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기사

[2017.01.15 연합뉴스] 고도원 "빈약한 언어저장고에 기댄 연설문 수정은 비극"

이나리

2017-01-15
조회수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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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말글 고칠 때가 절대고독의 정점"


고도원 작가[해냄 제공]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작가(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가 새 책 '절대고독'(꿈꾸는책방 펴냄)을 펴냈다.

저자가 말하는 '절대고독'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시간이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하 DJ) 시절 5년간 연설담당비서관을 지낸 그는 "연설비서관이라는 지엄한 자리에서 대통령의 말과 글을 수없이 써내려갔던 그때가 자신의 절대고독이 정점에 달했던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연설비서관 재직시절 있었던 일과 대통령의 연설문에 얽힌 이야기들에 침묵을 지켜왔다.

연설비서관을 그만두고 명상과 아침편지를 보내는 '은둔자의 길'을 걸으면서 비정치적이고, 비종교적이고, 비상업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마음다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15일 '절대고독' 출간을 계기로 연합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며 이제는 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면서 입을 열었다. 그는 "지도자의 언어는 정제된 언어여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도자의 언어는 정제된 언어여야 합니다. DJ는 정제된 언어만 사용해 설화가 없었습니다. 다듬고 정제하는 것은 시스템과 연계돼 있죠. DJ는 시스템에 따라 만들어진 연설문을 연설 직전까지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설문을 가지고 국민 앞에 선 분이었고 그 시스템을 한 번도 흔들거나 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지도자의 언어가 빈약합니다. 빈약하다는 것은 과거에 그런 언어를 저장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죠. 저장한 것이 없으니 나올 게 없고…. 그러다 최순실 언어의 저장고에 기댔다는 것은 정말 상식 밖의 일이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고도원 작가는 연설문 작성 때 주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최순실의 조언을 얻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측 주장에 대해서는 DJ 정부 당시 연설문 작성을 위한 자문위원회 시스템을 소개하며 비판했다.

"그 당시에 예산을 받아 자문위원단을 운영했어요. 위원단에는 대학교수부터 코미디 작가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었죠. 위원단은 예를 들어 광복절이나 삼일절 연설을 준비한다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전에 충분히 사전에 논의하고, 관련 부서에서 초안이 올라오면 토의를 합니다. 이게 바로 민의를 듣는 시간이죠. 이 정부에서도 그런 구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는 것은 언론사 시스템으로 보면 아무 자격 없는 사람이 편집국장 노릇을 하며 데스크를 본 셈이죠. 이건 민의를 수렴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폴리티컬 클라이미트'(political climate)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민의 감정, 정서, 기분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강남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죠. 그러나 원래 프로세스 중에서 녹여서 이뤄지는 것이지 다 써놓고 최종 컨펌을 받았다는 것은 시스템이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무너진 것이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자는 '절대고독의 정점'을 안겨줬던 DJ의 연설문 작성 과정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초안을 올리면 깨알같이 빨간색 볼펜 등으로 가필을 합니다. 그 내용을 반영해 다시 올린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구술을 하면서 녹취하게 하죠. 그걸 받아 적으면 연설문이 됩니다. 심할 때는 신문 기사로 치면 기자 이름(바이라인)만 빼고 다 고쳤어요. 그럴 때는 정말 죽고 싶고 기운이 다 빠지죠. 나중에는 한 번에 통과된 적도 많았어요. 내 생각이나 표현방식, 철학 같은 것을 다 내려놓고 그분(대통령)의 것으로 잡아채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눈빛만 봐도 알게 되는 때가 옵니다. 마음을 읽는 것이죠. 이 단계가 되면 한 자도 고치지 않고 통과되기도 합니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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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한마디 7

  • 모현옥

    2017-01-19

    '대통령의 글쓰기'란 책을 읽으며 국가 지도자의 말과 글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과 글은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지식의 탑에서 생산해낸 광석과도 같은 것이라 느꼈습니다. 대통령의 연설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지도자를 비롯한 여러 국가 경영진들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조각된 정책결정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마음을 읽어내고 정서적으로 부응하는 진정성 있는 연설, 그것이 바로 국가를 바르게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언어가 아닐런지요..

    저도 가끔식 '절대고독'이라는 강물에 발을 담가봅니다. 그 쓸쓸하고 차갑고 외로운 담금질을 하며 지독하고 처절한 고통을 느낄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지금 고요의 숲속을 거닐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이 평화로, 욕심이 만족으로, 복잡함이 단순함으로 바뀌는 나를 발견합니다. 혼자만의 세상에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라는 자유를 즐기는 고독의 여유를 찾게 됩니다. 삶의 영감을 주는 '절대고독' 잘 읽어 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김성돈

    2017-01-16

    "앞으로 대통렁이 될 사라이 갖추어야 할 자질
    한 가지를 꼽는다면 -자기집필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설문의 대강은 자기가 쓸 수 있어야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대국민 메시지의 골격 정도는 자기가 짤 수 있는
    지성이 있어야지, 그것도 못하면 그게 무슨 지도자란
    말인가! -
    '자기집필능력' 을 갖추려면 어떤 전제조건이
    필요할까? 먼저 독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 책을 읽지 않는 대통령, 지도자 에게서
    게티스버그 연설 같은 세기의 명 연설문이
    나올 수 있겠는가?
    오늘자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자기집필능력' 을
    읽으며 절감합니다.
    오늘 아침편지 인터뷰기사는 우리 아침편지
    가족이라면 필독을 권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광주에서 옹달샘 -

  • starcalas

    2017-01-16

    말과 글에서 모두 묻어납니다.
    절대고독의 순간을 지혜롭게 잘 이겨낸 사람의
    말과 글은 깊이가 다릅니다. 특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리더의 글에는 더욱 더 필요한 시간이겠지요.
    공감하는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 이귀성

    2017-01-16

    인터뷰기사 잘 읽었습니다. 임형배, 조춘기선생 카페에서 지난 5년간 고선생의 글 늘 감동으로 읽어오고 있습니다. 먼발치에서라도 고선생님 존안 한번 뵈옵는 기회를 갖고자 1,24,오후 8시 모임에 집사람과 함꼐 신청했습니다. 이시대의 예언자로 외치시는 귀한 말씀 읽는이들 삶의 큰물줄기 같은 길잡이가 되고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 이효진

    2017-01-16

    그렇게 무겁고 진중한 자리에서
    경험하셨을 절대고독의 시간,
    그 시간으로 지금 우리도 그 감정을
    공유하고 나누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더불어 요즘 현실이 더욱 안타까워집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수습되길 바랍니다.

  • 장윤수

    2017-01-16

    세상은 하느님의 절대고독으로 빚어낸 말씀의 결정체죠.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은 얼굴이 사람 사는 세상인 줄 알았나 봐요. 맨날 자기 얼굴 고치는 데만 치중했다니까요. 말씀은 순시리가 고치고요. 그런 분업이 뭐가 잘못이냐고 그는 사뭇 앙앙불락 한다니까요. 청와대를 아예 소꿉놀이터로 만드는 게 어떨까요? 터가 좀 그렇다고 하네요.

  • hana8282

    2017-01-16

    연설문 하나 나오기까지도 참 많은 수고와 고민이 들어있었네요.
    어디로 가야할지 혼란스러운 요즘 시대상황 속에서
    리더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절감합니다.
    자아를 내려놓고 겸손히 섬기는 마음으로 비로소
    마음을 읽을 수 있음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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