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말글 고칠 때가 절대고독의 정점"
고도원 작가[해냄 제공]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작가(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가 새 책 '절대고독'(꿈꾸는책방 펴냄)을 펴냈다.
저자가 말하는 '절대고독'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지만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시간이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하 DJ) 시절 5년간 연설담당비서관을 지낸 그는 "연설비서관이라는 지엄한 자리에서 대통령의 말과 글을 수없이 써내려갔던 그때가 자신의 절대고독이 정점에 달했던 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연설비서관 재직시절 있었던 일과 대통령의 연설문에 얽힌 이야기들에 침묵을 지켜왔다.
연설비서관을 그만두고 명상과 아침편지를 보내는 '은둔자의 길'을 걸으면서 비정치적이고, 비종교적이고, 비상업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마음다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15일 '절대고독' 출간을 계기로 연합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며 이제는 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면서 입을 열었다. 그는 "지도자의 언어는 정제된 언어여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도자의 언어는 정제된 언어여야 합니다. DJ는 정제된 언어만 사용해 설화가 없었습니다. 다듬고 정제하는 것은 시스템과 연계돼 있죠. DJ는 시스템에 따라 만들어진 연설문을 연설 직전까지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설문을 가지고 국민 앞에 선 분이었고 그 시스템을 한 번도 흔들거나 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지도자의 언어가 빈약합니다. 빈약하다는 것은 과거에 그런 언어를 저장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죠. 저장한 것이 없으니 나올 게 없고…. 그러다 최순실 언어의 저장고에 기댔다는 것은 정말 상식 밖의 일이고 비극적인 일입니다."
고도원 작가는 연설문 작성 때 주변의 의견을 듣기 위해 최순실의 조언을 얻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측 주장에 대해서는 DJ 정부 당시 연설문 작성을 위한 자문위원회 시스템을 소개하며 비판했다.
"그 당시에 예산을 받아 자문위원단을 운영했어요. 위원단에는 대학교수부터 코미디 작가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었죠. 위원단은 예를 들어 광복절이나 삼일절 연설을 준비한다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전에 충분히 사전에 논의하고, 관련 부서에서 초안이 올라오면 토의를 합니다. 이게 바로 민의를 듣는 시간이죠. 이 정부에서도 그런 구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쳤다는 것은 언론사 시스템으로 보면 아무 자격 없는 사람이 편집국장 노릇을 하며 데스크를 본 셈이죠. 이건 민의를 수렴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폴리티컬 클라이미트'(political climate)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민의 감정, 정서, 기분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강남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죠. 그러나 원래 프로세스 중에서 녹여서 이뤄지는 것이지 다 써놓고 최종 컨펌을 받았다는 것은 시스템이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무너진 것이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자는 '절대고독의 정점'을 안겨줬던 DJ의 연설문 작성 과정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초안을 올리면 깨알같이 빨간색 볼펜 등으로 가필을 합니다. 그 내용을 반영해 다시 올린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구술을 하면서 녹취하게 하죠. 그걸 받아 적으면 연설문이 됩니다. 심할 때는 신문 기사로 치면 기자 이름(바이라인)만 빼고 다 고쳤어요. 그럴 때는 정말 죽고 싶고 기운이 다 빠지죠. 나중에는 한 번에 통과된 적도 많았어요. 내 생각이나 표현방식, 철학 같은 것을 다 내려놓고 그분(대통령)의 것으로 잡아채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눈빛만 봐도 알게 되는 때가 옵니다. 마음을 읽는 것이죠. 이 단계가 되면 한 자도 고치지 않고 통과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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