자의 이름을 딴 독채들이 있다. 건물들은 통일성이 없는 듯하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내부 곳곳에 있는 책장, 옷장, 식탁, 탁자 등은 모두 나무 느낌을 살려 자체 제작했다. 명상센터 축을 담당한 건축디자이너 최호근 씨는 이곳의 콘셉트를 “인테리어 없는 인테리어”라고 했다. 고도원 이사장은 언덕 위 ‘고도원의 춘하추동’에서 산다. 이곳에서 고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이곳에서 머물며 떠오른 단상을 담은 책 《잠깐 멈춤》을 펴냈다. 집필실 벽면은 책으로 빼곡했다. 책마다 색 띠지가 붙어 있고, 펼치면 어김없이 밑줄이 그어 있다.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세어본 적은 없어요. 하루 세끼 밥을 먹으면서 지금 까지 먹은 끼니를 계산하지 않듯 저에게 독서는 삶이고 운명이에요. 책 좋아하는 아버지를 만나서 책을 많이 읽었고, 여기까지 왔죠. 많이 읽는 날은 하루 열 권도 읽는데, 책마다 속도가 달라요. 최근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같은 책은 이틀 사흘 쫄깃쫄깃 곱씹으면서 읽죠. 요즘은 구보타 시게코의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고 있어요.” 기자와 정치인, 명상센터 이사장. 고 이사장이 걸어온 세 가지 영역의 길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공명심’ 이라는 면에서는 통한다. 하지만 공명심의 종류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정치인은 성공하면 힘과 권력이 생겨요. 그리고 힘과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죠. 하지만 지금은 같은 공명심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달라요. 겉은 멀쩡한데 속은 다친 사람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 눈물 많은 사람들, 맑음과 고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요. 고요를 지향하다 보면 그 주변도 고요해지죠. 예전에는 펄펄 끓게 하던 일들이 지금은 제 마음을 미동도 시키지 않는 일들이 있어요.” ‘고도원의 아침편지’ 218만 명 회원이 함께 만든 장소 고 이사장은 2001년 8월 ‘희망이란’ 첫 편지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이메일로 편지를 보낸다. 해외여행 등으로 불가피하게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리마인드 편지를 보낸다. 그가 아침편지를 쓰게 된 것은 그 스스로 숨통이 필요해서였다. 1급 공무원으로 재직 시절, 그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피로와 과로가 쌓여갔고, 몸에서 신호를 보내 왔다. 반신이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한 것. 지금도 그는 오른손이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잠깐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아침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좀 더 적극적인 휴식 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은 그는 동유럽 배낭여행을 떠난다. 아침편지 수신자들에게 동행자 신청을 받았는데, 500명이 신청했고, 그 중 버스 한 대 인원인 41명과 함께 한 달간 동유럽을 다녀왔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 의미 있는 일’의 방향성이 달라진 것. ‘고도원의 아침편지’ 발송 초기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1급 공무원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 “정치하려는 거냐?”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고, 청와대에서 정식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편 지 수신자가 많아질수록, 편지 내용이 쌓일수록 오해가 풀렸고, 나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침편지 회원 수를 보고할 정도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작고 전 그와 함께 한 점심 식사자리 에서 김대중 전 대통 령은 “고 이사장이 자랑스럽다, 대견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밑에서 정치를 꿈 꾸는데, 당신은 그럴 만한 소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다. 고도원 이사장은 충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전국 어디서나 2~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낙점된 곳이 충주다. 지금의 명상센터 터를 본 순간 “딱 여기다!” 싶어서 둥지를 틀었는데, 풍수지리학자들은 이곳을 “산의 기운이 온화한 명당”이라고 평한다. 명상센터 개원 전 고도원 이사장은 세계 곳곳의 이름난 명상센터를 다니면서 벤치마킹했다. 프랑스에 있는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에서는 종교적 인 색채를 걷어내고 ‘걷기명상’을 취했고, 인도의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는 상업적인 냄새를 버리고 ‘춤 명상’과 명상센터 건물 간의 동선을 배웠다. 인도 동북부에 있는 명상마을 ‘오로빌 마을’에서는 보리수 한 그루만 있던 척박한 대지가 울창한 숲을 이룬 신화적인 기운을 담아왔다. 국내의 아침고요수목원, 허브나라, 천리포 수목원 등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고도원 이사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직접 교류 하면서 그들의 명상을 돕는다. “제가 생각하는 명상의 개념은 멈춤이에요.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말을 하다가 잠깐 멈추고 고요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하던 행위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겁니다. 마음관리를 하지 않으면 공허해집니다. 지금 우 리 사회는 가치의 중심이 육체에서 마음으로 이동하는 중간 지점에 있어요. 점점 마음건강의 중요성이 커지 고, 마음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겁니다.” 그는 ‘꿈 너머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의사가 되어서 불쌍한 사람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것은 ‘꿈 너머 꿈’이다. 그리고 그 꿈 너머 꿈이 위대할수록 꿈을 이룰 수 있는 확률도 높 아진다고 한다. “인생 디자인을 시작하는 시기의 청년들에겐 꿈 너머 꿈이 필요해요. 꿈을 이루기까지는 자기 중심적이어야 하죠.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백만장자가 되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건 시시하잖아 요. 저희 프로그램에 오신 한 CEO가 본인의 꿈이 세계 최고의 기업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랬 어요. ‘세계 최고의 기부자를 꿈꾸십시오. 그러면 세계 최고의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은 저절로 되겠지요?’ 라고요. 꿈 너머 꿈이 멋있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꿈 너머 꿈 덕분이에요. 꿈 너머 꿈이 멋있고 공적이고 이타적이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생겨요. 고상하고 힘있는 사람이 꼭 생깁니다.” 기획: 김민희기자 l 사진: 김선아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지쳐버린 몸과 마음.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로 유명한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 그곳에서 비움과 채움의 하루를 보냈다. 유난히도 바람이 차갑던 새벽,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여를 달려 충북 충주의 ‘깊은산속 옹달샘’ 에 도착했다. 지난 10월 문을 연 이곳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아침편지 문화재단에서 운영 하는 명상 치유 센터다. 팍팍한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이 찾아와 휴식, 명상, 운동, 마음수련을 하고 에너지를 충전해 돌아가고 있다. 기자는 하루 명상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마음 같아서는 3박 4일 정도 맑은 공기 마시며 정신수양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일단 하루만이라도 머리를 비워보자 생각했다. 1_2인 1조로 짝을 지어 하는 림프 마사지는 힘을 빼고 여유롭게 진행하는 것이 포인트. 2_명상 참가자들이 스트레칭과 요가 동작을 따라 하며 오수 명상을 하고 있다. 3_걷기 명상을 하며 겨울 산을 걷는 모습. 따뜻한 옷과 등산화는 필수 준비물이다. 침묵의 산행, 걷기 명상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걷기 명상을 위해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을 걷는 것이 꽤나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말 한마디 없이 그것도 아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쌓인 눈을 밟으며 걸음을 옮기는 소리, 멀리 서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가 전부였다. 그리고 한 번씩 징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췄다.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숨을 크게 쉬었다. 키가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 나무 기둥에 낀 초록의 이끼도 보였다. 멈추는 것보다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것에 익숙해져 잠시 동안의 침묵과 멈춤이 낯설기도 했지만 곧 내가 그동안 지나친 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짧지만 길었던 오전걷기 명상이 끝나고 돌아온 점심 식사 시간에는 곤드레나물 밥과 유채나물을 곁들여 먹었다.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자연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체면 불구하고 밥을 두그릇이나 뚝딱 비워냈다. 15분의 낮잠으로 가벼운 몸 만들기, 오수 명상 점심 식사를 많이 해서인지 잠이 살짝 오기 시작했는데 오후 첫 번째 프로그램이 낮잠을 잘 수 있는 오수 명상이라니 대환영이었다. 오수 명상은 올바르고 건강한 호흡법을통해 몸속에 쌓여 있는 나쁜 것들을 내보내 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호흡법만 바꿔도 몸과 마음이 훨씬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숙면을 위한 스트레칭도 배웠다. 다양한 요가 자세를 따라 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뒤 구르기까지 하며 굳었던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낮잠 시간. 잔잔한 수면 음악을 들으면서 편하게 눕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15분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며 숙면에 빠진 참가자가 많았다. 기자 역시도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흠뻑 땀 흘리며 에너지 쏟아내기, 춤 명상 춤 명상? 어떻게 춤과 명상이 한 단어로 묶일 수 있는지 의아했다. 춤을 통해 명상을 하는 것이라기에 자리에 앉아 약간의 율동 같은 것을 함께하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트위스트부터 시작해 포크 댄스, 스포츠 댄스까지 다양한 춤을 섭렵했다. 몸치인 기자는 기본 스텝부터 엉키더니 끝나는 시간까지도 남들과 다른 댄스 세계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환한 대낮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바닥만 쳐다보고 몸동작도 쭈뼛쭈뼛했다. 하지만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따라하면서 점차 흥이 났고 남들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의 즐거움에 몰입하게 되었다. 땀이 흐를 정도로 한바탕 신나는 댄스 타임이 끝나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춤 역시도 ‘덜어내기’ ‘내려 놓기’의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춤을 통해 내 안의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고 그동안 잊고 있던 내 안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로마 향으로 심신 치료, 향기 명상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향기 명상은 다양한 아로마 향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향기명상협회의 김윤탁 박사가 명상을 진행 했는데 불면증에는 라벤더 향이 피부 미용에는 로즈메리 향이 효과적 이라고 추천했다. 그리고 파트너와 함께 림프 마사지를 직접 해보는 시간 도 가졌다. 아로마 오일을 손에 묻혀 귀 뒤쪽부터 목을 타고 내려와 쇄골 까지 천천히 원을 그리며 마사지하는 것이었는데, 매우 간단했지만 신기 하게도 뻐근하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쉴 새 없이 몸을 순환하는 혈액과 달리 림프액은 하루에 딱 한 번만 순환하기 때문에 나쁜 기운이 잘 내려 가고 림프액이 잘 돌도록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모두 명상의 자세를 잡고 앉아 눈을 감고 ‘내려놓기’ ‘용서하기’를 했다. 그동안 용서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혹은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이었는데 많은 참가자들이 눈물을 흘려 한동안 불을 켜지 못하기도 했다. 명상 센터 개원 후 벌써 3번째 방문이라는 이광희(30)씨는 “좋은 공기와 좋은 사람, 좋은 음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며 “너무 바쁘게만 달려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먼 길을 왔는데 돌아갈 때는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얻어가는 것 같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감을 밝혔다. 기획: 강승민기자 l 취재: 박해나(프리랜서) l 사진: 이민희(studio lamp)
KBS 1TV '책읽는 밤', [작가 고도원을 만나다] 2011년2월8일, KBS 1TV 방영 ...
아침편지 배달부 고도원의 인생 처방전 "바쁠수록 천천히, 마음에 쉼표를 찍으세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분주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는 방법, 마음속에 수시로 짧은 쉼표를 찍어보자. 심오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이 진리는, 매일 아침 217만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고도원이 발견한 인생 처방 레시피다. 아침편지 배달부 고도원이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3년 만에 새 책이 나왔단다. 이라는 제목의, 커다란 쉼표가 있는 노란색 표지의 책.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참이라 커다란 쉼표의 울림이 꽤 컸다. 그 울림을 간직한 채 그가 있는 충청북도 충주의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았다. "쉼표 하나에 위안을 느끼셨다고요? 하하하. 요즘 자주 듣는 이야깁니다. 다들 많이 지치셨나봐요.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 시기가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잠깐 멈추자는 것이 사실 대단히 계몽적인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기존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말도 아니고, 아침편지에서도 꾸준히 언급했던 내용이에요." 아침편지는 지난 10년간 고도원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보내고 있는 이메일 편지다. 자신이 읽은 책속의 인상적인 구절에 본인의 단상을 더해 한 통의 편지 형식을 완성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눈높 이를 낮춘 데다, 텍스트의 분량도 많지 않아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독자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인들에게 보내던 편지가 소문이 나서, 지금은 엄청난 숫자의 독자들이 그의 편지를 받아보고 있다. 수없이 쏟아지는 스팸메일 속에서 얌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그의 편지에는, 학창 시절 짝궁이 서랍속에 몰래 넣어 주던 정성 가득한 편지를 받아보는 듯한 설렘이 있다. "좋아하는 몇 사람에게 보냈던 아침편지가 행복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퍼져서 지금은 217만 명이 넘는 독자가 생겼어요. 책 한 권과 그 속에 적힌 글 한 줄이 사람의 운명과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이 번에 나온 은 아침편지의 연장선이에요. 아침편지로 주고 받은 수 많은 이야기들 중 '멈춤'에 관한 단상들만 모았죠. 이메일이 아닌 종이 편지를 묶어서 낸다는 생각으로요." 치열한 젊음 이후의 쉼표가 인생을 바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재밌는 이력을 갖고 있다.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독자들도 "고도원이 사람 이름이었어?" 라거나 "고도원은 편지 보내는 회사잖아!"라며 단정 짓는 경우가 있다. 그가 작가인지, 시인 인지, 종교인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그는 글쟁이 출신이다. 연세대학교 대학신문인 의 편집국장을 지냈고, 와 에서 기자로 15년간 활동했다. 1998년부터 5년간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냈다. "피 빨아먹는 직업이지. 잘 알잖아요. 잡지사 기자로 5년 일하고, 일간지에서 사회부, 정치부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냈지. 하루도 여유 없이 살았어요. 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5년동안 3일 쉬었나? 지금 생각하면 서글프죠. 황금 같은 인생에서 어저면 가장 빛날 시기에 일만 하면서 보냈 으니까. 물론 여한 없이 일을 했다는 충만감은 있지만,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웃음) 기자와 연설담당 비서관 사이에는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트레스가 막중한 일이라는 점도 비슷햇다. "기자시절 우리끼리 농담처럼 주고받던 말이, 가정을 버려야 가정을 지킨다는 말이었어요. 새벽3시에 나가서 밤새 기사 쓰고, 담배도 엄청 많이 피우고. 그렇게 몸을 함부로 대했더니 몸에서 말을 걸어 오더라고요. 온몸이 돌처럼 굳어 버리고, 손가락 하나 옮길 수가 없는 지경이 됐어요." 그때부터 그의 행보는 조금 달라지고, 조금 넓어 졌다. 몸과 마음에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인식하니 자동적으로 '멈춰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업무가 아닌, 본인을 위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마라톤을 했고, 아침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니 마음이 정돈되고, 마음을 가다듬는 다양한 방법이 떠올랐다. 아침편지가 자리하는 공간이 점점 커졌고,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 치열한 일상에 쉼표를 찍으니, 마음으로는 수시로 평온한 바람이 불었다. ‘아침편지에서 출발한 고도원식 마음 치유 프로그램' "아침편지가 벌써 10년째 접어들었어요. 심신이 지쳤을 때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동참해주셔서 제가 더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영감 이 오지 않아 괴로워할 때도 있지만요."(웃음) 아침편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만큼 그의 책임감도 커졌지만, 또 그만큼 편지를 읽고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는 독자들도 늘었다. 그 독자들과 공감할 거리를 찾고 싶었다. 한 통의 편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아리처럼 삼삼오오 뜻이 맞는 사람도 생기고요. 아무래도 정서 상태나 감정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자기들끼리 모여서 여행 동아리도 만들고, 건강 동아리도 만들어서 아침편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요. 덕분에 제 활동 반경이 굉장히
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과 명상의 숲 거닐다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충주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만난 고도원의 눈빛은 진중하면서도 따뜻했다. 매일 아침 희망과 격려를 보내온 그와 마주한 순간,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를 편안함으로 물들어갔다. 지난 10년간 한결같이 아침에 배달되는 편지가 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어쩌면 그리 나를 잘 아는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을 때도 여러 번이다. 천천히 곱씹으며 음미할수록 편지는 더욱 깊은 맛을 낸다. 2001년 8월 1일에 시작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이야기 몇 줄에 웃고 울고 위로 받고 꿈을 찾는 사람들이 이제 218만 명에 다다른다. 아침편지의 자양분, 책을 말하다 충북 충주의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춘하추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고도원의 집필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따듯한 편지가 발송되는 곳에 들어서니 책장마다 가득히 꽂혀 있는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책은 명상센터 내 도서관으로 옮긴 터라 극히 일부부만 있는 상태라지만 그래도 보통의 서가와 비교하면 누군가는 평생 걸려도 다 못 읽을 정도의 분량이다. 어린 시절 시골교회 목사였던 아버지가 물려준 독서습관은 그의 가장 큰 유산이자 인생 그 자체다. 늘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도록 강조했던 아버지가 싫어 반항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이었으리라. 짧은 글, 긴 생각을 담아낸 그의 편지가 탄생한 데는 몇 십 년을 이어온 독서습관과 독서카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책에서 발췌한 글귀를 담아 차곡차곡 정리해놓은 독서카드는 그가 앞으로 5년간 책을 읽지 않아도 아침편지를 거뜬히 쓸 수 있을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인생 자체가 독서라고 말하는 그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일까. “책은 정신의 산물이자 영적 소산이에요. 다른 사람의 정신에 상처를 내기 위해 책을 펴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모든 책이 다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기에게 가장 좋은 책은 가슴을 뜨겁게 하고 녹아내리게 하는 책, 밑줄 긋는 부분이 많은 책이에요. 단 한 권의 책, 하나의 밑줄이 인생을 바꿔놓으니까요.” 책 속에 담긴 영혼을 읽어내고 싶어하는 사람. 지식의 축적물이면서도 저자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저자와 정신적 교감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평소에 독서를 즐겨야 저자의 생각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음식으로 치면 처음부터 미식가가 되진 않거든요. 이것저것 먹어보고 엉터리도 맛봐야 진짜 음식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처럼 한순간에 책을 통해 저자와 교감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늘 친구처럼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그는 책을 기계적으로 읽지 않는다. 하루에 서너 권 볼 때도 있지만 ‘칼의 노래’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이 ‘쫄깃쫄깃한’ 소설들은 한 권을 일주일에서 최대 두 달까지 천천히 음미하기도 한다. 꼭꼭 씹어 행간까지 정말 사귀는 듯한 마음으로 읽어야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된다는 생각이다. 인생을 바꾼 세 번의 기회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순간 말이다. 고도원에게도 그런 때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학 학보사인 연세춘추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 위해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 학보지에서 기자 일을 경험하면서 그의 인생 방향도 바뀌어 글쟁이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당시에 그가 썼던 글이 긴급조치 9호 때 문제가 되어 강제징집을 당했고 결국 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포장마차, 문방구 운영도 해봤지만 사기를 맞거나 결국 실패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자살만도 여러 번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이 이제 와 소중한 경험이 되었죠.” 암흑과도 같은 삶, 한 발 짝도 내딛기 힘들었던 시기에 인생의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아내를 만난 것이다. “아내는 새카맣고 작아지고 움츠러들던 시절에 만난, 저에게는 말벗이자 에너지가 되어준 동갑 내기 친구예요.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꿈만 먹고살았어요. 그야말로 황당한 꿈이 었죠. 많은 사람들이 꿈을 듣고 나면 눈빛이 달라 지고 갈라서거나 다투기 일쑤였는데 아내만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들어줬어요.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박수쳐준 것이 저에게는 그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됐죠.” 6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부에게 는 일곱 번의 이별과 재회가 있었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던 그는 자신과 아내는 서로 다른 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달리 당시 저는 웃음이 많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서울 태생에 부잣집 딸인 데 반해 저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촌놈 중에 촌놈이었죠. 또 저는 기독교인이고 그쪽은 불교 신도였고요. 어쩜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연애하는 동안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 합해져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헤어진다고 해서 또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더 다시 만나자”와 “각자의 길을 가자”를 반복하던 끝에 그는 작심하고 새벽부터 아내를 집 앞에서 기다렸다. “우연을 가장한 채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갔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나오는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죠.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전기밥솥 하나 놓고 시작한 살림이 벌써 35년이 지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 시절, 꿈을 꾸게 하고 어둠의 터널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아내를 두고 그는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저도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있지만 그 추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안 좋은 마음이 오래 못 가죠. 한순간에 바로 꼬리 내리고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어요(웃음).”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 기자와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16년여를 지내온 그가 1998년부터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살게 된 것은 인생의 세 번째 기회였다. 그가 하는 일은 대통령의 모든 연설문, 기고문 등 대통령을 대신해 글의 초안을 쓰는 것이었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어요. 긴장과 스트레스가 엄청나 손과 어깨가 마비되어 거의 죽을 뻔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죠. 누구보다 대통령의 생각, 철학, 표현방식을 가장 깊이 꿰뚫고 있어야 했어요. 그만큼이나 세계,국가, 역사, 민족을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를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5년간의 임기를 마치자 그에게는 정치권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당시 정계에 진출했다면 지금과는 아마 다른 모습이었을 터. 하지만 그는 청와대를 나온 뒤 바로 배낭을 메고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정치권에서 제의가 몇 번 더 있었지만 아침편지에 모든 힘을 쏟기로 결심한 그이기에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지켜오고 있다. ‘오늘 편지는 당신을 위해 보냈어요' 아픔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상처에 공감하고 치료할 수 있듯이 지금의 아침편지가 218만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위로하게 된 데에는 그의 지난 세월이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여기에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직함과 소명의식으로 아침편지를 지켜온 그의 의지도 있었다. “아침편지 글 한 줄에 사람의 운명이 바뀌고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보며 세상에 이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일이 있겠냐는 생각을 매일 해요. 이제 저의 남은 생에 소명과도 같은 것이 된 거죠. 이 세상 소풍이 끝나기 전까지 아침편지를 쓰다 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느 작가와 달리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편지를 작성한다. 이글을 하루 종일 생활하며 생각하고 다듬은 뒤 자정이 되면 메일로 새로운 편지를 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어떤 편지는 쓰는 것이 몇 분 만에 끝나기도 해요. 그런데 어떤 편지는 몇 달을 걸려 쓰기도 하죠. 많은 명상이 필요한 일이에요. 원래의 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제가 덧붙이는 코멘트와 함께 더 글이 살아나야 하잖아요. 예전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과 함께 보낸 편지는 6개월 이상 걸린 거였어요. 시인의 일생에 보석 같은 글에 코멘트를 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는 편지를 쓸 때면 꼭 누군가를 떠올린다. 오늘 편지도, 내일 편지에도 꼭 수신인이 있다. 수신인은 마음의 대상일 때도 있고 직접 만난 사람일 경우도 있다. “저와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이나 저에게 상담하러 온 사람의 아픔을 발견하고 난 뒤는 그분을 생각하면서 편지를 쓰게 돼요.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서 ‘이 글은 오늘 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겠다’, ‘해답을 줄 수 있겠다’ 싶은거죠. 유행가도 한 사람이 듣고 눈물을 흘리면 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잖아 요. 아침편지도 단 한 존재만을 위해 보내 는 것이 오히려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는 힘이 됐다고 생각해요.” 지난 10년간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매일 한결같이 편지를 보내온그. 가장 기억 에 남는 편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제일 처음 보냈던 편지를 꼽았다. “2001년 8월 1일 노신의 ‘고행’이란 책에 희망 이란 제목으로 보낸 편지예요. 돌아가신 아버님 이 남긴 책에 밑줄이 그어진 내용이었거든요. 처음에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아버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어요. 제가 아침편지에 소개하고 나서 많이 회자 되면서 그 편지가 자기 인생에 새로운 길을 내는 디딤돌이 됐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지난 10년의 많은 분들이 편지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네요.” 일상으로부터 잠깐 멈춤, 명상 “명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도인을 만드는 일이나 종교적인 행위로 받아들이는데 ‘깊은 산속 옹달샘’은 그런 모든 것을 벗어난 곳이에요. 열심히 사느라고 지친 사람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울화와 상처,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잠깐 멈춰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곳이죠.”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은 물론이요, 이곳에서 터득한 명상방법을 응용하면 생활 속 공간도 명상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고도원이 이야기하는 명상은 숲속 깊은 곳에서 세상과 별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한, 에너지를 채우고 고갈되지 않게 하는 의미에서의 명상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20∼30대 때 누군가 명상을 알려주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에요. 저는 마흔아홉 살에 명상을 알았어요. 그때 기자 생활로, 청와대 생활로 건강이 완전히 무너졌던 시기였거든요. 명상은 그런 저에게 섬광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에게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마라톤이 일종의 명상이었다. 두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달리고 나면 더 깊이 사색하고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고도원은 “설거지든 화장실 청소든 다른 것 다 내려놓고 거기 에만 몰두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은 명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다수 명상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을 발견한 그가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명상법을 연구한 것이 지금의 ‘깊은 산속 옹달샘’ 명상센터로 이어 지게 됐다. 이곳에는 하루짜리 걷기 명상, 단식 및 다이어트 프로그램, 청년학교, 싱글학교, 부모학교 등 목적에 따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제는 아침편지와 더불어 더 많은 이들이 보다 젊은 나이에 명상을 접할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사명이 되었다. “잠깐 멈춰서서 보아야 나의 ‘속사람’도 보이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를 알 수 있어요. 지금의 위치를 알아야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죠. 그렇기에 꿈을 가진 사람은 잠깐 멈출 줄 알아야 해요.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그가 지난해 펴낸 ‘잠깐 멈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 속도를 늦추고, 멈춤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와 함께 숲을 걸으며 걷기 명상을 했다. 한참을 걷던 중 징소리와 함께 멈춤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저 걷다가 멈췄을 뿐인데,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그전과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소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미처 듣지 못했던 마음 깊은 곳의 소리까지도. 아주 잠깐의 명상이었을 뿐인데도 그와 헤어지고 서울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가벼웠다. 취재: 김선영기자 l 사진: 양우영기자
[귀 기울여 들어보니] 아침편지 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 꿈쟁이 아저씨, 꿈이 뭐예요? 그는 ‘이사장’ ‘선생님’ 대신 ‘아저씨’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친근한 데다, 지혜롭게 도움과 조언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는 것 같아서다. 나이가 더 들면 그냥 ‘고도원 할아버지’로 불리고 싶다. 엊저녁 무렵, 해가 노루 꽁지만 해지더니 기어이 눈이 내리고 말았다. 바람까지 부니 눈발이 칼날처럼 뺨을 치고, 마당의 빨래는 버썩버썩 뼈를 곧추세웠다. 이렇게 설야 雪夜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기어이 아침은 또다시 오고, 따습게 데운 숭늉 냄새를 풍기며 햇살이 내려오신다. 그 햇살은 연한 향기를 풍기며 고도원 아저씨의 서재 안으로 스며든다. 매일 아침 이메일로 217만 명의 가슴을 깨우는 ‘고도원의 아침 편지’가 태어나는 방이다. 고단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다친 우리 마음을 생각을 깨치기도,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무릎 펴고 일어날 기운을 북돋우기도 하는 아침 편지. 이 방에서 위로하기도, 가끔 정수리에 벼락이 내리꽂히듯 그는 매일 성실한 농사꾼처럼 책을 읽고, 마음을 닦고 그걸 200자 원고지 두 장이 채 안 되는 글에 담아 217만 명에게 ‘아침 편지’라는 이름으로 배달한다. 아버지의 밑줄에서 시작한 아침 편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_루쉰의 중.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2001년 8월 1일 이메일로 전송된 첫 번째 ‘고도원의 아침 편지’다. 그 시작은 아버지가 물려준 책 속의 밑줄이었다. 가난하지만 우리나라 목사 중 손꼽히는 장서가이던 아버지는 매일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책 귀퉁이에 단상을 적었다. 그리고 칠 남매에게도 매일 똑같은 숙제를 냈다. 회초리를 들면서까지 쉬운 책, 어려운 책 밑줄 그어가며 열심히 읽고 독서 카드를 쓰게 했다. 어른이 되고 세상살이의 헛헛함이 몸에 배어가던 어느 날, 루쉰의 책 속에서 아버지가 밑줄 그은 대목을 읽는 순간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이 글을 읽으며 어떤 마음이었기에 밑줄을 그으셨을까요. 밑줄 친 그 대목을 두 번 세 번 읽으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함석헌의 , 아널드 토인비의 는 내 삶이 아득해질 때마다 펼쳐 밑줄 그어가며 수십 번을 읽었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유산’ 속 밑줄이 아침 편지의 시작입니다.” 저 남자의 사연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하는 그 눈빛으로 그는 밑줄에서 만난 아버지 이야기를 전했다. 역시 목사의 딸로 자란 나는 그 이야기에 책 냄새 가득한 내 아버지의 방을 떠올렸고, 무언가가 가슴에 차올라 큰 숨을 내쉬었다. 충주의 깊은 산속에 들어선 명상 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그의 집필실이 있다. 이곳의 다른 건물들처럼 친환경 건축을 표방한 이 집은 볏짚으로 만든 스트로베일 하우스다. ‘건강한’ 아침 편지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애당초 그는 글쟁이였다.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려고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한 후, 대학 학보인 기자와 편집국장을 거쳤다. 하지만 유신 시절 필화 사건으로 제적당하고 수배, 강제 징집을 거치면서 목회자의 길도, 글쟁이의 길도 막혔다. 백수 생활 하다 마음 오지게 먹고 포장마차, 동네 문방구, 웨딩드레스 숍도 차려봤지만 결국 실패했다. 추운 곡절 끝에 그는 다시 글쟁이로 돌아와 월간지 기자로, 정치부 기자로, 1998년부터 5년 동안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살았다.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데다 대단한 문필가, 엄청난 다독가인 김대중 대통령을 위한 연설문 초안을 5년이나 쓰다 보니 긴장과 스트레스로 어깨와 손이 마비되고 고개가 안 돌아갈 정도였어요. 뇌가 터지지 말라고 바늘구멍 하나 낸 게 아침 편지예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밑줄 숙제’처럼 책에서 얻은 감흥을 짧게 쓰면서 전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걸 친구와 지인에게 보냈더니 그들이 자신의 지인에게 그 글을 보내고, 또 그 지인이 다른 이에게 글을 추천하면서 퍼져나갔지요. 아침 편지를 읽은 이들이 저처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걸 보고 아침 편지는 ‘글’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깨달았어요.” 중풍 맞은 친구가 젓가락을 들며 “도원아, 젓가락 드는 게 얼마나 위대한 건지 이제 알았다”고 말한 날 그 친구를 생각하며 쓴 아침 편지를 읽고 자살을 포기했다는 20대 여성의 이야기, 학업에 뜻이 없던 대학생이 인터넷 검색창에서 ‘고도리’를 찾으려다 ‘고도원’을 잘못 찾아 아침 편지를 읽었고 그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아침 편지는 누군가에게 새 인생까지 선물하는 생명의 글이 됐다. 나도 삶의 압각에 괴로워하던 때 아침 편지를 읽으며 누군가 나를 뜨거운 눈물로 어루만져주는 것 같아 읽고 또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왼쪽) 아버지가 물려준 책 ,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밑줄’이라는 유산. 꿈 너머 꿈 청춘이라는 건 인생을 계속 연애 방식으로 살겠다는 말 아닐까. 그는 여전히 붉은 꿈과 연애하는 청춘이다. 217만 명이 아침 편지를 받아보는데도 이메일 주소를 가진 대한민국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배달하는 꿈을 꾸고, ‘영어 아침 편지’를 만들어 전 세계 사람에게 보내는 꿈을 꾼다. 이메일을 열면 실제 향기까지 전달되는 ‘향기 나는 아침편지’도 꿈꾸고 (컴퓨터 공학도인 아들이 언젠가 이 꿈을 이뤄주리라 기대한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꿈도 꾼다. ‘책 읽고 밑줄 긋기 대회’라는 꿈은 이루어져 벌써 7회를 치렀고, 광대한 초원에서 말 달리며 마음의 영토를 넓히는 ‘몽골에서 말 타기 여행’의 꿈엔 이미 1천5백여 명이 함께했다. “제대로 된 문화재단 하나 만들어 사람들의 일상에 향기를 더해줬으면” 하는 꿈은 아침 편지 문화재단으로 이뤘다. “내가 이런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비웃었어요. 간혹 정신 나간 사람, 황당한 사람이라고 조롱했고요. 그런데도 그 꿈을 계속 꾸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기록했어요. 그 꿈은 아침 편지를 타고 번져나갔고 하나하나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전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저처럼 꿈을 말하고 기록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꿈을 말하고 쓰다 보면 꿈을 이루겠다는 열망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요. 젊은 사람을 만나면 전 꿈에 대해 자꾸 묻습니다. 꿈이 없더라도 자꾸 물으면 꿈에 대해 생각할 테니까요. 꿈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 아내는 내가 황당한 꿈을 꿀 때마다 한 번도 조롱하지 않았어요. 아침편지 문화재단이라는 꿈을 꿀 때 아내는 가족회의를 열어, 평생에 걸쳐 장만한 집 한 채를 기증하는 걸로 날 응원했지요. 지금도 충주에서 20여 평짜리 월세 집에 사는 삶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죠. 오히려 청소할 게 별로 없어서 좋다나요. 그렇게 아내는 날 격려하고 포옹하며 늘 내가 꿈을 향해 가는 길 가장 가까이에 있어주었습니다.” 아내 이야기에서 잇새가 수줍게 벌어지는 고도원 아저씨. 그의 꿈이 특별한 이유는 혼자 잘살겠다는 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꿈’이 아닌 ‘징검다리’를 꿈으로 알고 머물러요. ‘부자가 되고 싶어요’ ‘의대에 들어가고 싶어요’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른 후 어떤 삶을 살 것이냐가 더 중요한데 말이죠.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 생각하면 자연스레 그 꿈은 자기중심에서 다른 사람의 방향으로 향해가요. 똑같은 의대 진학의 꿈이라도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된 다음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싶어요’란 꿈으로 옮겨가면 그 결과가 달라지죠. 저는 이런 이타적인 꿈을 ‘꿈 너머 꿈’이라 부릅니다. ‘꿈 너머 꿈’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레 위대해질 수 있어요.” 그의 ‘꿈 너머 꿈’은 아침 편지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들불처럼 번져나가 하나하나 현실이 된 것이다. 십계명에 철저하리라 다짐하는 삶 같아 보이기만 했는데, 그 안에서 난 작은 숨통을 발견했다. 바로 그가 꾸는 황당한 꿈 두 가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소설 쓰기’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무인도를 돌며 알몸 일광욕하기’다. “글쟁이는 가슴 안에 뜨거운 욕망이 살아 있는 사람, 호기심과 지치지 않는 열정이 가득 찬 사람이에요. 아침 편지를 쓰다 보니 사람들이 날 천사표로만 보는데 내겐 그 글쟁이의 끼가 있다고요. 진짜로 야한데 격조 있게 야한, 그런 소설 한 편 쓰고 싶어요. 가끔 글이 퐁퐁 솟아날 때도 있는걸요. ‘절대 포기하지 말고 실행하시라, 기다리고 동참하겠노라, 사후에라도 낼 테니 꼭 쓰라’는 이들도 많아요. 무인도에서 알몸 일광욕하는 꿈은 하루키가 하는 걸 보니 부럽더라고요. 그 자유로움, 그 에너지 충만함이 부러웠어요.” 갑자기 그가 순정한 악동의 눈매로 웃었다. 그 표정에서 난 설핏 그가 요즘 밀고 있는 별명 ‘길박사 (길용우와 박상원 사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이 별명이 이해가 간다. 젊을 때 ‘못생긴 얼굴’ 때문에 별명이 ‘이조사’, 바로 이주일과 조영남 사이였다는 그가 꿈꾸며 살아서 얼굴도 잘생겨진 것일까)’를 떠올렸다. ‘깊은 산속 옹달샘’ 공간 중 ‘허순영의 하얀 하늘집’. 아침 편지 독자인 허순영 씨가 기부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쉬나요? 기록이 기도가 된다고 믿는 그는 2003년 9월 4일 아침 편지에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글을 썼다. “제가 꾸는 꿈의 종합 편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대한민국 어느 깊은 산속에 세계적인 명상 센터를 만드는 것. (중략) 사람들은 편한 옷차림으로 휴식하며 명상하고 꽃과 나무를 심습니다. 그다음 일정한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는 휴식+운동+명상+마음 수련의 코스를 밟고 새 공기를 마시게 됩니다. (중략) 내면을 깊이 채우는 명상을 할 수 있고 며칠 머물고 가는 것만 으로도 마음의 치유가 가능한 그런 맑은 공간을 세우는 것…. 이것이 제 또 하나의 꿈입니다.” 이 황당무계한 꿈도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충북 충주의 원시림 60만 평에 명상 센터를 짓고 있다 (이미 1만 평은 완성돼 ‘걷기 명상’ ‘비채 명상’ ‘중년 부부학교’ ‘어머니 학교’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꿈의 바탕에는 아내가 뿌린 ‘이타적인 씨앗’이 있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던 시절, 아내가 아침고요수목원에 들렀다가 재정난 소식을 듣고 꿈을 이루라며 선뜻 10만 원을 주고 왔다. 10년 후 그 수목원에서 ‘연애편지’라며 전한 편지 봉투에는 100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꿈이 담긴 그 돈에 그가 100만 원을, 아들과 딸이 각각 50만 원을 보태 ‘깊은 산속 옹달샘’ 통장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원자들이 1300만 원을 모았고, 이 미담을 아침 편지에 썼더니 한 달 만에 13억 원이 모였다. 다시 5만 명이 마음을 보태 60억 원이 만들어졌다. “아내가 뿌린 씨앗이 꿈을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아하자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은행 돈 1원도, 국가 예산 1원도 지원받지 않고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꿈을 이뤄내고 있는 거죠.” 아,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는 것 같다. (왼쪽) 역시 아침 편지 독자인 최재홍 씨가 기부해 ‘최재홍의 네잎 클로버 집’이라 이름 붙인 집 앞에서. “자동차도 기름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고장 나기 전에 멈춰 서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잠깐 멈춰야 하죠. 그래야 더 큰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잠깐 멈출줄 아는 사람입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의 ‘걷기 명상’ 중에도 징 소리와 함께 멈춤의 시간을 갖습니다.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 섭니다. 그렇게 멈춰 서면 고요해집니다. 고요해지면 소리가 들립니다. 그 전까지 들리지 않던 새소리, 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더 고요해지면 마음의 소리, 영혼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나온 그의 책 의 머리글이다. 잠시 멈춰 서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오만도, 오해도 내려놓고, 조용하고 나직한 것에 귀 기울이고 마음 기울이는 곳, 바로 ‘깊은 산속 옹달샘’의 꿈이다. “이 꿈이 완성되기 전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어려움때문에 중도에 멈춰 서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않아요. 내가 아니면 후대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계속 이어갈 테니까요. 어려우면 잠깐 멈춰 서 있다가, 뒤돌아서거나 물러나지 않고 잠깐 멈춰 서 있다가 여건이 되면 또 나아가면 돼요. 그런 걸 생각하면서 2025년을 완공으로 정했어요. 이곳은, 이 꿈은 공공의 재산으로 대물림될 겁니다. 이건 결국 내 꿈이 아니라 아침 편지로 함께 모인 사람들의 꿈이니까요.” 이야기는 끝이 났다. 내일자 아침 편지를 위해 황황히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꾸무럭해진 공기 속에 남았다. 아마 곧 설야의 시간이 올것 같다. 하지만 기어이 아침은 또다시 오고, 햇살이 숭늉 냄새를 풍기며 꿈쟁이 아저씨의 서재 안으로 스며들 것이다. 기자/에디터 : 최혜경 / 사진 : 하성욱 취재 협조 깊은 산속 옹달샘(www.godowoncenter.com) 행복이 가득한 집 (2011년 1월호) ⓒ Design.co.kr
'왕종근의 아름다운 초대'(고도원편) 2010년12월, 광주 MBC 방영 [1부] [2부] ...
노부부 14쌍의 '다시 올린 결혼식' "꼴보기 싫던 남편과 이젠 사랑을 얘기해요"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 위기의 노년, 갈등 풀어 "신혼처럼 새출발 해야죠" "남편이 새신랑처럼 180도 바뀌었어요."안영순(67)씨는 수줍은 신부처럼 호호 웃으며 남편 김호남(70)씨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지난 10일 다른 노부부 13쌍과 함께 충북 충주의 '깊은산속 옹달샘 명상센터'로 1박2일 신혼여행을 다녀온 둘은 사이 좋은 젊은 부부처럼 행복해 보였다. ▲ 수십년 전에 결혼한 중·노년 부부 14쌍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황혼결혼식 ‘리마인드 웨딩’을 갖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들은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의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부부들이다. 복지관은 2008년부터 갈등이 심해 위기에 놓인 노부부들을 대상으로 매주 수·금요일 모여 고민을 털어놓고 앙금을 씻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복지관 관계자는 "넉 달 전 시작할 당시엔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던 부부들이지만 24회 프로그램이 끝나니 마치 신혼 때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고 했다.지난 8일 오후 서울 불광동 팜스퀘어 컨벤셜웨딩홀에서 14쌍의 노부부는 감격의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두 번째로 입장한 안영순씨는 드레스를 살포시 잡아주면서 나란히 걸어가는 남편 김씨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안씨는 "1971년 결혼했지만 내내 사이가 안 좋았다"며 "늘 말도 없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사는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다"고 했다.그는 "두 아들 때문에 꾹 참고 살다가 애들이 대학가고 나면 이혼하려고 했었다"고 털어놨다. 8년 전 이혼서류를 만들어 남편에게 주고 미국에 가 있었던 안씨는 "아들·며느리 걱정도 되고, 그놈의 정 때문에 다시 돌아왔지만, 그저 남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며 "혹시 하는 마음에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런 데를 뭐하러 가자는 거냐"며 불평하던 남편은 "다른 부부들은 저렇게 대화를 많이 하고 사는 줄 몰랐다"며 서서히 달라졌다고 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수업을 듣던 그가 어느 순간 옆에 와 껴안기도 하고, 어색해하면서도 "자식들 키워줘서 고맙고 수고했어요" "사랑해"라는 말도 하기 시작했다. 안씨는 "남은 세월 같이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답답했는데, 이렇게 행복한 날도 오네요"라며 눈물을 닦았다. 부모의 이혼 위기를 지켜봤던 아들 김명훈(35)씨는 "이제 새롭게 결혼하셨으니, 그동안의 아픔은 잊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며 새 출발을 축하했다.결혼 40년을 넘긴 오상길(67)씨는 "옛날엔 왜 그렇게 서로 무심했었는지 모르겠다"며 "매주 두 번 아내와 강의를 들으면서 아내가 사소한 말 한마디에 섭섭해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아내 얼굴이 밝아지니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혜자(64)씨를 보더니 "어쩐지 설레서 밥도 잘 못 먹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다시 결혼하는 장인·장모의 사진을 찍던 사위 박기조(40)씨는 "예전엔 서먹서먹하셨는데, 이렇게 다정해진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했다. 한수연 기자 (sue@chosun.com)
“가던 길 멈추고 잠시 나를 돌아보세요”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의 ‘하루 명상’ 체험기 구자홍│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2003년 9월4일.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한 사람이 꿈꿔온 꿈의 종합편이 실렸다. ‘산 좋고 물 좋은 대한민국 어느 깊은 산속에 세계적인 명상센터를 만드는 것.’ 그로부터 7년 뒤 그 꿈은 현실이 됐다. 10월9일 공식 개원식을 여는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이 바로 그곳이다. 명상센터에서는 이미 지난해 연말부터 걷기 명상과 하루 명상, 비채 명상 등 다채로운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깊은산속 옹달샘에 대한 꿈이 처음 공개된 지 꼭 7년째 되던 2010년 9월4일. 깊은산속 옹달샘을 찾아갔다. 하늘은 청명했고, 햇살은 따스했으며, 골짜기에서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걷기 명상 ‘데엥’ 징이 울렸다. 모두가 내디디던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일순간 고요가 찾아드나 싶더니, 어디선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스윽’하며 나뭇잎 사이로 바람 지나는 소리도 들렸다. 걸음을 멈춰 서니 ‘가는귀’가 트이는 모양이다. 희미하게 들리던 숲의 소리는 차츰 또렷하게 들렸다.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기다랗게 스며든 햇살과 퍼즐조각을 맞춰놓은 듯 드문드문 보이는 파란 하늘이 멋진 조화를 이뤘다. 앞서 가던 사람들 모두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 있다. ‘데엥, 데엥’ 징이 두 번 울렸다. 다시 발걸음을 내디디기 시작한다. 명상센터 이름이 동요에 나오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걷기 명상에 참여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걸까. 징소리에 맞춰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걷기 명상은 어릴 적 즐겨 했던 ‘얼음땡’ 놀이를 연상시켰다. 한 번 치는 징소리는 ‘얼음’, 두 번 치는 것은 ‘땡’. 내 뒤에서 걷던 한 참가자는 내디디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는다. 마치 수행자 같다. 오솔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오르다보니 널찍한 ‘숲 속 음악당’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무를 엮어 만든 무대와 비탈길에 나무를 덧대 임시로 만들어둔 좌석이 정감 있다. 걷기 명상이 진행되는 동안 징소리에 맞춰 가다 서다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걷기 명상 출발 전에 고도원 이사장은 “가던 걸음을 멈춰 서면,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했다. 직접 걸어보니 그 말뜻이 이해됐다. 앞만 보고 가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던 일상생활에 잠시 휴식을 주는 것, 멈춰 서는 것. 그래서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곧 명상이었다. #옹달샘과 토끼 산등성이를 돌아 나오니 커다란 나무가 서 있고, 그 둘레를 원형으로 돌 수 있도록 샛길을 낸 광장이 나왔다. 앞서가던 고도원 이사장이 걸음을 멈추고 마이크를 잡았다. 고 이사장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숲 속의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마셔보라”고 했다. 함께 걷던 옆 사람과 포옹하며 인사도 나눴다. 처음 출발할 때보다 다들 표정이 밝아져 있다. 사우나에서 땀을 흠뻑 흘린 뒤 차가운 물을 끼얹을 때와 같은 개운한 느낌이었다. 걷기 명상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었고, 참된 자아를 찾는 길이었다. 묵언수행 하듯 소리 없이 진행된 걷기 명상은 여기까지다. 숲 속 광장에서부터 걷기 명상 출발지 ‘첫문’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동행한 참가자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어디서 오셨어요. “부천에서 왔어요. 세 사람은 서울에서 왔고요.” ▼ 어떤 계기로 오셨어요? “걷기 명상에 꼭 참여해보고 싶었어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 걷기 명상에 참가해보니 어떠셨어요. “그(걷기 명상) 자체로 좋은 것 같아요. 좋은 곳에 와서 함께 걷고. 여기에 온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 걷기 명상에만 참가했는데, 아쉬워요. 다음에는 하루 명상이나 비채 명상(비움과 채움의 명상)에 참가해야겠어요.” ▼ 명상을 통해 뭘 얻으셨어요. “(명상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뭘 해주길 바란 건 아니에요.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시간이었죠.” 얼마쯤 내려갔을까. 갑자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솔길을 내려가는 도중에 옹달샘이 하나 있는데, 물 마시러 토끼가 샘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진짜 토끼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깊은 산속 옹달샘’ 동요를 연상케 하는 재치 있는 소품이었다. 걷기 명상의 마지막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코스였다. 울퉁불퉁한 돌에 닿는 발바닥은 아팠지만, 기분은 오히려 상쾌했다. #식사 명상. 오전 11시에 시작한 걷기 명상은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며 걷다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걷기 명상을 마친 참가자들은 나눔의 집으로 이동해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이날 점심 메뉴는 해초비빔밥. 청정 먹을거리로 채워진 건강 식단이었다.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종이 울렸다. 걷기 명상 때의 징 역할을 이번에는 종이 대신했다. 수저로 밥을 떠서 막 입으로 가져가려던 사람, 국물을 뜨기 위해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일어선 사람, 부족한 반찬을 가지러 가던 사람,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고 있던 사람 모두가 종소리에 맞춰 ‘그대로 멈춰라’가 됐다. 익숙지 않은 풍경에 처음에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식사 도중 잠시 멈춤 시간을 갖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식탁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모든 이에 대한 감사의 시간을 갖자는 취지였다. 또 자신이 먹는 음식을 찬찬히 살펴보며 음식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자는 뜻도 담겨 있다. ‘뎅 뎅’ 종소리가 두 번 울리자 식사가 이어졌다. 10초 남짓 세 번의 멈춤 명상은 확실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멈췄다 먹다를 반복하다보니 밥을 천천히 먹게 돼 과식하지 않게 됐다. 급히 먹은 밥에 체한다지 않던가. 이것까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식사 명상은 급체 예방 효과가 확실해 보였다. 앞자리에 앉아 함께 식사하던 박모씨는 전날 명상센터 안에 있는 숙소 ‘사랑채’에서 어머니, 부인과 함께 하룻밤을 지냈다고 했다. 그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며 만족해했다. 싱글학교 참가자들은 점심식사 이후 조를 나눠 돌아가며 끼니마다 설거지 명상도 했다. 그릇에 묻은 찌꺼기를 깨끗하게 씻어내는 설거지 명상을 통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앙금과 얼룩을 씻어내자는 의미란다. 싱글학교에는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가했는데, 30대 초반이 가장 많다고 했다. 싱글학교는 ‘싱글일수록 좋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서로 벗하고 살아야 한다. 좋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취지로 9월3일부터 5일까지 제1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11월에는 2기 싱글학교가 열린다. 2박3일 코스의 싱글학교 첫째 날은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자기소개 시간과 뇌 마사지, 싱글특강, 명상마사지, 조별모임 등이 진행된다. ‘나의 꿈, 나의 현실’을 주제로 한 조별모임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깊게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돼요.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안도감도 들고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도 갖게 돼요.”(서울에서 온 30대 후반 여성 참가자.) “집단 미팅 같은 것 아니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에는 “글쎄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서로를 알아가다보면 호감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라며 웃었다. 싱글학교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아 보였다. 우선 “모두 좋은 사람이다”고 입을 모았다. 가식 없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만나는 자리여서 그런지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웠다. 싱글학교 둘째 날에는 이른 새벽에 풍욕과 자연 명상을 하고 아침식사 후에 명상요가와 통나무체조, 걷기 명상을 수행한다. 오후에는 오수 명상과 놀이 명상, 춤 명상이, 저녁식사 후에는 향기 명상과 림프마사지, 마음나누기 프로그램 등이 이어진다. 셋째 날은 새벽산행과 명상, 마무리 명상을 끝으로 해산한다. #향기 명상 오후 2시30분. 명상의 집에서는 하루 명상 참가자를 위한 향기 명상이, 같은 시각 ‘하얀하늘집’에서는 싱글학교 참가자를 위한 놀이 명상이 진행됐다. 놀이 명상 참가자들이 왁자지껄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는 깊은 산속 옹달샘 곳곳에 울려 퍼졌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물 좋고 공기 좋은 산골에서 맘껏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해맑아 보였다. 향기 명상은 한국향기명상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윤탁 박사의 지도로 진행됐는데, 이름 그대로 여러 향을 이용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향기 명상 시간에는 림프마사지도 병행됐다. 파트너(2인 1조로 진행했다)가 향을 바른 손으로 귀 뒤쪽에서부터 쇄골까지 둥근 원을 그리면서 내려온 뒤, 다시 양 어깨 쪽으로 밀어내자 몸 전체가 나른해지며 잠이 쏟아졌다. 1분에도 수십 번씩 몸 전체를 순환하는 혈액과 달리, 하루에 한번 순환하는 림프샘을 자극해주는 마사지다. 김 박사는 몇 가지 향의 효능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줬는데, 로즈마리는 천연 보톡스라 불릴 정도로 피부에 좋다 하고, 라벤더는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유칼립투스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능이 있어 수험생에게 좋단다. #춤 명상 4시30분. ‘명상의 집’에서 한판 멋드러진 춤판이 벌어졌다. 이른바 춤 명상이다. 김성은 댄스테라피스트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를 참지 말고 밖으로 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하아 하아’하는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격하게 움직였다. 본격적인 춤 명상에 앞서 참가자들은 등을 맞대고 서로 인사를 했는데, 독특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눈을 마주 보고 하는 인사는 한눈에 파악되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나이와 성별, 직업 등-를 감안해 격식을 차린 인사를 하게 마련이다. 이에 반해 등인사법은 체온을 느끼며 몸을 비벼가며 상대를 알아가게 되기 때문에 친밀감이 들었다. 춤 명상은 몸치인 기자에게 약간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한참 따라 하다보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중 업무시간 대부분을 책상머리에 앉아 눈은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손으로는 자판을 두드리며 머리를 써가며 일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춤 명상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두 팔과 몸통을 좌우로 흔들고, 두 다리를 교대로 들었다 내렸다 하며 격하게 춤을 추는 사이 몸 안에 쌓여 있던 나쁜 기운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춤 명상에는 격렬하게 춤을 추다 일순간 멈춰 고요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안에서 끓어오르는 그 무언가가 느껴져 울음을 터뜨리는 참가자가 많다. 평소 생활 속에서 발산하지 못하고 몸 안에 쌓여 있던 울분, 분노, 상처 등이 한꺼번에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치유의 눈물’이다. 한바탕 춤을 추고 울음을 쏟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명상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나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더 집중하면 마음의 소리, 영혼의 리까지 듣게 됩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갖고 가만히 명상을 하는 순간,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고 더 큰 에너지가 나의 몸과 마음을 휘도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아침편지 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의 명상 예찬이다. 쉼표 없는 악보로는 어떤 가수도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없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쉼표’와 같은 휴식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잠시 길을 멈춰 ‘나’를 돌아보는 ‘명상’은 삶을 건강하게, 그리고 보람차게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 ‘쉼표’가 아닐 수 없다. 인터뷰 | 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깊은 산속 옹달샘’은 새롭고 활기찬 인생을 살아갈 밑그림을 그리는 곳 꿈을 꾸고, 꿈을 이루고, 꿈의 터전에서 꿈 너머 꿈을 꾸는 사람. 고도원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을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만났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어떤 곳입니까. “자연 치유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분들은 업무와 관계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저마다 분노와 수치심, 자괴감과 절망감 등을 안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위장병에 시달리거나, 마음의 병인 우울증이나 불면증 등으로 고통 받기도 하지요. 이런 분들이 공기 좋고 물 좋은 환경에서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가는 곳이 바로 깊은 산속 옹달샘입니다. 걷기 명상이나 비채 명상(비움과 채움의 명상)에 참가하고 나서 ‘치유받았다’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명상의 좋은 점은 뭡니까. “명상을 하다보면 어떤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생각의 관점이 바뀌는 순간이 있어요. 환경과 조건은 그대로인데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몸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이 바뀝니다. 옆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또 자신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용기를 내게 됩니다. 닫아놓은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열게 되는 것이죠.” -명상 프로그램이 이미 다양하게 시행되고 있더군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 공식 개원식은 10월9일 열린다. 당초 4월24일로 예정했지만, 구제역이 번져 불가피하게 10월9일로 연기됐다.) 많은 분이 관심과 기대를 갖고 참여하고 계십니다. 참가자들이 명상 체험 이후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희망을 봤습니다. 사명감도 있고요. 앞으로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에 주력하고 싶습니다. 이곳이 명상 체험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꿈을 찾고, 그 꿈을 키우고, 한걸음 나아가 그들의 꿈 너머 꿈을 키우는 수련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룬 사람만이 새로운 꿈, 꿈 너머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저는 49세에 명상을 처음 알았습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 더 일찍 더 많은 젊은이가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명상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반나절 코스의 걷기 명상과 하루 코스의 ‘하루 명상’, 그리고 3박4일 코스로 ‘비채 명상’과 ‘꿈꾸는 부부학교’ ‘사과·청국장 옹달샘 명상다이어트’ 등의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2박3일 코스의 ‘몸만들기 마음만들기’와 6박7일 코스의 ‘옹달샘 단식명상’도 운영 중이다. 앞으로 ‘어머니학교’와 대학생이나 20대 직장인을 위한 ‘꿈꾸는 청년학교’, 그리고 초·중·고 재학생을 위한 ‘꿈나무 청소년 수련 캠프’ 등도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휴식과 명상이 필요한 직장을 위한 기업 연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건물 하나하나가 특색 있더군요. “기부하신 분들의 뜻을 기리고 건물의 특색을 잘 보여주기 위해 제각각 이름을 지어 붙였습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 있는 건물은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집필실이 있는 고도원의 ‘춘하추동’, 몽골 게르 형태의 유르트는 허순영의 하얀하늘집, 동그랗게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김정국의 동그라미집, 방이 4개라 네잎클로버라는 애칭이 붙은 최재홍의 네잎클로버집, 그리고 네 개의 방과 사다리로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된 다락방이 있는 ‘꿈사다리집’ 등이 있다. -명상의 집 앞에는 ‘미완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더군요. “지금까지 처음 구상의 10% 정도가 완공된 상태입니다. 숯채방(숯으로 채운 방)과 비채방(비움과 채움의 방)으로 구성된 명상의 집은 앞으로 천장을 높게 한 건축물로 2차 계획 때 완성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미완’입니다.” -학교나 기업 등에서 단체로도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나요. “수련회나 워크숍 장소로 깊은 산속 옹달샘은 유용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 가운데 하나가 휴식 문화인데, 명상을 매개로 새로운 휴식 문화를 체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새롭고 활기찬 인생을 살아갈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입니다.” (끝)
깊은 산속에서 만난 나 직원만족센터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여행, 하루 명상 프로그램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힘들다'. 생각하는 게 힘들고 행동하는 게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는 게 힘들다' 고 한다. 그러다 보니 웃음을 잃는다. '희망'이라는 말은 더더욱 꺼내기가 힘겹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련했다. 지금의 내가 아닌 진정 내가 원하는 '나'를 찾기 위한 여행. 단 하루였지만 그들의 처음과 마지막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충주의 깊은 산속에서 만난 그들 각자의 진정한 자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빗소리 가득한 산속 오전 7시 30분에 본점을 출발한 버스는 9시가 넘어서야 충주시 노은면에 도착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마음의 습도를 높이고 있었다. 질퍽한 진흙에 마음까지 눅눅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짧은 숲길을 걸어 도착한 내리는 빗줄기를 조용히 바라보며 오늘 펼쳐질 색다른 하루를 기대하는 사람들. 오전 10시. (재)아침편지문화재단 대표인 고도원 님의 인사말로 시작된 하루명상. 내리는 빗소리가 몽골의 게르 형태를 지닌 하얀 하늘집 안을 가득 채웠다. 직원만족센터의 홍성대 부장은 "가만히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가 숲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숲이 내 안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기분을 안고 오늘 하루 진정한 자신을 만났으면 합니다"라며 행사의 시작을 고요히 알렸다. 고요히 감은 두 눈 참 오랜만이다. 일상을 내려놓는 일. 주변을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생각한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명상(冥想). '어두울 명(冥), 혹은 눈 감을 명(冥), 그리고 생각할 상(想)' 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다시 말해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한다 는 뜻이다. 고요히 눈을 감으니 손가락이, 손목이, 팔꿈치가 편안해진다. 무언가 몸에서 무거운 기운이 빠져나간다. 그게 시작이었다. 첫번째 프로그램 걷기명상 산을 찾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언제나 목적이 있었다. 약수터까지, 혹은 정상까지. 운동이라는 목적을 갖고 '힘들기 위해' 산을 올랐다. 단순한 걷기가 아니었다.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최초로 시작했다는 걷기 명상은 길을 걸으며 마음을 잠시 먹추고 나를 바라보며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던 것, 들리지 않던 소리를 보고 듣는 것이다. 여기에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스치는 숲길을 걸으면서 풀리지 않던 삶의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두 번째 프로그램 오수명상 산을 내려운 사람들의 표정은 오르기 시작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표정이 한없이 맑아졌다.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점심 식사 시간으로 이어졌다. 자연의 식사를 마치고 오수 명상 시간으로 이어졌다. 깊은 호흡법을 통해 몸속 나쁜 공기를 내보내고 자연의 좋은 기운을 받아들여 천천히 고요해지는 몸과 마음을 느껴 보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프로그램 향기명상 '아로마테라피를 활용한 긍정 에너지 생성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향기명상은 아로마 오일을 바른 수정을 이마에 얹고 림프 마사지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이었다. 흔히 '향기'하면 에센셜 오일이나 아로마 오일 등의 어려운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일상생황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과일, 채소, 들품이 더 좋은 재료라고 한다. 향기 명상을 진행한 한국향기명상협회 김윤탁 회장은 '봄에 가까운 공원에 나가 쑥이나 냉이를 캐 보는 것도 좋은 명상법입니다. 쑥과 냉이의 고유 향기를 느기면서 그 순간에 집중하세요. 모든 생명체는 고유 향기가 있는 법이니끼요. 이름 모를 들품도 모두 향기 명상의 대상이 된답니다" 고 했다. 부엌도 마음만 먹으면 명상센터가 되는 것이다. 네 번째 프로그램 뇌마사지 손품기가 시작된 뇌 마사지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상태방을 위한 가정으로 진행된다.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닌, 상대방을 치유하기 위해 명상에 잠긴다. 제일 먼저 손풀기로 시작되는 뇌 마사지는 손을 비벼 혈들을 자극한다. 혈기가 돌기 시작한 손을 상대방의 눈에 얹어 마음을 교감한다. 뇌 마사지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실한 마음을 담아 손가락으로 뇌간을 자극해 좋은 기운과 주파수를 얻어 에너지를 회복시키는 명상이었다. 다섯 번째 프로그램 춤명상 춤과 명상? 뭔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털어 내기ㆍ덜어 내기ㆍ내려 놓기의 한 방법이었다. 춤을 통해 내 안에 억압된 에너지를 쏟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잠재되어 있던 긍정과 열정의 에너지를 이끌어 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명상이었다. 상대방과 등을 맞대고 몸을 흔들어 대는가 하면 막춤에 가까운 몸짓. 처음엔 모두 낯설어했지만 이내 몰입되어 갔다. 몸 가는 대로 어깨ㆍ팔ㆍ다리 등을 털어 내면서 서서히 자신의 몸을 이해하기 시작 했다. 소리가 나오면 소리를 냈고, 굳어있던 신체 부위들이 움직이면서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를 받아들였다.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이는 나 이곳에는 세 가지 수칙이 있다. ① 상대방에게 유쾌한 주파수를 보낸다. ② 웬만하면 참는다. ③ 웬만하면 웃는다.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은 수칙이었지만 처음에는 다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열고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굳이 '수칙'이라는 강제성을 띠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나를 돌아보고 나를 만나면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워졌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그것은 '긴장',이라는 현상 때문에 생겨난다고 한다. 긴장을 느끼는 차원은 크게 육체적 차원, 심리적 차원, 영적인 차원으로 나뉜다. 이른바 몸ㆍ마음ㆍ영혼에서 우리는 긴장을 찾을 수 있다. 원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혹은 원치 않는 것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만 할 때 우리는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바람, 갈망으로 살아아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 그 자체를 수용해야 한다. 마음의 평온은 내 안에 욕망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수용할때 그 순간만은 욕망이 사라진다. 사실 욕망 그 자체가 하나의 긴장이므로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수용할 때 긴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 물기를 잔뜩 머금은 숲속에 있다. 그 안을 걸으며 나를 만났다. 나에게 말을 걸어 오랜만에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무엇이든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내일을 살아가는 저마다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자, 이제부터의 과정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ㆍ글 : 강호준(랜스에디팅) ㆍ사진 : 정수원(Season 2 Studio) ㆍ출처 : 우리은행 행내보 '우리가족' 2010년8월호
지난 4월30일(금) 방영된 YTN '현장 인터뷰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