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가 있는 용정에 왔습니다.
일제치하에 우리의 언어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는
우리민족의 살아있는 정신입니다.
‘밝은 조선민족의 새 공동체’라는 뜻을 지닌 명동(明東)마을에 자리 잡은 윤동주시인의 생가는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우리의 한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윤동주생가’
시인의 이름도 선명한 고향집의 툇마루에서 학생들은 줄을 서서 고도원님과 사진을 찍습니다.
시인의 생가 안채는 왠지 을씨년스럽습니다.
먼지가 쌓인 가구와 한쪽이 내려앉은 마루, 녹슨 가마솥이 먼 이국땅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시인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시인의 고향집 뜨락에 때 이른 코스모스가 만개 했습니다.
소풍을 하듯, 순례를 하듯 시인의 집을 누비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도 노란 꽃송이들 같습니다.
전시관 옆에서 혼자 글을 쓰다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쑥스럽게 웃는 학생도 있습니다.
같은 조끼리 똘똘 뭉쳐 움직이는 학생들이 다함께 외치기도 합니다.
“샘 저희 조 사진 좀 찍어주세요!”
윤동주 생평전시관 내부입니다.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서 1943년,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짧지만 아름다운 윤동주의 생애와 삶, 그의 못다 이룬 꿈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의 윤동주입니다.(사진 뒷줄 오른쪽)
윤동주시인은 명동 소학교, 은진중학, 평양숭실중학 등을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에 있는 릿교대학에 유학했습니다.
윤동주시인은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길에 오르던 중 항일민족 사상범 혐의로 일본 형사에게 검거 되었습니다.
그는 모진 고문 끝에 같은 해, 후쿠오카 감옥에서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일체치하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했던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 그는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들의 가슴에 뜬 별이 되었습니다.
학생 윤동주가 입었던 교복과 그가 쓴 시 ‘사과’를 배경으로 진지하게 사진을 찍는 학생들, 이렇게라도 윤동주의 흔적을 간직하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뜰 한쪽에서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우물에는 아직도 물이 고여 있습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디선가 시 ‘자화상’을 읊는 윤동주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릴듯합니다.
생평전시관 앞에 학생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윤동주와 그의 사촌이자 가장 절친한 벗이었던 송몽규의 무덤에 바칠 꽃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노랗고 하얀 종이를 오리고 붙여 꽃을 만드는 학생들입니다.
“꽃을 든 여러분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하늘에 계신 윤동주 시인도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웃음 짓고 계실 것입니다.”
고도원님과 학생들이 다함께 외칩니다.
I’m Great!
You’re Great!
We’re Great!
윤동주시인이 다녔던 명동학교에 왔습니다.
명동학교는 윤동주시인의 외삼촌이기도 한 김약연의 주도로 김학연 등 애국지사들이 1908년, 민족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민족교육기관입니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명동학교 설립자인 김약연이 남긴 말입니다.
민족의 독립의지를 높이고 항일구국의 인재를 양성한 명동학교는 1925년 문을 닫을 때까지 12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명동학교의 교실에서 윤동주시인과 나란히 앉은 고도원님입니다. 교실을 가득 채운 링컨학교 학생들이 그 시절의 풍경을 재현해 봅니다.
명동학교는 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나운규, 한국인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인 서왈보,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명동학교 앞에 선 링컨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마치 독립투사들 같습니다.
윤동주시인의 묘소로 가는 길, 하늘은 낮게 내려앉고 스산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시인의 무덤은 명동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위의 공동묘지에 있습니다.
묘소로 가는 고도원님과 학생들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숙연합니다.
시인 윤동주의 무덤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다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시인이 쓴 시 ‘별 헤는 밤’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에는 파란 잔디가 없고, 거칠고 붉은 흙에 잡풀만 듬성듬성 자랐습니다.
시인의 무덤 앞에서 고도원님과 링컨학교 학생,
샘 126명이 다함께 묵념을 합니다.
나하영학생이 126명의 참가자를 대표해서 윤동주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꽃을 시인에 무덤에 바칩니다.
독립투사 송몽규의 무덤입니다.
윤동주시인과 평생을 같이했던 벗이자 동지였던 송몽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투쟁하다가
윤동주시인과 함께 일본의 감옥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죽어서도 나란히 묻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명동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송몽규의 무덤에서도 묵념을 하고 헌화를 하며
그의 고결한 정신을 기렸습니다.
시인의 무덤가에 있는 나무에 직접 만든 꽃을 다는 학생들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전문 (1941. 11. 20)
우리는 모두 별의 시인 윤동주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깊은산속 '링컨학교 캠프' 신청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