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있으면 디테일이 보이고 호기심 루트 달라져"
‘아침편지’로 시대를 치유하는 고도원 인터뷰
"난 똥 통에 빠진 그 시간 사랑해"
그때의 묵상이 훗날 치유의 편지로
[LA중앙일보] 발행 2016/11/29 미주판 26면 기사입력 2016/11/28 19:52
호흡의 어려움…기도조차 안 나올 때
하루에 한번이라도 멈출 수 있어야
신은 메시지를 태풍에 싣지 않아
꿈은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이어야
작은 일에도 매우 격해지는 삶. 고도원(65·사진)은 그게 '바닥'이라 했다. 가난한 시골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왜소한 체구에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집단 따돌림에 '똥 통'에 빠진 기억도 있다고 했다. 쓰라림 속에서 책을 읽으며 묵상했던 글귀는 훗날 편지가 됐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과거 바닥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레 문장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편지는 그래서 꿈과 희망을 말한다. 2001년부터 지인들에게 하나둘씩 보내던 짧은 묵상이 지금은 수백만 명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힐링의 편지가 됐다. 그가 "난 똥 통에 빠졌던 그 시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 어느 곳도 10년간 내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는 삶을 살았다".
연세대 재학시절 그는 학보사(연세춘추) 편집장이었다. 유신 정권하에서 당시 정부를 비판하던 기명 칼럼을 썼다가 긴급조치 9호에 의해 학교를 제적당했다.
절망의 연속이었다. 바닥은 삶의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감정은 날로 격해졌다. 아내는 두 차례 유산을 경험했고, 겨우 모은 돈으로 문방구를 운영하려다 사기까지 당했다.
"졸업장도 없지, 제적학생이지…그 당시 사회가 나 같은 사람을 누가 받아주겠는가."
대신 그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 익숙했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중앙일보사로 적을 옮겨 계속 펜을 들었다. 이후 30여 년 간의 언론인 활동에 마침표를 찍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 공보수석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5년간 활동했다.
-아침 편지는 어떻게 쓰게 됐나.
"토씨 하나에 휘청대는 게 대통령 연설문 아닌가. 글의 무게가 달라서 그런지 스트레스가 심했다. 대신 그때는 여한 없이 일했다. 하지만,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침편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그것도 매일 쓰니까 두려움과 부담이라는 게 생기더라. 글을 궁리하고 짜내기 시작했다. 이거 괜히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뭔가 뚝 끊기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몸과 정신이 보내는 고갈의 신호였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죽고 싶다는 것, 그는 그것을 종교적으로 "기도조차 안 나올 때"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호흡할 수 있나.
"숨을 쉬려면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자동차도 기름이 떨어지면 멈추는 데 우리는 어떻겠는가.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의도적으로라도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살다 보면 멈추는 게 쉬운가.
"사람은 대개 반복적인 삶을 산다. 그걸 멈추면 큰일난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이다. 그러다 지친다. 특히 열심히 사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겉은 멀쩡하나 속에서는 물음표가 생긴다. 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알게 된 게 명상이다. 명상이 다른 게 아니다. 그냥 잠시 멈추고 멍 때리는 시간이다."
(그는 한국 충청북도 충주에 '깊은산속 옹달샘'이라는 심신수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집을 팔아 일상 속에 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터(7만 평)를 마련했다. 그 역시 '깊은 산속 옹달샘'에 살며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명상법을 지도하고 각종 특강을 하며 살아간다. 지금은 매년 1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쉼을 얻어야 하는 곳인데 거기가 쓰레기장이면 되겠느냐. 꽃밭이어야지"라며 센터를 소개했다. 명상법을 가르치는 그에게 실제 어떻게 명상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생활명상'을 강조했다.)
-일상에서 짬을 내는 게 어렵지 않나.
"힘들어도, 기쁜 일이 있어도 일단 누구나 잔다. 그럼 수면 전후 5분 만이라도 그 시간을 활용해라. 그리고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어라. 매일 하다 보면 1분은 내쉴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들이쉬는 숨이 많아진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이완, 즉 스트레칭을 시켜줘야 한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 이완과 몰입을 통해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호흡의 변화만으로 어떤 변화를 겪나.
"등산을 하더라도 아주 천천히 걸어봐라. 이렇게 천천히 걸어도 되나 할 정도로 말이다. 느낌이 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추면 저절로 고요함이 찾아온다.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분별이 된다. 내 귓가를 지나는 바람의 두께가 다르게 느껴진다. 눈을 감아봐라. 더 잘 들린다. 그러면서 내 안에 여러 소리를 듣게 된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그게 신의 음성이다."
(그는 모태 신앙으로 현재 충주중앙교회 장로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을 가진 탓에 기독교적 가치관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다.)
-기독교적 명상이라 봐도 되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할 때 그분의 메시지를 태풍에 싣지 않았다. 미세한 소리…그 속에 그분의 소리를 숨겨놓았다. 그 소리를 들으려면 멈춰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그런데 내 안에 소란함이 있으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천천히 걷고 멈춰보는 시간을 가져라. 그렇게 되면 깨달음이 생기고 관점이 변한다. 환경과 조건은 그대로인데 내 생각이 바뀐다."
(그는 지난 2011년부터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인 '깊은 산 속 링컨학교'를 시작했다. 다음 세대를 씨앗으로 여기고 그들이 꿈을 꾸며 잘 성장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나.
"그런 회의감은 우리 때, 즉 과거에도 있었다(웃음). 그때는 나도 어른들이 말하던 희망에 반항하고 괴리를 느꼈다. 그럼에도, '고전'은 남아있다. '클래식'은 꼭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결집한 단어가 '꿈'이다. 꿈은 북극성이다. 목표다. 그게 없으면 표류한다.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목표가 있으면 디테일이 보이고 호기심의 루트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멘토나 선배가 필요한 거다."
-꿈은 어떤 것인가.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꿈이 방향이라면 타인에게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 만약 내 꿈만 이루겠다면 그 꿈을 이룬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자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세상도 좀 살펴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사회부를 거쳐 정치부에서 주로 활동했었다. 언론인으로서의 냉철한 시각은 여전했다. 아침편지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명상을 통해 쉼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시국현안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잠시 한숨으로 대화의 쉼표를 찍었다. "내가 정치적 코멘트를 안 한지 15년이나 됐는데…그동안 발언을 일부러 자제했다"고 말한 뒤 답변을 이어갔다.)
-지금 시국이 어지럽다.
"심각한 위기다. 어떤 위기냐면 한마디로 신뢰가 사라졌다. 신뢰하기 어려운 사회가 됐다는 말이다. 한 예로 가톨릭에서 '고해성사'라는 시스템이 망가지고 그 의미가 사라진다면 어떻겠는가.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거다. 비즈니스도 신뢰를 잃으면 끝인데, 국가가 신뢰를 잃으면 이건 100년이 가도 회복이 되기 어렵다. 지금 그게 절단날 위기다."
-희망은 있는가.
"구약성서의 마지막을 보면 '말라기'가 있다. 그 이후 500년간의 긴 침묵의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예수의 탄생으로 메시아의 시대가 오지 않는가. 역사도 끊기고, 모든 희망도 끊겼던 그 시간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희망이 태동하는 시기가 됐다. 여기에는 진정한 개과천선, 회개와 새로운 도전을 위한 결집도 필요하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정말 깊은 기도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늘 꽃밭이나 비단길이 아닌 고난의 정점, 밑바닥에서 시작됐다. 그 섭리를 믿고 그것을 간절히 구하자. 그렇다면, 그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되살려 주실 것이다."
글=장열·사진=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