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기사

[2019.06월호 샘터][소강석 목사의 행복 이정표] 꽃이 져도 그대를 잊지 않으리

국슬기

2019-05-29
조회수 1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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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6월호 | 소강석 목사의 행복 이정표
꽃이 져도 그대를 잊지 않으리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요즘 교회 뒤에 있는 작은 산을 산책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다. 멀리 있는 큰 산에 가면 더할 나위없는 천국이겠지만 어찌나 바쁜지 그럴 여가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처한 상황에서 교회 주변의 야산을 산책하는 것만도 만족스럽다. 특별히 봄의 동산은 마치 청춘으로 돌아간 듯 내게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아니 청춘을 넘어 소년의 마음을 준다. 어린 시절 쑥 캐는 소녀를 훔쳐봤던 소년, 나물 캐던 누나를 따라 다니던 소년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봄 산은 화사한 꽃을 피운다. 그래서 산길을 걷다 꽃에도 마음이 있다 생각하고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문득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 떠올랐다. 지난겨울 그곳에 갔을 때 겨울 나무들에게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겨울 나무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쉬움을 달래며 내 영혼의 꽃이 교회 뒷산의 연분홍 진달래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깊은 산속 옹달샘의 꽃들이 마치 내 눈 앞에 피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내가 그곳으로 달려가고 그곳의 꽃이 나에게 달려와서 함께 대화를 나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의 꽃들아, 미안하구나. 봄이 되면 너를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도 못 가고 있구나. 너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해도 되겠니? 지금 당장은 못 가지만 봄이 다 가기 전에는 반드시 갈 거야."

그런데 한 주일이 지나고 뒷산을 가보니 벌써 진달래꽃들이 다 저버린 것이 아닌가.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땅에 떨어진 꽃잎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꽃잎들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순간 정호승의 시가 생각났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나도 이미 저버린 꽃들을 보면서 이렇게 속삭였다. "꽃이 진다고 내가 어찌 너를 있겠느냐. 너는 언제나 내 가슴 깊은 곳에 영혼의 꽃으로 피어나 있을 거야."

저버린 꽃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나와 함께했던 교인들이 생각났다. 지나온 목회 여정을 돌아보니 나와 함께 비를 맞고 눈보라를 맞으며 여기까지 온 교인들이 꽃처럼, 별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 역시 나와 함께 중년이 되어버렸다. 물론 도중에 야속하게도 내 곁을 떠난 사람도 있다. 아니, 영원히 하늘나라로 떠나간 사람도 있다. 그렇더라도 내가 어찌 그 꽃과 별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교인들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꽃이 되었던 사람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하마터면 인생이 풍비박산 날 위기도 있었는데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나를 도와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빠른 화면처럼 스쳐갔다. 그런 상념에 잠기자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왔다. 백설희의 노래를 이선희가 다시 리메이크해서 가슴 저미도록 불렀던 <봄날은 간다>라는 곡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져도 같이 울던 알뜰한 그 사랑에 봄날은 간다.'

난 이 대목에서 '봄날은 간다'를 '봄날은 온다'라고 바꾸어 부른다. 계절의 봄은 지나갔지만 나와 함께했던 분들의 가슴속에 영혼의 봄날이 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영혼의 봄날이 온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 삶의 꽃잎은 질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내 인생의 한 순간에 꽃이 돼주었고, 아니 내 가슴에 꽃으로 남아 있던 사람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비록 봄날이 간다 해도 떨어진 꽃잎을 잊지 않으리라. 내 인생의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는 날이 온다 해도 내 눈동자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그 화사하고 아름다운 봄날이 어른거리리라. 오직 사랑과 감사의 회상만이 눈동자에 이슬처럼 고이리라.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지 않으리.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지 않으리.

* 샘터 6월호 '소강석 목사의 행복 이정표'에 실린 글입니다.

느낌 한마디 6

  • 김정애

    2019-05-31

    그렇습니다. 나도 다시금 해년 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으리라 했는데 잘 가보지를 못했다 올해는 일산에서 꽃마장터가 있어서 다녀오지도 못했고 그러네.요 c b s 를 보며 소목사님 설교도 듣고 한다 강은주님의 따뜻한 손길도 그립다. 약속을 해야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하려나...........

  • chastepure

    2019-05-31

    성도를 어찌이리 사랑하는 목자가 계실까요.!!
    성도들 한영혼 한영혼에게 봄날이 오기를
    이토록 간절히 바라는 주의종이 이시대에
    어디있을까요..?? 별처럼 이쁜 성도들이 어찌
    주의종의 심정을 이해 못하겠어요...
    너무 아름다운 글이네요..

  • 뿌띠빠끄

    2019-05-31

    어린시절 5월이면 들로 산으로 뛰댕기며
    토끼 몰이를 하고
    진달래꽃을 따먹었어요
    바구니 가득 꽃을 따오면 엄마가 진달래 꽃전을 부쳐 주셨던 추억이 떠오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집니다 . 목사님의 순수감성, 꽃과의 약속 , 고락을 함께한 성도들을 사랑하는 깊은 연민에 마음의 옷깃을 여밉니다

    부쳐주

  • 양현주

    2019-05-31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아름다운 시와 글을 표현하시는 목사님 이시대에 최고로 행복하신 한 분이십니다.산,꽃 자연을 통해 나누는 대화 공감합니다 관찰하며 기도하시며 은혜를 체험하시는 최고의 목사님!

  • 으녕

    2019-05-31

    스쳐지나버린 것들.잊고살았던 것.멈춤은 보이지않았던것들이 보이고. 잊혀진줄알았던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깊은산속옹달샘에서 느꼈던 바람과 바위자라는소리에 귀길울였던 그때를 생각나네요
    바쁜 일상에서 잠시 그때를 생각나게하네요^^

  • 화진

    2019-05-31

    산을 좋아하시는 필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네요.
    언젠가부터 바쁘기만한 일상으로 저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데 이 글로, 내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의 감사한 분들을 떠올려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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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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