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누구든 글쓰기>와 <대통령의 언어> 출간한 고도원 작가[김슬옹 기자]https://news.nate.com/view/20250825n23985 ▲ <누구든 글쓰기>와 <대통령의 언어>의 공통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고도원 작가 ⓒ 김슬옹'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작가가 <누구든 글쓰기>와 <대통령의 언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거의 동시에 출간했다. 글쓰기 강사 30년 경력의 기자는 얼른 읽어 봤다. 이어 지난 17일 경북 안동 가는 길에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깊은 산속 옹달샘'에 들러 고 작가를 만나 두 책을 연결하는 주요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시민과 지도자, 모두의 글쓰기에 적용되는 공통점 '진심'- <누구든 글쓰기>에서는 누구나 자기 삶을 쓰는 존재라고 하셨고, <대통령의 언어>에서는 지도자의 언어가 시대를 움직인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개인의 삶을 담은 글"과 "공동체를 이끄는 언어" 사이에 어떤 연결과 차이를 보십니까?"저는 본질적으로 두 언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이든 말이든 모두 삶에서 나옵니다. 다만 개인의 글은 자기 성찰과 치유의 차원에서 머무를 수 있고, 대통령의 언어는 그것이 확대되어 공동체와 역사를 이끄는 힘으로 발휘됩니다. 차이는 '대상'과 '책임'에 있습니다. 나의 글은 나를 살리고, 지도자의 말은 국민을 살립니다. 그러나 그 뿌리는 같지요. 얼마나 삶을 진실하게 살아왔는가, 그 진실이 언어 속에서 얼마나 투명하게 드러나는가, 바로 거기에 언어의 무게가 달려 있습니다."- 두 책 모두 고난을 견디고 성찰한 언어가 진정성을 가진다고 강조하십니다. 선생님께서는 글쓰기와 말하기에서 고통을 치유로 바꾸는 과정을 어떻게 경험하셨는지, 또 독자와 청중에게 어떻게 권하고 싶으신지요?"저 역시 인생의 굴곡과 상처를 피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그대로 삼키면 절망이 되고, 그것을 글과 말로 표현하면 새로운 힘으로 바뀝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말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정리되기도 하지요. 결국 언어는 고통을 정화하는 도가니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쓰라'고 말합니다. 짧은 일기라도 좋고,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도 좋습니다.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망설이지 말고 하십시오. 그렇게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다 보면, 그 언어가 곧 치유제가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위로의 선물이 됩니다."- 평범한 시민이 자기 삶을 쓰는 글과 지도자가 국민 앞에서 말하는 언어는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한다고 보십니까?"같아야 할 점은 '진심'입니다. 진심 없는 언어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시민의 언어는 작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삶의 진실이 담겨야 합니다. 지도자의 언어는 반드시 더 큰 무게와 책임을 지녀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백만 명이 그 말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침묵과 절제된 한마디에서, 또 이재명 대통령의 현장감 있는 발언에서 그런 무게를 느꼈습니다. 시민의 글은 스스로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고, 지도자의 말은 한 시대를 움직이는 방향타가 됩니다."- 오늘날 SNS 시대에는 즉흥적이고 가벼운 말과 글이 넘쳐 납니다. 선생님께서는 디지털 시대에 언어의 진실성과 책임감을 어떻게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언어가 빠르고 즉흥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일수록, 더더욱 '책임 있는 말'이 필요합니다. 저는 말이든 글이든 두 번 생각하고 내보내라고 말합니다. 한번은 '내가 진실한가'를 묻고, 또 한 번은 '이 말이 누구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지도자라면 세 번 생각해야 합니다. SNS의 짧은 문장 하나도 역사의 기록으로 남습니다. 결국 언어는 사라지지 않고 누적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오늘의 말과 글이 내일의 자서전, 내일의 역사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두 책 앞에 선 고도원 작가ⓒ 김슬옹- <누구든 글쓰기>에서는 부모의 짧은 기록도 자녀에게 큰 유산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대통령의 언어>에서는 지도자의 언어가 역사의 거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개인과 사회가 후대에 남겨야 할 언어의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저는 그것을 '사랑과 양심의 언어'라고 부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언어는 사랑이 담긴 기록입니다. 지도자가 국민에게 남겨야 할 최고의 언어는 양심이 담긴 말입니다. 결국 후대는 우리가 남긴 기록과 말 속에서 우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과 양심이 담긴 언어는 세월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도 아침편지를 쓰면서, 그 작은 언어 하나가 누군가에게 사랑이 되고 양심의 불씨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Why] [김윤덕의 사람人] 11년째 '아침편지' 배달하는 남자, 고도원 - 앞만 보고 뛰는 사람들 당신만의 북극성을 띄우세요 2012.06.22 16:57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쉼'이 필요한 시대 청와대서 5년 일하니 고개가 안 돌아가… 마라톤으로 몸 고친 뒤 마음 고치려 시작 기름 떨어지고 엔진에 불난 것 같은 사람들 들여다보면 마음에 통증 하나씩 있더라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2001년 8월 1일 '희망이란' 제목으로 배달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1호는 우리 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메일로 편지 쓰기'라는 소박한 행위를 넘어 '이메일 마케팅' 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요즘 최고의 화두로 떠오른 '힐링(치유)'의 물꼬를 틔웠다. 아류가 무성한데 '원조'의 힘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매일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사람이 300만명을 넘어섰다. 회원들 기부금으로 충주 7만여평 숲 속에 건립한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은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이 붐빈다. 100억원대 매출의 건강식품 쇼핑몰까지 운영할 만큼 몸집이 커졌다. 그래서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낙엽송 쭉쭉 뻗은 숲 속에 그림처럼 들어앉은 '깊은산속옹달샘'에서 고도원(60)을 만났다. 그는 얼마 전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해냄)는 신작을 펴냈다. ◇初心 잃지 않으려 기도한다 ―'아침편지' 회원이 300만명을 넘었다. "숫자는 내려놓은 지 오래다. 어떤 사람은 숫자를 돈으로 보고, 표로도 보지만 내게 숫자와 물량은 큰 의미가 없다. 나의 편지가 누군가의 가슴에 꽂혀서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TV 프로그램에다 여행 상품까지 힐링이 유행이다. 마음 산업 시대다. "예견된 일이었다. 속도의 부작용, 앞만 보고 달리다가 고장이 나고 기름이 떨어지고 엔진에 불이 났다.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내 문제, 내 가족의 문제로 닥친 것이다. 명상센터에 오는 사람들이 겉보기엔 건강해 보여도 만나서 속속들이 이야기해보면 저마다 마음의 통증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더라. 쉼, 잠깐 멈춤이 필요한 시대다." ―11년이면 시들해질 만도 한데, '아침편지'의 위력은 왜 지속되는 걸까. "매일매일 편지를 배달하는 일이 보통 일인가(웃음). 중간중간 슬럼프도 있었다. 이런 글을 누가 읽고 감동할까 하는 두려움이 내게도 있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이어가니 진정성을 봐주시는 것 같다. 믿을 만하다 여기는 것 같다." ―'깊은산속옹달샘'은 아침편지 회원들의 기부금을 통해 건립됐다고 하더라. "명상센터는 아침편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꿈이었고, 일찌감치 회원들과 그 꿈을 공유했다. 우선은 내 집을 팔아 종자돈을 마련했고 1000원부터 거액의 기부금까지 다양한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다. 이게 누군가의 웅변과 선동을 통해 되는 일이 아니다. 진심으로 뜻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몸집이 커지니 '아침편지'의 초심이 흔들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데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가 초심을 지키는 것. 둘이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초심을 잃어도 소멸하지만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도 소멸한다. 명상센터만 해도 직원 70명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거미줄이 생기니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변해서는 안 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분별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이를테면 은행 돈은 1원도 쓰지 않는다. 헛돈을 바라지 않고 국가 예산도 지원받지 않는다. 여유 있으면 성큼성큼 가고, 여유가 없으면 멈춰 서서 기다린다."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온라인 쇼핑몰 '꽃피는 아침마을'은 100억원대 매출 규모라더라. "놀랍게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저게 나중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든다. 유통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니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분명한 건, 그 결과물이 개인의 부로 가지 않고 재단으로 간다는 것이다. 얼마의 수익이 생겨도 다 공적인 재산이다. 수익의 100%를 재투자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든다."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나. "꿈은 무궁무진하다(웃음). 플럼빌리지 같은 명상 마을을 만드는 꿈, 아침편지를 영어와 중국어·일본어로도 써서 전 세계로 배달하는 꿈까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슬프고 힘든 일. 분명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마운 벗이기도 합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아니면 끝내 모르고 말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으니까요'('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중에서). 고도원의 글이 널리 읽히는 이유는 간결하고 감성적인 문장으로 사람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방송인 이금희는 "동서고금 현인들의 지당하신 말씀들뿐이었다면 아침편지가 큰 공감대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꿈보다 나은 해몽처럼 장기판 훈수꾼의 한마디처럼 짤막하게 덧붙이는 고도원의 글 몇 줄이야말로 아침편지의 참맛"이라고 했다. 꿈, 행복, 희망 같은 추상 개념들을 매일 새로운 맛으로 요리해내는 '노하우'는 고도원 자신의 인생 역정, 그리고 그의 독특한 독서력(讀書歷)과 관련 있었다. ―아침편지 1호에 루쉰의 글을 띄웠다. "내 삶이 가장 힘들 때, 경제적으로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이정표가 되어준 글이다. 루쉰의 '고향'은 원래 아버지의 책이다. 절망과 혼돈의 시간이 오면 아버지의 책을 꺼내 읽었다. 글 '희망이란'도 아버지가 먼저 밑줄 그어놓은 문장이었다." ―선친이 시골 교회 목사였다. "평생을 사례비 없이 교회 개척만 하신 분이라 우리 7남매의 유년기는 굉장히 궁핍했다. 가난 속에서도 아버지는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도 책을 강제로 안겨주신 뒤 밑줄 그어가며 읽게 하셨다. 온화한 성품이신데 책을 잃지 않으면 종아리를 때리셨다." ―그때부터 고도원의 책 읽기가 시작됐나 보다. "중2가 극심한 반항기였다. 교회에 사는 게 싫고 목사의 아들인 게 싫고 배고픈 게 싫더라. 그래도 책은 좋았다. 만화, 음란물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지. 당시의 마광수가 방인근이었다는 걸 아나? '벌레 먹은 장미' '밤이 그리워' 같은 음란물을 썼던(웃음). 그 덕에 내가 속독법을 터득했다. 30분에 한 권씩 읽어야 하니까(웃음). 어릴 때부터 써온 독서 카드가 아침편지 쓰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2001년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이미 5~6년은 쓰고도 남을 목록이 있었다(웃음)."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2학년까지는 우등 장학생이었다. 그런데 '연세춘추' 편집국장을 하면서 필화 사건을 일으켰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되고 강제 징집되면서 인생이 쫑났다. 운동권 출신이란 딱지 때문에 도통 취업이 안 되더라. 포장마차도 해보고 문방구 하다 사기도 당하고 웨딩드레스 사업하다 망하고. 우연히 잡지 '뿌리깊은나무'의 기자가 되면서 글쟁이 길로 들어섰다. 다시 중앙일보로 가서 15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나름대로 특종 기자였다(웃음)." ―그러다 청와대로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 담당 비서관으로 5년을 일했다. "평민당 출입할 때 DJ를 처음 만났다. 내 인생을 바꾼 분 중 한 사람이다. 한 번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라는 책에 대해 말씀하시더라. 나는 그 책을 아버지한테 매 맞으면서 중학교 때 처음 읽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와 함께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영감을 받아 15번이나 읽은 터라 토인비 책을 암송하다시피 했는데 그걸 DJ가 좋게 보시고 내게 관심을 보이셨다." ―김대중 대통령이 무척 꼼꼼한 성격이었다더라. "하늘을 찔렀지(웃음). 철두철미하고 분석적이고 용의주도하고. 그분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철학, 표현 방식을 연구해서 내 것처럼 토해내야 하는 연설문을 5년간 쓰면서 내 인생의 멘토로 모시게 됐다. 연설문은 서생(선비)적 판단과 상인적 기질로 써야 한다고 충고해주신 분이 DJ다." ◇당신만의 북극성을 띄워라 ―'아침편지' 1호를 쓴 게 청와대 재직 시절이었다. "대통령 연설문 쓰는 게 글쟁이 최고의 관직이라는 둥, 고스트 라이터라는 둥 부러움을 받았지만 결국은 피 빨아먹는 직업이더라(웃음). 5년 동안 딱 사흘 쉬면서 일하다 보니 몸에 마비가 왔다. 고개가 안 돌아가더라. 몸은 마라톤으로 회복했지만 머리를 맑게 해줄 뭔가가 필요해서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마침 이메일이 확산되던 시점이라, 아는 사람 몇몇에게 띄운 글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거다." ―처음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정치를 하려는 거다, 돈을 벌 요량이다 하면서. "청와대 안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그래도 썼다. 그걸 쓰지 않으면 내가 죽을 판이니. 아침편지는 누구보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쓴 글이다." ―책에 보니 '청와대는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그대로 표출되는 장'이라고 썼더라. "마흔아홉 가지 은혜를 입고도 한 가지 일 때문에 등에 비수를 꽂는 사람이 허다하더라. 정치적 욕망을 꺾었다. 휴식할 겸 동유럽을 한 달간 여행하면서 인생의 밑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때 많은 수도원과 명상센터를 보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명상센터까지 운영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침편지를 몇 달 배달하면서 이 일이 단지 글재주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절감했다. 나 자신이 명상적 삶,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였다. 그날부터 명상공부를 시작했다. 잠자기 전 샤워를 하듯 마음의 샤워를 하는 방법에 대해. 종교적 해법과는 다르다. 종교는 자신의 문제를 절대자에게 맡기고 간구하는 것이다. 명상은 자기 안에서 찾는 거다. 자기 안의 신(神)을 통해서 찾는 것이다." ―'아침편지'에 인용하는 문장은 어떤 기준을 갖고 선택하나? "내 삶과 관련된 문장들이다. 그날 나를 성찰하게 한 글, 바로잡아준 글. 그게 다른 사람들 가슴에도 꽂히더라. 미사여구 화려한 명문만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 ―오늘의 20대에게 '아침편지'를 준다면. "꿈꿔라. 너만의 내비게이션을, 북극성을 띄워라. 방향만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달한다." [Why] [김윤덕의 사람人] 11년째 '아침편지' 배달하는 ... ▲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이 자리한 충주의 숲에는 낙엽송이 우거져 있다. 고도원은 명상의 한 방법으로 냉온욕을 권했다. “몸의 방향을 정반대로 바꿔보세요.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방 안에서 방 밖으로, 정신노동에서 육체노동으로!”/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ㅣ
꿈이 그대를 춤추게하라 (소개영상) ※ HD에 파란불이 들어오게 클릭하시고 전체화면으로 보시면, 좋은 화질로 볼 수 있습니다. ※ 유투브(Youtube)로 동영상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YTN 이슈&피플 ※ 유투브(Youtube)로 동영상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KBS 1TV, 즐거운 책읽기(고도원의 '인생의 책'편)
OBS TV '차인태의 명불허전'(고도원편)
[리더스 콘서트] "신문은 희망의 노트북… 읽기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져" - 조선일보(2011년 9월8일자) 종합 A8면 - - 조선일보(9월8일자) 문화'리더스콘서트'란 기사글(홈페이지) - [리더스 콘서트] "신문은 희망의 노트북... 읽기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져" '마음의 비타민' 아침편지, 260만 독자에게 매일 배달하는 고도원씨 2011년 09월 8일 (목) 03:10:00 지면보기 8면 대전 신용관 기자 qq@chosun.com "매우 궁핍하게 자란 저는 아침마다 아버님의 심부름을 했습니다. 엄했던 아버님은 '도원아, 김 집사님 댁에 가서 다 읽은 신문 좀 빌려 오너라'라고 명하셨지요. 뭐 대단한 내용이 있기에 저러시나 싶어 저도 신문을 따라 읽기 시작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과 조선일보가 함께 마련한 신문 읽기 순회 특강 '리더스 콘서트'의 하반기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고도원(59)씨는 7일 읽기를 통한 꿈의 성취에 대한 강연을 차분하게 이어갔다. 이날 대전 한남대 학생회관 소극장을 찾은 청중들은 100여분간 진지하게 고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씨는 매일 260만 독자들에게 '마음의 비타민' 아침편지를 배달하는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일간지 기자, 청와대 비서실 연설담당 비서관 등을 거쳐 2001년 이후 책에서 읽은 인상 깊은 글귀를 몇 줄 적고 그 아래 단상을 붙인 '아침 편지'를 인터넷으로 보내고 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꿈너머꿈'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읽기로 찾은 꿈너머꿈'이라는 주제로 고씨는 자신의 인생행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평생 글쟁이 생활을 했고, 글 제법 읽었다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 살아왔으나 아직 나보다 독서카드를 많이 만든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부친에게 매 맞아가며 책을 읽었다는 그는 1971년 연세대 입학 후 교내 신문 '연세 춘추' 편집장까지 했으나 제3공화국 긴급조치 9호에 걸려 강제징집을 당했다. 제대 후 '전기밥솥 하나 들고' 결혼을 했으나 학생운동 경력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서울 중곡동에 문방구를 열었을 때는 복덕방에 사기를 당해 가진 돈을 모두 날렸다. 하늘이 노래지고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후 취직한 잡지 '뿌리 깊은 나무'마저도 1980년 강제폐간당했다."그 10년간 절망의 계곡을 헤맬 때도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 신문이었습니다.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으면 '이 썩을 놈의 세상'이라며 욕부터 나왔지만 그 와중에도 가끔 내게 빛을 주는 기사들이 있었지요. 그 기사를 스크랩해서 희망의 노트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후 일간지에 특채돼 15년간 사회부, 정치부를 거쳤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5년 동안 딱 사흘 쉬었을 정도로 열심히 했으나 어느 날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낀 뒤" 2001년 8월부터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첫 편지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 '희망'의 유사성을 얘기한 루쉰의 '고향'에서 따온 글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편지를 이메일로 받아보는 독자는 10년 만에 260만명까지 늘었다. 책과 신문을 읽으며 스크랩해 놓은 노트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읽기는 사색의 기본입니다. 신문·잡지 같은 매체는 현실의 반영이지요. 매일 물을 마시고 밥을 먹지 않으면 육체가 상하듯, 읽기를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집니다." 그는 또 자신의 학창시절 별명이 '못생긴 남자', 즉 '못남'이었다면서, "외모보다 아름다운 것은 내면의 아름다움인데,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삶,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들여다보고 내 영혼으로,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글이나 뉴스를 읽고 내 마음이 움직인다면 내가 아름다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엔 분당에서 온 한 주부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문을 가깝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고씨는 "나의 아버지가 넋을 잃고 신문을 보던 모습이 아직도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면서 "강요하면 아이들은 안 읽는다. 부모가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따라오게 되고, 신문에 실린 주제를 놓고 아이들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덧붙여 고씨는 "비판적으로 읽기 전에 우선 각 신문이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남대 학생인 이중우(경영정보학과 1년)씨는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기본기가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읽기가 근간이라는 내용이 크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과 조선일보가 함께 마련한 신문 읽기 순회 특강 ‘리더스 콘서트’의 하반기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고도원(59)씨는 7일 읽기를 통한 꿈의 성취에 대한 강연을 차분하게 이어갔다. 이날 대전 한남대 학생회관 소극장을 찾은 청중들은 100여분간 진지하게 이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260만 아침편지가족이 만들어가는 꿈너머 꿈 앙트(entrepreneur) 2011/09/08 17:38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2001년 8. 1. 아침을 깨우는 이메일 한 통이 전해졌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오늘, 260만 명의 아침편지 가족들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 보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메일 한 통을 보냈을 뿐인데,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나누기 시작했고, 그렇게 쌓인 이메일 한 통은 문화재단으로, 명상센터로 진화되어 갔던 것이다. 놀랍게도,이 모든 일의 시작은 고도원 이사장이 10년 전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이었다. 좌충우돌, 변화무쌍 인생 소년은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잦은 이사를 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유독 책읽기를 강조하셨다. 그 덕에 소년은 어릴 적부터 밑줄 그어가며 수많은 책을 읽어 내려갔고, 책읽기는 글쓰기로 이어졌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몸에 베인 책 읽기와 글쓰기는 그의 인생2막에서 더 큰 꿈으로 피어나는 동력을 제공했다. 목회자의 삶을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청년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학학보사에서 일하던 중 필화사건으로 수배되어 구속된 후 강제징집 당하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구속, 징집과정을 겪게 되면서 청년의 목회의 꿈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평생을 품어온 꿈을 떠나보내야 했던 상황은 청년 개인이나, 가족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목회의 꿈을 떠나 보낸 후 청년이 마주하게 된 것은 생활고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청년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포장마차를 끌고 거리에 나서기도,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그는 [뿌리깊은나무]와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게 되었고, 김대중대통령 시절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다. 아침을 깨우는 이메일 한 통 언론인에서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화려하게 비치는 세속적 시선과는 달리 그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갔다. 하루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청와대 생활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고, 정치권력을 향한 인간군상의 욕망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상황도 버거웠다. 그의 몸은 돌덩이마냥 굳어갔고, 신경은 예민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좋은 약을 가져다 먹고, 명의를 찾아 다녀 보아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가 병든 몸을 달래고, 치유시켜 낼 방법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느날, ‘한 줄의 문장이 한 사람을 살리는 치유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문구를 찾아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모아둔 문장들을 2001. 8. 1. 부터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놀랍게도,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변화는 그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아침편지에 담아낼 문구를 고르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본인 스스로가 치유되었을 뿐 아니라, 아침편지 덕에 울고, 웃고, 공감하는 이들을 벗하게 되면서 이상한 힘이 생겨났다. 물론, “청와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사적인 메일을 보내는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라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희망과 치유의 문장을 공유하고 싶었던 그의 진정성과 끝없이 꿈꾸는 열정이 있었기에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함께 꿈꾸는 아침편지 커뮤니티 희망의 문구를 담아 실어 나르는 아침편지는 친구에게서, 또 다른 친구에게로 전해졌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그 두 명이 또 다시 다른 이들에게 아침편지를 전하며 자가발전을 하자 아침편지 가족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그가 만들어가는 아침편지는 생활인의 마음 속 깊이 담겨있던 선하고도 여린 마음을 끌어내는 이상한 공감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침편지가족이 늘어가면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침편지가족들이 직접 강사로 나서는 문화강좌가 만들어졌고, 함께 달리며 심신을 달래는 마라톤모임이 생겨났고, 여행을 통해 명상하는 명상여행을 떠났고, 밑줄 그어가며 읽은 책을 함께 나누며 서로가 꾸는 꿈을 단련시켜 나갔다. 고 이사장은 유독 꿈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꿈이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카이스트 대학원생들과의 만남 이후부터는 “꿈 너머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잘나가는 과학자”나 ‘백만장자”의 꿈은 있을지언정,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고 난 이후의 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공부하고, 배워서는 우리의 미래가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함께 꾸는 꿈"으로 만들어낸 "깊은산속옹달샘" 아침편지 가족들과 함께 고이사장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비책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생활명상이다. 생활명상은 아침편지를 통해 전해지는 문구를 음미하는 것에서부터, 음미한 문구를 건강한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 이사장은 오랜 경험을 통해 습득한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을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에 개설해 아침편지가족들과 함께 다듬고, 운영하며 아침편지만의 콘텐츠를 쌓아가고있다. 깊은산속옹달샘은 고이사장이 아침편지가족들과 함께 자연의 품 안에서 쉼과 치유를 얻을 수 있는 명상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에 대한 꿈으로 시작되었고, 2003년부터 8년여에 걸쳐 부지구입과 골격세우기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충주시 노은면 문성리에 터를 두고 있는 아침편지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은 고이사장이 자택을 팔아 마련한 돈과 수많은 아침편지 가족들이 모금해준 모금으로 건축되었다.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명상센터의 건립에, 수많은 사람들의 모금과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아침편지를 통해 진정한 마음을 나누었던 고이사장에 대한 아침편지 가족의 신뢰가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깊은산속옹달샘에서는 자연이 주는 치유력과 함께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의 체험은 물론, 건강한 밥상까지 경험할 수 있어 몸과 마음을 통째로 비우고, 채울 수 있는 안식처로 자리잡고 있다. 고도원 이사장이 전하는 리더십, 팔로워십, 서번트십 리더십 아침편지재단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내일은 고 이사장 곁에서 함께 꿈꿔온 아침지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 이사장은 처음부터 함께 꿈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드물기에, 그들의 품성과 잠재력을 보고 같은 꿈을 꾸며 나아가도록 길러내는 것이 리더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고 이사장은 아침지기들의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을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눈여겨 본 후, 이를 이뤄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다. 물론, 시간을 견뎌낸 궁극의 믿음이 리더십을 받쳐주는 힘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팔로워십 아침지기들과 함께 꿈꾸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고 이사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이자 멘티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단 한 개도 없다. 이끄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따르는 법을 새겨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서번트십 아침편지가 만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에 들어서면, 아침지기들의 몸에 배인 서번트십을 대번에 눈치채게 된다. 서로 존중하고 따르는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공존이 언제, 어디서든 아침편지가족들을 향한 섬김으로 체화된 것이다
New Document - 중부매일신문(6월10일자) 8면 - - 중부매일신문(6월10일자) 기사글(홈페이지) - 자연을 벗삼아 맑은 영혼의 꿈을 찾는다… 주말여행. 아침편지 명상센터 충주 '깊은산속 옹달샘' 2011년 06월 9일 (목) 20:54:35 지면보기 8면 정구철 기자 gcjung@jbnews.com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IC를 빠져 나와 음성군 감곡 방면으로 5분 정도 가다 보면 왼편으로 '깊은산속 옹달샘'이라는 연두색의 예쁘장한 이정표가 눈에 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2㎞정도 들어가다 보면 숲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깊은산속 옹달샘'을 만날 수 있다. '깊은산속 옹달샘'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아침편지문화재단'(이사장 고도원)이 운영하는 명상센터다. 이 곳에 들어서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원초적인 자연의 기운을 만날 수 있다. 이 숲 속에서는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을 벗 삼아 비우고 채우며 일상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자연스레 마음이 가벼워지고 온 몸이 맑은 기운으로 가득차게 된다. 꿈이 없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꿈을 만들 수 있고 꿈을 가진 사람들은 이 곳에서 꿈을 더욱 키울 수 있다. ◆꿈을 현실로 만든 기적의 보금자리 지난 해 10월 9일 충주시 노은면 문성휴양림 인근에 개원한 '깊은산속 옹달샘'은 '아침편지문화재단'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야심차게 문을 연 곳이다. '아침편지문화재단'은 중앙일보 기자와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낸 고도원(59)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독자들에게 아침편지를 배달해 온 고도원씨가 '명상센터' 건립을 꿈꾸며 지난 2003년 9월 4일 아침편지를 통해 '깊은산속 옹달샘 꿈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7년만에 개원했다. 한 사람이 꿔 왔던 아름다운 꿈이 많은 사람들의 꿈으로 발전돼 꿈이 아닌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깊은산속 옹달샘' 건립 예산은 모두 회원들의 후원으로만 마련됐다. 적게는 1천원에서 많게는 1억원에 이르기까지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금액이 모여져 지금까지 무려 66억원 정도가 투입됐다. 말 그대로 꿈이 이뤄졌고 기적을 이루게 됐다. 지난해 '깊은산속 옹달샘'이 개원되고 아침편지를 통해 256만명의 아침편지 회원들에게 소개되면서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매월 2천여명씩 이곳을 찾고 있으며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기업체 등으로부터 단체참여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총 20만㎡가 넘는 '깊은산속 옹달샘'에는 숲 속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지은 식당과 카페, 숙소 등 13개의 각종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재 건축 중인 '미완의 명상의 집'을 비롯해 '웰컴센터', '도서관이 있는 만남의 집', '식당과 옹달샘카페가 있는 나눔의 집', '꿈 사다리집', '사랑채' 등 각 건물마다 예쁜 이름을 붙였다. 특히 기부자들의 이름을 따 '허순영님의 하얀 하늘집', '최재홍님의 네잎클로버집', '김정국님의 동그라미집'으로 이름지었고 고도원 이사장은 '고도원님의 춘하추동'으로 불리는 공간에서 매일 회원들에게 배달하는 아침편지를 집필하고 있다. 특히 오는 17일 문을 열 예정인 '꿈꾸는 다락방'에는 26개의 방과 함께 샤워실과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어 단체방문객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고도원 이사장은 최근 '금수강산 수목원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계획하고 6천 그루의 나무와 꽃을 심었다. 계절에 따라 꽃과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풍광을 보일 수 있도록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나무와 꽃을 심었다.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으로 마음의 안식 찾아 '깊은산속 옹달샘'은 각종 명상프로그램을 마련, 이를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로 찌든 사람들에게 안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곳에서 실시하는 명상프로그램으로는 '옹달샘 걷기명상', '옹달샘 하루명상', '잠깐멈춤', '비채명상' 등과 함께 연령대 별 부부들을 위한 '꿈꾸는 부부학교', '중년부학교', '금빛 부부학교'가 있다. 또 '옹달샘 명상다이어트'와 '단식명상', '화려한 싱글학교', '어머니 학교', '아버지 학교', '꿈너머 꿈 청년학교', '자아인 훈련과정'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각자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일정별로는 당일 프로그램에서 6박7일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1박2일 프로그램부터는 생태건축으로 지어진 숙소에서 묵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각종 명상프로그램에는 고도원 이사장이 직접 강사로 나서 '꿈너머 꿈'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실시한다.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잠시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마음의 북극성'을 띄우고 환한 얼굴로 돌아가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걷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 평소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와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된다. 이같은 명상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안식과 삶의 방향을 찾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이곳을 찾아 명상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게된 사람들도 여러 명이다.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건축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진희(40·여) 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웰컴센터 설계에 참여하면서 "20년 후에는 훌륭한 건축가가 되겠다"는 자신만의 꿈을 갖게됐다. 박씨의 꿈을 알게된 고도원 이사장은 다음 날 바로 박씨를 건축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이처럼 이 곳에는 꿈을 꾸는 50명의 직원들이 행복을 함께 나누며 근무하고 있다. ◆꿈을 만드는 징검다리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신선한 제철음식을 사용하는 만드는 무공해 음식이다. 음식에 사용하는 소금도 염전에서 천일염을 직접 구입해 항아리에 넣고 1천300℃에서 구워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제천한방바이오엑스포 시 약초를 구입, 부지 내에 심어놓고 매일 점심 메뉴로 약초비빔밥을 제공하고 있다. 아침에는 주로 생식이나 충주사과, 샐러드, 감자, 고구마, 보리빵 같은 음식을 제공하고 저녁에도 소박한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고 있다. 이 곳의 무공해 식단이 알려지면서 가끔 식사만 하러 이 곳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고도원 이사장은 아직도 꿈 너머에 많은 꿈을 꾸고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영간으로 번역, 전세계에 있는 회원들에게 배달해 평생에 한 번 만이라도 '깊은 산 속 옹달샘'을 다녀가도록 할 계획이다. 또 이곳에 국제청소년수련센터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꿈을 이뤄가는 동반자들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깊은산속 옹달샘'이 육체와 정신,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치유센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깊은산속 옹달샘'은 꿈이 없는 사람들이 찾아와 꿈을 만들고, 꿈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더 큰 꿈을 꾸는 인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정구철 / 충주gcjung@jbnews.com
MBC TV 뉴스매거진, 나의 건강비결 2011년4월20일, 'MBC 6시 뉴스매거진' 방영 ...
MBC 스페셜, [마음에 근육을 만들다] 2011년2월18일, 'MBC 스페셜' 방영 ...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더 큰 성공을 이룹니다 많은 사람들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끊기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고,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자동차도 기름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고장이 나기 전에 멈춰서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 마냥 달리기만 하면 강제로 서버리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멈추어야 더 큰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고도원, 《잠깐 멈춤》 중에서 한 남자가 있다. 목사 아버지 밑에서 회초리 맞아가며 강제로 ‘밑줄 긋기 독서’를 하며 자란 소년은 연세대 신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공명심이 강했던 남자는 기자가 됐다. 중앙일보 사회부를 거쳐 정치부에서 기자생활을 오래했다. 박학다식한데다 대인관계에 능통하고 사람 속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남달랐던 남자는 청와대로 가 대통령 연설담당 1급 비서관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을 5년간 담당했다. 힘과 권력이 생겼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마음은 공허하고 몸 여기저기는 굳어갔다. 마음의 쉼터가 필요했다. 남자는 자신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 독서노트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단 편지를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보낸다.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쉽고 짧은 편지. 편지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고, 10년이 지난 지금 수신인이 218만 명에 달한다. 그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명상마을을 만드는 것. 남자는 숲속에 오두막 명상센터를 하나 둘 늘려갔고, 아침편지 회원들의 후원으로 명상센터는 점점 자라고 있다. 남자의 꿈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그 꿈의 종착역은 누구도 모른다. 한 남자가 시작했지만, 꿈을 키우고 실현시키는 것은 218만 명의 회원들이고, 그 회원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쓰는 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10월 충북 충주에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개원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이 빽빽한 산속에 자리한 ‘깊은 산속 옹달샘’은 전날 내린 폭설 때문에 더욱 이질적으로 보였다. 인적 없는 숲 속 마을에는 한낮에도 투명한 정적이 흘렀고, 곳곳에는 좁은 보폭의 사람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명상센터 마을에는 옹달샘 카페, 만남의 집, 나눔 의 집, 명상의 집 등이 띄엄띄엄 있고, 뒤편에는 ‘김정국의 동그라미집’ ‘최재홍의 네잎클로버집’ ‘허순영의 하얀 하늘집’ 등 후원자의 이름을 딴 독채들이 있다. 건물들은 통일성이 없는 듯하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내부 곳곳에 있는 책장, 옷장, 식탁, 탁자 등은 모두 나무 느낌을 살려 자체 제작했다. 명상센터 축을 담당한 건축디자이너 최호근 씨는 이곳의 콘셉트를 “인테리어 없는 인테리어”라고 했다. 고도원 이사장은 언덕 위 ‘고도원의 춘하추동’에서 산다. 이곳에서 고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이곳에서 머물며 떠오른 단상을 담은 책 《잠깐 멈춤》을 펴냈다. 집필실 벽면은 책으로 빼곡했다. 책마다 색 띠지가 붙어 있고, 펼치면 어김없이 밑줄이 그어 있다.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세어본 적은 없어요. 하루 세끼 밥을 먹으면서 지금 까지 먹은 끼니를 계산하지 않듯 저에게 독서는 삶이고 운명이에요. 책 좋아하는 아버지를 만나서 책을 많이 읽었고, 여기까지 왔죠. 많이 읽는 날은 하루 열 권도 읽는데, 책마다 속도가 달라요. 최근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같은 책은 이틀 사흘 쫄깃쫄깃 곱씹으면서 읽죠. 요즘은 구보타 시게코의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고 있어요.” 기자와 정치인, 명상센터 이사장. 고 이사장이 걸어온 세 가지 영역의 길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공명심’ 이라는 면에서는 통한다. 하지만 공명심의 종류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정치인은 성공하면 힘과 권력이 생겨요. 그리고 힘과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죠. 하지만 지금은 같은 공명심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달라요. 겉은 멀쩡한데 속은 다친 사람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 눈물 많은 사람들, 맑음과 고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요. 고요를 지향하다 보면 그 주변도 고요해지죠. 예전에는 펄펄 끓게 하던 일들이 지금은 제 마음을 미동도 시키지 않는 일들이 있어요.” ‘고도원의 아침편지’ 218만 명 회원이 함께 만든 장소 고 이사장은 2001년 8월 ‘희망이란’ 첫 편지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이메일로 편지를 보낸다. 해외여행 등으로 불가피하게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리마인드 편지를 보낸다. 그가 아침편지를 쓰게 된 것은 그 스스로 숨통이 필요해서였다. 1급 공무원으로 재직 시절, 그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피로와 과로가 쌓여갔고, 몸에서 신호를 보내 왔다. 반신이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한 것. 지금도 그는 오른손이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잠깐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아침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좀 더 적극적인 휴식 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은 그는 동유럽 배낭여행을 떠난다. 아침편지 수신자들에게 동행자 신청을 받았는데, 500명이 신청했고, 그 중 버스 한 대 인원인 41명과 함께 한 달간 동유럽을 다녀왔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 의미 있는 일’의 방향성이 달라진 것. ‘고도원의 아침편지’ 발송 초기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1급 공무원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 “정치하려는 거냐?”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고, 청와대에서 정식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편 지 수신자가 많아질수록, 편지 내용이 쌓일수록 오해가 풀렸고, 나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침편지 회원 수를 보고할 정도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작고 전 그와 함께 한 점심 식사자리 에서 김대중 전 대통 령은 “고 이사장이 자랑스럽다, 대견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밑에서 정치를 꿈 꾸는데, 당신은 그럴 만한 소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다. 고도원 이사장은 충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전국 어디서나 2~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낙점된 곳이 충주다. 지금의 명상센터 터를 본 순간 “딱 여기다!” 싶어서 둥지를 틀었는데, 풍수지리학자들은 이곳을 “산의 기운이 온화한 명당”이라고 평한다. 명상센터 개원 전 고도원 이사장은 세계 곳곳의 이름난 명상센터를 다니면서 벤치마킹했다. 프랑스에 있는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에서는 종교적 인 색채를 걷어내고 ‘걷기명상’을 취했고, 인도의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는 상업적인 냄새를 버리고 ‘춤 명상’과 명상센터 건물 간의 동선을 배웠다. 인도 동북부에 있는 명상마을 ‘오로빌 마을’에서는 보리수 한 그루만 있던 척박한 대지가 울창한 숲을 이룬 신화적인 기운을 담아왔다. 국내의 아침고요수목원, 허브나라, 천리포 수목원 등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고도원 이사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직접 교류 하면서 그들의 명상을 돕는다. “제가 생각하는 명상의 개념은 멈춤이에요.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말을 하다가 잠깐 멈추고 고요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하던 행위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겁니다. 마음관리를 하지 않으면 공허해집니다. 지금 우 리 사회는 가치의 중심이 육체에서 마음으로 이동하는 중간 지점에 있어요. 점점 마음건강의 중요성이 커지 고, 마음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겁니다.” 그는 ‘꿈 너머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의사가 되어서 불쌍한 사람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것은 ‘꿈 너머 꿈’이다. 그리고 그 꿈 너머 꿈이 위대할수록 꿈을 이룰 수 있는 확률도 높 아진다고 한다. “인생 디자인을 시작하는 시기의 청년들에겐 꿈 너머 꿈이 필요해요. 꿈을 이루기까지는 자기 중심적이어야 하죠.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백만장자가 되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건 시시하잖아 요. 저희 프로그램에 오신 한 CEO가 본인의 꿈이 세계 최고의 기업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랬 어요. ‘세계 최고의 기부자를 꿈꾸십시오. 그러면 세계 최고의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은 저절로 되겠지요?’ 라고요. 꿈 너머 꿈이 멋있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꿈 너머 꿈 덕분이에요. 꿈 너머 꿈이 멋있고 공적이고 이타적이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생겨요. 고상하고 힘있는 사람이 꼭 생깁니다.” 기획: 김민희기자 l 사진: 김선아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지쳐버린 몸과 마음.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로 유명한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 그곳에서 비움과 채움의 하루를 보냈다. 유난히도 바람이 차갑던 새벽,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여를 달려 충북 충주의 ‘깊은산속 옹달샘’ 에 도착했다. 지난 10월 문을 연 이곳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아침편지 문화재단에서 운영 하는 명상 치유 센터다. 팍팍한 일상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이 찾아와 휴식, 명상, 운동, 마음수련을 하고 에너지를 충전해 돌아가고 있다. 기자는 하루 명상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마음 같아서는 3박 4일 정도 맑은 공기 마시며 정신수양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일단 하루만이라도 머리를 비워보자 생각했다. 1_2인 1조로 짝을 지어 하는 림프 마사지는 힘을 빼고 여유롭게 진행하는 것이 포인트. 2_명상 참가자들이 스트레칭과 요가 동작을 따라 하며 오수 명상을 하고 있다. 3_걷기 명상을 하며 겨울 산을 걷는 모습. 따뜻한 옷과 등산화는 필수 준비물이다. 침묵의 산행, 걷기 명상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걷기 명상을 위해 운동화 끈을 고쳐 맸다.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 산을 걷는 것이 꽤나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말 한마디 없이 그것도 아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쌓인 눈을 밟으며 걸음을 옮기는 소리, 멀리 서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가 전부였다. 그리고 한 번씩 징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췄다.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숨을 크게 쉬었다. 키가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 나무 기둥에 낀 초록의 이끼도 보였다. 멈추는 것보다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것에 익숙해져 잠시 동안의 침묵과 멈춤이 낯설기도 했지만 곧 내가 그동안 지나친 많은 의미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짧지만 길었던 오전걷기 명상이 끝나고 돌아온 점심 식사 시간에는 곤드레나물 밥과 유채나물을 곁들여 먹었다.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자연식이 어찌나 맛있던지, 체면 불구하고 밥을 두그릇이나 뚝딱 비워냈다. 15분의 낮잠으로 가벼운 몸 만들기, 오수 명상 점심 식사를 많이 해서인지 잠이 살짝 오기 시작했는데 오후 첫 번째 프로그램이 낮잠을 잘 수 있는 오수 명상이라니 대환영이었다. 오수 명상은 올바르고 건강한 호흡법을통해 몸속에 쌓여 있는 나쁜 것들을 내보내 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호흡법만 바꿔도 몸과 마음이 훨씬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숙면을 위한 스트레칭도 배웠다. 다양한 요가 자세를 따라 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뒤 구르기까지 하며 굳었던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낮잠 시간. 잔잔한 수면 음악을 들으면서 편하게 눕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15분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골며 숙면에 빠진 참가자가 많았다. 기자 역시도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흠뻑 땀 흘리며 에너지 쏟아내기, 춤 명상 춤 명상? 어떻게 춤과 명상이 한 단어로 묶일 수 있는지 의아했다. 춤을 통해 명상을 하는 것이라기에 자리에 앉아 약간의 율동 같은 것을 함께하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트위스트부터 시작해 포크 댄스, 스포츠 댄스까지 다양한 춤을 섭렵했다. 몸치인 기자는 기본 스텝부터 엉키더니 끝나는 시간까지도 남들과 다른 댄스 세계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환한 대낮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바닥만 쳐다보고 몸동작도 쭈뼛쭈뼛했다. 하지만 신나는 노래에 맞춰 춤을 따라하면서 점차 흥이 났고 남들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의 즐거움에 몰입하게 되었다. 땀이 흐를 정도로 한바탕 신나는 댄스 타임이 끝나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춤 역시도 ‘덜어내기’ ‘내려 놓기’의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춤을 통해 내 안의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고 그동안 잊고 있던 내 안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로마 향으로 심신 치료, 향기 명상 프로그램의 마지막인 향기 명상은 다양한 아로마 향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국향기명상협회의 김윤탁 박사가 명상을 진행 했는데 불면증에는 라벤더 향이 피부 미용에는 로즈메리 향이 효과적 이라고 추천했다. 그리고 파트너와 함께 림프 마사지를 직접 해보는 시간 도 가졌다. 아로마 오일을 손에 묻혀 귀 뒤쪽부터 목을 타고 내려와 쇄골 까지 천천히 원을 그리며 마사지하는 것이었는데, 매우 간단했지만 신기 하게도 뻐근하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쉴 새 없이 몸을 순환하는 혈액과 달리 림프액은 하루에 딱 한 번만 순환하기 때문에 나쁜 기운이 잘 내려 가고 림프액이 잘 돌도록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모두 명상의 자세를 잡고 앉아 눈을 감고 ‘내려놓기’ ‘용서하기’를 했다. 그동안 용서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말을 하거나 혹은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이었는데 많은 참가자들이 눈물을 흘려 한동안 불을 켜지 못하기도 했다. 명상 센터 개원 후 벌써 3번째 방문이라는 이광희(30)씨는 “좋은 공기와 좋은 사람, 좋은 음식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며 “너무 바쁘게만 달려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먼 길을 왔는데 돌아갈 때는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얻어가는 것 같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감을 밝혔다. 기획: 강승민기자 l 취재: 박해나(프리랜서) l 사진: 이민희(studio lamp)
KBS 1TV '책읽는 밤', [작가 고도원을 만나다] 2011년2월8일, KBS 1TV 방영 ...
아침편지 배달부 고도원의 인생 처방전 "바쁠수록 천천히, 마음에 쉼표를 찍으세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분주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는 방법, 마음속에 수시로 짧은 쉼표를 찍어보자. 심오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이 진리는, 매일 아침 217만 독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고도원이 발견한 인생 처방 레시피다. 아침편지 배달부 고도원이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3년 만에 새 책이 나왔단다. 이라는 제목의, 커다란 쉼표가 있는 노란색 표지의 책.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참이라 커다란 쉼표의 울림이 꽤 컸다. 그 울림을 간직한 채 그가 있는 충청북도 충주의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찾았다. "쉼표 하나에 위안을 느끼셨다고요? 하하하. 요즘 자주 듣는 이야깁니다. 다들 많이 지치셨나봐요.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브레이크를 걸 시기가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잠깐 멈추자는 것이 사실 대단히 계몽적인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기존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말도 아니고, 아침편지에서도 꾸준히 언급했던 내용이에요." 아침편지는 지난 10년간 고도원이 매일 아침 독자들에게 보내고 있는 이메일 편지다. 자신이 읽은 책속의 인상적인 구절에 본인의 단상을 더해 한 통의 편지 형식을 완성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눈높 이를 낮춘 데다, 텍스트의 분량도 많지 않아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독자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인들에게 보내던 편지가 소문이 나서, 지금은 엄청난 숫자의 독자들이 그의 편지를 받아보고 있다. 수없이 쏟아지는 스팸메일 속에서 얌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그의 편지에는, 학창 시절 짝궁이 서랍속에 몰래 넣어 주던 정성 가득한 편지를 받아보는 듯한 설렘이 있다. "좋아하는 몇 사람에게 보냈던 아침편지가 행복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퍼져서 지금은 217만 명이 넘는 독자가 생겼어요. 책 한 권과 그 속에 적힌 글 한 줄이 사람의 운명과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이 번에 나온 은 아침편지의 연장선이에요. 아침편지로 주고 받은 수 많은 이야기들 중 '멈춤'에 관한 단상들만 모았죠. 이메일이 아닌 종이 편지를 묶어서 낸다는 생각으로요." 치열한 젊음 이후의 쉼표가 인생을 바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재밌는 이력을 갖고 있다.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독자들도 "고도원이 사람 이름이었어?" 라거나 "고도원은 편지 보내는 회사잖아!"라며 단정 짓는 경우가 있다. 그가 작가인지, 시인 인지, 종교인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그는 글쟁이 출신이다. 연세대학교 대학신문인 의 편집국장을 지냈고, 와 에서 기자로 15년간 활동했다. 1998년부터 5년간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냈다. "피 빨아먹는 직업이지. 잘 알잖아요. 잡지사 기자로 5년 일하고, 일간지에서 사회부, 정치부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냈지. 하루도 여유 없이 살았어요. 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5년동안 3일 쉬었나? 지금 생각하면 서글프죠. 황금 같은 인생에서 어저면 가장 빛날 시기에 일만 하면서 보냈 으니까. 물론 여한 없이 일을 했다는 충만감은 있지만,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웃음) 기자와 연설담당 비서관 사이에는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트레스가 막중한 일이라는 점도 비슷햇다. "기자시절 우리끼리 농담처럼 주고받던 말이, 가정을 버려야 가정을 지킨다는 말이었어요. 새벽3시에 나가서 밤새 기사 쓰고, 담배도 엄청 많이 피우고. 그렇게 몸을 함부로 대했더니 몸에서 말을 걸어 오더라고요. 온몸이 돌처럼 굳어 버리고, 손가락 하나 옮길 수가 없는 지경이 됐어요." 그때부터 그의 행보는 조금 달라지고, 조금 넓어 졌다. 몸과 마음에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인식하니 자동적으로 '멈춰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업무가 아닌, 본인을 위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마라톤을 했고, 아침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니 마음이 정돈되고, 마음을 가다듬는 다양한 방법이 떠올랐다. 아침편지가 자리하는 공간이 점점 커졌고,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 치열한 일상에 쉼표를 찍으니, 마음으로는 수시로 평온한 바람이 불었다. ‘아침편지에서 출발한 고도원식 마음 치유 프로그램' "아침편지가 벌써 10년째 접어들었어요. 심신이 지쳤을 때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동참해주셔서 제가 더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영감 이 오지 않아 괴로워할 때도 있지만요."(웃음) 아침편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만큼 그의 책임감도 커졌지만, 또 그만큼 편지를 읽고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는 독자들도 늘었다. 그 독자들과 공감할 거리를 찾고 싶었다. 한 통의 편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독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아리처럼 삼삼오오 뜻이 맞는 사람도 생기고요. 아무래도 정서 상태나 감정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자기들끼리 모여서 여행 동아리도 만들고, 건강 동아리도 만들어서 아침편지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요. 덕분에 제 활동 반경이 굉장히
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과 명상의 숲 거닐다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충주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만난 고도원의 눈빛은 진중하면서도 따뜻했다. 매일 아침 희망과 격려를 보내온 그와 마주한 순간,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를 편안함으로 물들어갔다. 지난 10년간 한결같이 아침에 배달되는 편지가 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어쩌면 그리 나를 잘 아는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을 때도 여러 번이다. 천천히 곱씹으며 음미할수록 편지는 더욱 깊은 맛을 낸다. 2001년 8월 1일에 시작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이야기 몇 줄에 웃고 울고 위로 받고 꿈을 찾는 사람들이 이제 218만 명에 다다른다. 아침편지의 자양분, 책을 말하다 충북 충주의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에는 춘하추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고도원의 집필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따듯한 편지가 발송되는 곳에 들어서니 책장마다 가득히 꽂혀 있는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의 책은 명상센터 내 도서관으로 옮긴 터라 극히 일부부만 있는 상태라지만 그래도 보통의 서가와 비교하면 누군가는 평생 걸려도 다 못 읽을 정도의 분량이다. 어린 시절 시골교회 목사였던 아버지가 물려준 독서습관은 그의 가장 큰 유산이자 인생 그 자체다. 늘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도록 강조했던 아버지가 싫어 반항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이었으리라. 짧은 글, 긴 생각을 담아낸 그의 편지가 탄생한 데는 몇 십 년을 이어온 독서습관과 독서카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책에서 발췌한 글귀를 담아 차곡차곡 정리해놓은 독서카드는 그가 앞으로 5년간 책을 읽지 않아도 아침편지를 거뜬히 쓸 수 있을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인생 자체가 독서라고 말하는 그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일까. “책은 정신의 산물이자 영적 소산이에요. 다른 사람의 정신에 상처를 내기 위해 책을 펴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모든 책이 다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기에게 가장 좋은 책은 가슴을 뜨겁게 하고 녹아내리게 하는 책, 밑줄 긋는 부분이 많은 책이에요. 단 한 권의 책, 하나의 밑줄이 인생을 바꿔놓으니까요.” 책 속에 담긴 영혼을 읽어내고 싶어하는 사람. 지식의 축적물이면서도 저자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저자와 정신적 교감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평소에 독서를 즐겨야 저자의 생각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음식으로 치면 처음부터 미식가가 되진 않거든요. 이것저것 먹어보고 엉터리도 맛봐야 진짜 음식 맛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처럼 한순간에 책을 통해 저자와 교감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늘 친구처럼 가까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그는 책을 기계적으로 읽지 않는다. 하루에 서너 권 볼 때도 있지만 ‘칼의 노래’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이 ‘쫄깃쫄깃한’ 소설들은 한 권을 일주일에서 최대 두 달까지 천천히 음미하기도 한다. 꼭꼭 씹어 행간까지 정말 사귀는 듯한 마음으로 읽어야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된다는 생각이다. 인생을 바꾼 세 번의 기회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기 마련이다.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순간 말이다. 고도원에게도 그런 때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대학 학보사인 연세춘추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 위해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 학보지에서 기자 일을 경험하면서 그의 인생 방향도 바뀌어 글쟁이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당시에 그가 썼던 글이 긴급조치 9호 때 문제가 되어 강제징집을 당했고 결국 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포장마차, 문방구 운영도 해봤지만 사기를 맞거나 결국 실패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자살만도 여러 번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시간이 이제 와 소중한 경험이 되었죠.” 암흑과도 같은 삶, 한 발 짝도 내딛기 힘들었던 시기에 인생의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아내를 만난 것이다. “아내는 새카맣고 작아지고 움츠러들던 시절에 만난, 저에게는 말벗이자 에너지가 되어준 동갑 내기 친구예요.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꿈만 먹고살았어요. 그야말로 황당한 꿈이 었죠. 많은 사람들이 꿈을 듣고 나면 눈빛이 달라 지고 갈라서거나 다투기 일쑤였는데 아내만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들어줬어요.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박수쳐준 것이 저에게는 그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는 큰 힘이 됐죠.” 6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부에게 는 일곱 번의 이별과 재회가 있었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던 그는 자신과 아내는 서로 다른 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아내와 달리 당시 저는 웃음이 많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서울 태생에 부잣집 딸인 데 반해 저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촌놈 중에 촌놈이었죠. 또 저는 기독교인이고 그쪽은 불교 신도였고요. 어쩜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연애하는 동안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 합해져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헤어진다고 해서 또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더 다시 만나자”와 “각자의 길을 가자”를 반복하던 끝에 그는 작심하고 새벽부터 아내를 집 앞에서 기다렸다. “우연을 가장한 채로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갔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나오는 아내에게 프러포즈를 했죠.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전기밥솥 하나 놓고 시작한 살림이 벌써 35년이 지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 시절, 꿈을 꾸게 하고 어둠의 터널에서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아내를 두고 그는 “신의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저도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있지만 그 추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안 좋은 마음이 오래 못 가죠. 한순간에 바로 꼬리 내리고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어요(웃음).”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 기자와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로 16년여를 지내온 그가 1998년부터 청와대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살게 된 것은 인생의 세 번째 기회였다. 그가 하는 일은 대통령의 모든 연설문, 기고문 등 대통령을 대신해 글의 초안을 쓰는 것이었다.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어요. 긴장과 스트레스가 엄청나 손과 어깨가 마비되어 거의 죽을 뻔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죠. 누구보다 대통령의 생각, 철학, 표현방식을 가장 깊이 꿰뚫고 있어야 했어요. 그만큼이나 세계,국가, 역사, 민족을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를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5년간의 임기를 마치자 그에게는 정치권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당시 정계에 진출했다면 지금과는 아마 다른 모습이었을 터. 하지만 그는 청와대를 나온 뒤 바로 배낭을 메고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정치권에서 제의가 몇 번 더 있었지만 아침편지에 모든 힘을 쏟기로 결심한 그이기에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지켜오고 있다. ‘오늘 편지는 당신을 위해 보냈어요' 아픔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상처에 공감하고 치료할 수 있듯이 지금의 아침편지가 218만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위로하게 된 데에는 그의 지난 세월이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여기에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직함과 소명의식으로 아침편지를 지켜온 그의 의지도 있었다. “아침편지 글 한 줄에 사람의 운명이 바뀌고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보며 세상에 이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일이 있겠냐는 생각을 매일 해요. 이제 저의 남은 생에 소명과도 같은 것이 된 거죠. 이 세상 소풍이 끝나기 전까지 아침편지를 쓰다 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느 작가와 달리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편지를 작성한다. 이글을 하루 종일 생활하며 생각하고 다듬은 뒤 자정이 되면 메일로 새로운 편지를 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어떤 편지는 쓰는 것이 몇 분 만에 끝나기도 해요. 그런데 어떤 편지는 몇 달을 걸려 쓰기도 하죠. 많은 명상이 필요한 일이에요. 원래의 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제가 덧붙이는 코멘트와 함께 더 글이 살아나야 하잖아요. 예전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과 함께 보낸 편지는 6개월 이상 걸린 거였어요. 시인의 일생에 보석 같은 글에 코멘트를 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는 편지를 쓸 때면 꼭 누군가를 떠올린다. 오늘 편지도, 내일 편지에도 꼭 수신인이 있다. 수신인은 마음의 대상일 때도 있고 직접 만난 사람일 경우도 있다. “저와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이나 저에게 상담하러 온 사람의 아픔을 발견하고 난 뒤는 그분을 생각하면서 편지를 쓰게 돼요. 그분의 삶을 생각하면서 ‘이 글은 오늘 그 사람에게 행복을 줄 수 있겠다’, ‘해답을 줄 수 있겠다’ 싶은거죠. 유행가도 한 사람이 듣고 눈물을 흘리면 더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된다잖아 요. 아침편지도 단 한 존재만을 위해 보내 는 것이 오히려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는 힘이 됐다고 생각해요.” 지난 10년간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매일 한결같이 편지를 보내온그. 가장 기억 에 남는 편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제일 처음 보냈던 편지를 꼽았다. “2001년 8월 1일 노신의 ‘고행’이란 책에 희망 이란 제목으로 보낸 편지예요. 돌아가신 아버님 이 남긴 책에 밑줄이 그어진 내용이었거든요. 처음에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아버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어요. 제가 아침편지에 소개하고 나서 많이 회자 되면서 그 편지가 자기 인생에 새로운 길을 내는 디딤돌이 됐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지난 10년의 많은 분들이 편지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네요.” 일상으로부터 잠깐 멈춤, 명상 “명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도인을 만드는 일이나 종교적인 행위로 받아들이는데 ‘깊은 산속 옹달샘’은 그런 모든 것을 벗어난 곳이에요. 열심히 사느라고 지친 사람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울화와 상처,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잠깐 멈춰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곳이죠.”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것은 물론이요, 이곳에서 터득한 명상방법을 응용하면 생활 속 공간도 명상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고도원이 이야기하는 명상은 숲속 깊은 곳에서 세상과 별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한, 에너지를 채우고 고갈되지 않게 하는 의미에서의 명상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20∼30대 때 누군가 명상을 알려주었다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에요. 저는 마흔아홉 살에 명상을 알았어요. 그때 기자 생활로, 청와대 생활로 건강이 완전히 무너졌던 시기였거든요. 명상은 그런 저에게 섬광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에게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마라톤이 일종의 명상이었다. 두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며 달리고 나면 더 깊이 사색하고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고도원은 “설거지든 화장실 청소든 다른 것 다 내려놓고 거기 에만 몰두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은 명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다수 명상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을 발견한 그가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명상법을 연구한 것이 지금의 ‘깊은 산속 옹달샘’ 명상센터로 이어 지게 됐다. 이곳에는 하루짜리 걷기 명상, 단식 및 다이어트 프로그램, 청년학교, 싱글학교, 부모학교 등 목적에 따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이제는 아침편지와 더불어 더 많은 이들이 보다 젊은 나이에 명상을 접할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사명이 되었다. “잠깐 멈춰서서 보아야 나의 ‘속사람’도 보이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를 알 수 있어요. 지금의 위치를 알아야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죠. 그렇기에 꿈을 가진 사람은 잠깐 멈출 줄 알아야 해요.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그가 지난해 펴낸 ‘잠깐 멈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 속도를 늦추고, 멈춤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와 함께 숲을 걸으며 걷기 명상을 했다. 한참을 걷던 중 징소리와 함께 멈춤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저 걷다가 멈췄을 뿐인데, 갑자기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그전과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소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미처 듣지 못했던 마음 깊은 곳의 소리까지도. 아주 잠깐의 명상이었을 뿐인데도 그와 헤어지고 서울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가벼웠다. 취재: 김선영기자 l 사진: 양우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