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등 5학년 사춘기가 시작된 둘째와 함께 캠프에 왔다. 첫째와 함께 하려 했지만, 첫째와 함께 운동하면서는 소통을 종종하고 있어서, 최근 바깥 활동을 열심히 하느라 아침에 나갔다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는 둘째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이미 한 약속이지만, 둘째는 캠프 참여날이 거의다 되어서야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 하기로 했다고 안가면 안되냐고 졸랐다.
처음엔 ‘먼저 한 우리의 약속이 우선이잖아. 이미 너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는데, 이제와서 친구들과 다른 약속을 잡으면 어떡하냐!’며 꾸짖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다시한번 얘기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함께 파자마 파티를 하는데 너만 빠지게 되어 서운 하겠다. 근데 아빠도 너와 함께 하고 싶어서 일부러 휴가내고 휴가때 해야할 일도 미리 해놓고 있어. 아빠는 네가 친구들이랑 지내고 싶다고 아빠랑 가는 것을 취소하자고 하니 서운하네. 친구들과 함께하는 파자마 파티는 다음에 또 할 수 있지만, 아빠와 캠프 가는 것은 이번이 아니면 다음엔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몰라. 다시 한번 생각해봐 줄래?’라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파자마 파티는 안되고 대디 캠프를 가야라는 표현이라는 것을 딸도 알았을 것이었다. 조금은 미안했고 조금은 서운했다. 그래도 사춘기 들어 대화를 많이 못했던 둘째와 꼭 함께하고 싶었다.
캠프에 들어오는 날, 아이와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아직까지 내가 아이의 친한 친구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물었다.
‘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니?’
‘너무 많은데…’
‘그 중에서 이 친구는 정말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친구 있니?’
‘응, 두명 있어.’
‘왜 그 친구들이 너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한 친구는 속에 있는 말이랑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친하고, 또 한 친구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장난을 쳐도 언제나 잘 받아주거든'
‘응 그렇구나. 너 한테도 고민이 있어?’
‘당연하지. 나라고 왜 고민이 없겠어!’
‘아니 아빠가 생각하기엔 뭔가 고민하기엔 넘 어려서 말이지. 고민이 뭔데?’
‘그건 아빠한테 얘기 못하지. 비밀이야’
난 고민을 들어줄 정도로 친근한 아빠는 아니구나 싶었다.
캠프가 시작되고, 긴장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준비된 플레이타임에 열심히 아이들의 긴장되고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려 노력하는 아빠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휴 부끄러워. 우리 아빠 왜 저러실까?’ 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아빠들도 비슷 했겠지만, 그때의 나의 몸이 말하고 있는 독백은 ‘아빠의 이 춤사위는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 만큼은 조금만 아빠에게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어색하지만 최선의 몸부림 이란다.’ 이었다.
이후 최성완 두란노아버지학교 이사장님의 특강이 있었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하러 나가고, 아버지의 아버지를 위한 아버지 교육시간이었다. 아빠가 갖춰야할 것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고, 아빠로서 내가 부족한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아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끌고 다그치고 재촉하고 반복적으로 얘기해주면 될거라는 나의 생각과 모습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결국엔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것들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크기만을 바라는 욕심에 내가 부족해서 또는 내가 부족했어서 아이를 대신하여 이루고자하는 기대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난 아이의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그저 아이를 잘 모르는 그냥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나이 많은 아저씨와 별반 다를게 없어 보였다. 잘한다 못한다 라는 기준을 가지고(이사장님이 말씀하신 선을 그어 놓고) 아이를 대해왔던 내가 어찌나 부끄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하토마이시간에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나의 머리에 닿았다. 작고 연약한 손가락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손가락 끝으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아이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작고 가늘고 연약한 딸아이의 손가락이 내 머리에 또 얼굴에 닿을 때마다 미안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손잡고 어두운 밤길도 걸어보고 하늘의 별을 보기도 하면서 아이는 ‘이렇게 어두워도 함께 별보러 나오고 무섭지도 않네.’라고 말하는 아이는 이제 조금 편안해 보이는 것 같았다. 별자리에 대해 공부도 하고 다음엔 아이들과 밤하늘을 보면서 북두칠성과 은하수 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짝 기대가 되었다.
늦은 시간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아이에게 ‘아이들이 아빠에게 바라는 20가지 바람'과 ‘감사 5가지’와 ‘미안 5가지’를 얘기하는데 자꾸 눈이 작아지다가 ‘그러니?’하고 물으면 눈을 크게 뜨고 대답해주는 아이의 모습이 재밌었다. 진지한 이야기 속에 재밌는 상황이 여름 밤이 짧아져 갔다.
둘째 날, 이른 아침 ‘왠 줄넘기?’ 하며 졸린 눈을 비비고 아침 운동을 하러 갔다. 그런데 왠걸? 생각했던 그냥 줄넘기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해야하는 줄넘기!. 잘 해내고자 하는 욕심도 생기고, 실패 할때마다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그냥 웃으며 다시 해보는 모습에서 재미도 있었다. 줄넘기가 뭐라고 생각했다가 사는게 뭐라고 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줄 한번 넘는 것…’나는 잘 넘었으니 너도 좀 잘 해봐라가 아니라 우리 같이 넘어야 하니 아빠가 잘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잘 못하면 또 다시 하면 되는 거야. 빨리 넘을 필요없어 천천히 서로의 리듬에 맞춰서 하나씩 넘어가 보자. 넘다가 걸리면 한번 크게 웃어보자. 그러면 더 신나게 넘을 수 있네.’ 이런 마음이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도 '함께 넘는 줄넘기'와 마찬가지 아닌가 싶었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부터 신나게 운동을 하고 운동회도 하고 데이트 미션으로 추억도 만들고 둘째날은 아이와 재미로 가득한 시간으로 흘러갔다. 이렇게 캠프가 끝나갈 시점에 세족식을 갖게 되었다. 아이의 발을 만져본적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씻겨주고, 입혀주고, 신경쓰며 그저 내 아이라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껴 주었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엄마랑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는 청소년이 되어 있는 아이의 발을 만져보았다. 아직 굳은 살도 없고 상처도 없는 뽀얗고 작고 부드러운 아이의 발을 만져보니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두손가락만한 아이의 발이 떠올라 뭉클했다. 그 때 사회자께서 아이에게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라는 멘트를 따라 하라고 하였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자주 했던 같기도 하고 많이 못했던 것 같기도 한 말 몇 마디는 가슴을 감싸 안았다. 분명 젖은 발은 이미 닦았는데 얼굴은 다시 젖어 들었다.
이제까지 처음으로 해본 포즈로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 한장과 평생약속을 담은 수료증을 받고 뭔가를 가득 채우고 또 뭔가를 못채운 듯한 아쉬움도 함께 1박 2일의 짧은 캠프는 마무리가 되었다. 분명 사춘기 딸 아이와 둘이서 온 캠프였는데 내 마음 속에는 집에있는 아이 셋도 이곳에서 함께 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과 너무 했던 것들을 모두 떠오르게 했고, ‘아빠로서의 나’라는 숙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다이소에 들렀다. 평생약속이니 가까이 두고 지키려 노력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액자를 골랐다. 액자에 수료증을 넣으며 마음속으로 앞으로 아이와 함께 떠올릴 네 단어를 되새겨 보았다.
“기꺼이 당연히 무조건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