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연·송선희·조수정·이완숙, 4인 중견 여성작가 초대전이 깊은산속옹달샘에 위치한 옹달샘미술관(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우성1길)’에서 10일부터 2월 28일까지 열린다. 새해를 맞아 희망과 힐링, 자연과 행복, 집과 가족 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전시다. 전시 공간 내 1980년대 시절, 작은 집, 방 한칸을 연출한 ‘1988 덕선이네 집’ 포토존도 시선을 끌 전망이다. 구채연·송선희·조수정·이완숙 작가, 4인 초대전이 열린 깊은산속옹달샘 미술관 내부.이번 전시에 참여한 여성작가 4인은 각자의 감성적 미술 언어로 개인에게는 정서적 안정감을, 사회에는 미술을 통한 문화 향유 기회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해 왔다.이 중 구채연 작가는 일상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마음들 즉 기다림, 설렘, 다정함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화면엔 반려동물, 현대인을 의인화한 고양이가 등장해 작품과 관객들 간 교감의 깊이를 더한다. 치유와 힐링, 자연과 일상, 삶에 대한 여유와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입체적으로 담아왔다.구채연 | 별헤는 밤, 72.9x90.9cm,mixed media on canvas, 2025송선희 작가는 식물들과 함께 보낸 일상의 기록과 자연을 여행하며 느낀 감성적인 순간들을 서정적인 유화로 표현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자연이 건네는 조용한 속삭임, 자연이 주는 안정감 등을 그려오고 있다.송선희 | blue vase, 50.5x65.5cm, oil & mixed media on canvas, 2025조수정 작가는 따스한 색상을 캔버스 위에 그려낸 작품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마음 깊이 간직해온 유년시절 집과 자연, 그 안에 새겨진 추억을 독특한 재료를 혼합해 작품을 빚어내오고 있다.이완숙 조각가는 중년 여성 시선으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삶 속에 깃든 따뜻함과 웃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조각 작품들을 전시한다. 레진, 찰흙, 석고, 철 등 다양한 재료로 완성된 작품에는 인간적 온기가 느껴진다.4인 작가들, 작가 노트에서구채연 작가는 전시노트에서 일상에서 느끼는 감사함과 자연을 통한 치유, 소통의 중요성을 의인화된 고양이, 찻잔, 꽃과 나무, 숲속의 작은 집 등을 통해 전하고 있다.이에 대해 구 작가는 “기다림, 설렘, 사랑처럼 크게 말하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들이다. 화면 속에 자주 등장하는 그릇과 상자, 식물과 별은 무언가를 담고 키워내는 마음의 모습이며 시간을 믿고 건네는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고 전했다.이어 “그 안에는 누군가의 꿈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며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일 때 수도 있겠다. 작품 속 고양이들은 우리 가족의 반려동물이기도, 어떨 때는 나 자신이기도, 가족이기도, 때로는 그림을 보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리기도 한다. 나의 또 다른 ‘집’이기도 한 그림들이 겨울과 봄의 경계에 선 지금, 잠시 멈춰 자신의 속도를 돌아보는 작은 쉼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송선희 작가는 “나는 180여 종의 식물을 키우며, 식물들과 교감한 일상을 기록하고 자연을 여행하며 느낀 감성적인 순간들을 유화로 담아낸다”며 “아침마다 반려 식물들과 마주할 때면, 마치 나만의 정원에 머무르는 듯한 평온함이 찾아온다”고 전했다.이어 “나는 작업을 통해 자연이 건네는 조용한 속삭임을 되살리고 싶다. 작품 속 ‘별’은 소원이 머무는 자리이자 희망이 숨 쉬는 형태다. 별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관계의 거리, 다시 말해 서로를 존중하는 공간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조수정 | 내 집 앞뜰엔 72.7x90.9cm 황마에 백토와 혼합재료 2025조수정 작가는 “바람과 숲, 음악과 여행, 햇빛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독특한 질감을 가진 백토와 황마 위에 혹은 그 위에 질감을 더한 혼합 재료로 표현한다”며 “따뜻한 집으로, 시들지 않는 꽃으로 여러 가지 문양으로 환하게 피어난다”고 전했다.이어 “나에게 작업은 위로이고 카타르시스이고 대화를 나누는 친구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길이고 마음에 기쁨을 채워주는 충전기이며 인생”이라고 밝혔다.이완숙 | 담배가게, 3 0 x 1 5 x 3 c m, 합성수지, 2025이완숙 작가는 “내 작품 속 주인공은 인생이란 큰 무대에서 엄마로, 아내로, 아줌마로, 조연으로 살아온 중년여성”이라며 “세월의 무게에 비록 이름은 잊히고 있지만 소녀 시절 꿈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을 모티프로 삼아 상상 세계를 표현한다”고 전했다.이번 전시에 스토리텔링을 더해주는 ‘1988 덕선이네 집’은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응답하라1988’이 전달한 집과 가족의 의미를 재현해 본 것이다.옹달샘미술관 내부에 마련된 포토존 ‘덕선이네 집’이 외 전시 무대인 옹달샘미술관 내부엔 구채연·송선희·조수정 작가가 수제로 만든 아트상품들도 전시 판매된다. 아트작품 파우치, 핸드메이드 명함꽂이, 작품 달력, 모빌 등을 만나볼 수 있다.옹달샘미술관 내부에 구채연·송선희·조수정 작가 아트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구채연 작가 아트 상품 파우치한편 (재)아침편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깊은산속옹달샘’은 지난 2003년 고도원 이사장의 ‘꿈 이야기11’에서 시작되어 전국 수많은 후원자들이 뜻을 모아 건립된 마을이다. 프랑스 틱낫한의 플럼 빌리지, 인도 오르빌 마을, 조화로운 삶의 저자인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가 세운 미국 ‘굿 라이프 센터’의 설립, 운영 방식과 맥을 같이하며 문화와 예술 치유를 경험하는 마음치유센터를 지향한다.2025년 6월 ‘옹달샘미술관’을 개관, 기존 공간 콘텐츠에 예술 치유의 힘을 보탰다. 지난해 11월11일에는 ‘숲속작은도서관’도 개관했다.손재철 기자 son@kyunghyang.com
꿈을 잃어버린 채, 혹은 팍팍한 현실에 안주한 채로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꿈 전도사, 꿈의 산파라는 공통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을 만났다. 취재_김민주 기자 사진_이민희(studio lamp) 촬영 협조_깊은산속 옹달샘(1644-8421, 043-723-2033)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기자는 볕이 좋은 가을날,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선생이 충북 충주에 지은 명상 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으로 향했다. 깊게 숨을 들이쉬자, 매캐한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청량하고 무결한 공기가 몸속으로 쑥 들어와 절로 정화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책 몇 권만 달랑 챙겨 들고 와 종일 산책과 독서만 하다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오늘 이곳에선 조금 특별한 만남이 준비되어 있었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등을 쓴 김수영이 ‘아침편지’로 유명한 ‘꿈 아저씨’ 고도원 선생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 명상 센터 내에서도 제법 고즈넉한 자리에 위치한 선생의 서재에서 첫 인사를 나눈 두 사람. 보는 이들을 무장해제시켜버리는 선생의 넉넉한 미소 덕에, 첫 만남의 어색함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버렸고 온기만이 감돌았다. 미디어나 책 등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고 마음으로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넸다는 신?구 멘토는 상처 받은 이들의 영혼을 토닥토닥 다독이듯, 메마른 일상에 희망의 물길을 터주듯, 서로를 향해 꽃처럼 향기로운 말들을 주고받았다 고도원 선생은 300만 명의 회원에게 이메일로 매일 아침, 위로와 희망의 비타민을 전하고 있어요. 수영씨는 꿈 멘토를 자처하며 누구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독려하고 있지요. 사람들에게 열심히 꿈을 심어주는 두 힐러가 만났네요. 김수영_저는 혼자 꿈을 이루면서 다니고요. 선생님이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영감을 주고 계시죠. 사실 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죠. 마더 테레사가 되기보다는 안젤리나 졸리가 되고 싶어요(웃음). 제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이루면서, 타인에게 무한한 용기와 영향을 주는 인물 말이죠. 그러려면 일단 제 내면을 채우고 제 안에서 넘쳐날 때 고도원 선생님처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고도원_내가 수영 님(선생은 대화 내내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녀를 수영 님이라 불렀다)의 활동을 눈 여겨보고 있었는데, 아주 잘하고 있어요. 우선 자기 자신을 채워야 에너지가 모아지거든요. 나 또한 많은 활동을 하지만 늘 사색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을 확보하죠. 그나저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데, TV를 보니까 수영님도 그러대요. 우리한텐 공통된 DNA가 흐르는 것 같아요(웃음).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그 꿈을 말하라 그런데 두 분은 왜 타인의 꿈을 묻고 다니게 된 것인가요? 질문을 받는 이들 입장에선 놀라울 것 같아요. 남에게 내 꿈을 말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물어보는 이도 딱히 없고요. 고도원_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 담당 비서관으로 5년을 보냈죠.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죠. 몸에 마비가 오고 고개가 안 돌아갈 지경이었으니까요. 터지기 일보 직전인 뇌에 바늘구멍을 낸 게 바로 ‘아침편지’였어요. 제가 감흥을 받았던 책의 한 구절과 감상을 짧게 적으면서 제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었었고, 이를 이메일로 지인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이 현재는 300만 명까지 늘어나는 기적을 만들었죠. 그러면서 제 안에 꿈이 생겨났어요. 몽골에서 말타기, ‘깊은산속 옹달샘’ 같은 힐링 센터 만들기 등 12가지 정도가 됐는데, 당시에 제가 꿈을 말하면 다들 이죽거리고 조롱을 했죠. 현실 가능성이 없게 들렸나 봐요. 그래도 난 그걸 계속 말했고 정말로 하나씩 다 이뤄가고 있어요. 말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늘 꿈을 물어보게 돼요. 꿈을 물어보면 절반 이상은 “없어요” “몰라요” 그러면서 겸연쩍어하고 당황해하죠. 하지만 “네가 되고 싶었던 것 없어?” “어릴 때 꿈은 뭐였어?”라고 두세번 물어보면 대답이 달라져요. 요즘 많은 사람들은 꿈을 잃은 채 그냥 남과 경쟁하고 분별 없이 질주하잖아요. 하지만 전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보라고 말하죠.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죠. 우선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말해야 하고, 기록해야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한다는 것이죠. 김수영_저 또한 꿈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자신의 꿈을 찾고 이를 펼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늘 질문을 해요. 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암 진단을 받고서(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완치되었다) 너무 충격이 커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이니 하고 싶을 걸 하면서 살자’ 했는데 그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당시 73개의 꿈을 써내려가면서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죠. 남들이 보기엔 허무맹랑할지라도 그 꿈을 늘 말하고 도전했어요. 그래서 해외에서 커리어도 쌓았고, 부모님께 집도 사드렸고, 인도 발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고, 킬리만자로에도 올랐잖아요. 꿈을 상상하는 사람의 하루는 너무도 벅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기 시작한 거예요. 처음엔 거부 반응을 보이던 이들도 진득하니 물어보면 나중에 표정이 달라져요. 자기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물어봐줘서 고맙다” “당신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라고 말해요. 저는 일단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10년 후엔 뭐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라고 3가지를 물어봐요. 현재, 미래, 미래로 향하는 중간의 자신을 모두 짚어볼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이제는‘꿈너머꿈’을 품어야 한다 두 분 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대중을 향한 치유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게 되었죠. 고도원_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저는 항상 ‘꿈너머꿈’을 말해요. 꿈의 방향이 1차적으로는 자기중심이었다가 이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백만장자를 꿈꾸고, 의사가 되어서 나 혼자 호의호식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꿈이잖아 요.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 더러는 그게 재앙이 되기도 하죠. 그런데 백만장자가 되어서 학교를 세우고, 의사가 되어서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으로 바뀌면, 그 꿈은 위대함과 품격을 갖추게 되죠. 전 바로 이런 지점을 주창하고 지향해요. 제가 ‘깊은산속 옹달샘’이라는 명상센터를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죠. 여기는 명상 치유 공간이기도 하지만 꿈의 징검다리예요.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변화의 시작을 갖게 하는 곳. 바로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거든요. 김수영_선생님은 완전 제 미래의 모습이에요(웃음). 저는 아직까지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꿈도 참 많아요.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거나 전문가급 사진작가가 되거나 하는 것들요. 제 삶이 이타적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근데 궁극적으로 제가 바라 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제가 영감을 주는 일이에요. 왜냐면 제가 그렇게 해서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폭주족에 가출도 일삼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제가 골든벨을 울리고, 대학을 가고, 세계를 향해 뻗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힘든 건 맞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다 같이 성장하고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인 거죠. 고도원_본인은 이타적이 아니라 하지만 사실은 한 가지 꿈이 아니라 복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타적이에요. ‘나도 김수영처럼 도전을 하면서 살아봐야지’라는 생각을 심어주며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있잖아요. 근데 꿈과 ‘꿈너머꿈’을 가진 사람들은 늘 체력 관리를 잘해야만 해요. 정신없이 내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맥이 풀려버리거든요. 여러 사람의 꿈을 이뤄주는 멘토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멈추지 않고 계속 전력을 다해서 위로 솟구쳐야만 해요. 그때 개인적으로 외로움도 느끼게 될 것이고, 예상치 못한 장벽과도 맞닥뜨리게 될 거예요. 하지만 젊으니까,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수영_제가 강연회를 할 때, 저를 만나고 싶어서 지방에서 서울로 오셨는데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사인을 못해드려 저한테 상처를 받았다, 이용을 당한 것 같다는 식의 메일을 받으면 많이 속상하고 힘이 빠지기도 해요. 그런 게 아닌데 말이죠. 고도원_지금은 젊으니까 사람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원하는 대로 나가요. 지금 나이는 충분히 모든 것을 되돌릴 수도, 다시 쌓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제부터 나를 향한 모든 상처를 다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마구 저질러요. 김수영_걱정 마세요. 들이대고 다시 일어나는 건 제 주특기예요(웃음). 고도원_나는 이 진리를 인생의 후반에 알았는데, 수영 님은 전반에 알았으니 나보다 한발 앞섰네. 수영 님은 앞으로 더 중요한 인물이 될 거예요. 난 그렇게 믿어요. 모든 실패와 굴곡은 결국 다 선물이다 그런데 항상 사람들이 나를 향해 힘든 것, 괴로운 것들을 이야기하잖아요. 어느 순간 ‘고통 받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은 안 드나요? 고도원_정말 많은 사람이 ‘깊은산속 옹달샘’에 힐링을 받으러 와요. 요즘 사회생활하기가 힘들다보니 다들 상처를 열 꾸러미씩 어깨에 짊어지고 살거든요. 겉으로 건강해 보이는 이들도 내면엔 다 트라우마가 있어요. 솔직히 그걸 쏟아내기 시작하면 때론 나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을 어떤 기운으로든 회복시켜 보내야 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명상이나 기도로 제가 에너지를 채우지 않으면 어두운 주파수 하나에 그냥 밀려버려요. 처음엔 저도 굉장히 휘청거렸어요. 힐러가 된 이상 내가 고요해지는 법을 훈련해야 할 거예요. 눈물도 많이 흘리게 될 거고요. 김수영_처음에 책을 내고 이름이 알려졌을 땐 제게 연락이 오면 일일이 답장도 해주고 취업까지 직접 시켜주기도 했어요. 그들의 고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요. 근데 제가 일일이 다 개입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고, 결국 자기 인생은 스스 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냥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꿈의 파노라마’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전 세계 사람들의 꿈을 인터뷰해봤죠. 다른 사람의 꿈을 통해 자기를 돌 아보라는 취지예요. 민족 간의 분쟁 때문에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와 제3국을 떠돌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 유명 가수였지만 병으로 목소리를 잃은 사람, 잘나가는 회사에 다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심플한 삶을 사는 사람 등등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꿈과 인생을 통해 해답도 찾고, 갑자기 내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변하기도 하니까요. 수영씨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던진다는 그 질문. 이번엔 제가 해볼게요. 10년 후 두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고도원_계속 꿈을 꾸는 꿈 아저씨로 살고 싶어요. ‘꿈너머꿈’을 갖다 보면 할 일이 점점 늘어나거든요. 이메일 하나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제가 2003년 9월 아침편지에 ‘제가 꾸는 꿈의 종합 편입니다. 산 좋고 물 맑은 대한민국 어느 깊은 산속 에 세계적인 명상센터를만드는 것이죠’라고 썼는데 지금 이렇게 이루어졌잖아요. 국가나 기업의 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십시일반 후원금을 받아서 이걸 이룬 거예요. 믿어지세요? 이게 바로 꿈의 힘입니다. 앞으로는 어린 세대부터 노년까지 모두에게 힘을 주는 프로그램을 원활히 진행하고 싶어요. 향기가 나는 아침편지(공학도인 아들이 이뤄줄 거라 믿는단다)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김수영_제 커리어도 쌓아가겠지만,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오프라 윈프리처럼 방송도 하고 재단도 만들어서 아이들의 꿈을 지원하고 싶고요. 서로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없나요? 고도원_나는 학교에서 제적도 당해보고, 콩밥도 먹고, 사기도 당하고 젊은 시절에 10년간을 완전한 아웃사이더로 살았어요.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본 사람이죠. 근데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좋은 경험이 되더라고요. 수영 님도 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길 바 라요. 상처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수영 님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힐링이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너무 유명해지는 것도 경계하고요. 인기란 언제든 떨어지는 법이니까 말이죠. 김수영_지금처럼 열심히 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기댈 수 있는,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멘토가 되어주세요. 고도원_얼마든지요. 아, 그리고 연애도 많이 해봐야 해요. 딱 100명의 남자와 사귀어봐요. 우리 같은 사람은 사랑을 알아야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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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TV, 정운갑의 집중분석 - 아침편지 고도원 이사장 ※ 유투브(Youtube)로 동영상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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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 [김윤덕의 사람人] 11년째 '아침편지' 배달하는 남자, 고도원 - 앞만 보고 뛰는 사람들 당신만의 북극성을 띄우세요 2012.06.22 16:57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쉼'이 필요한 시대 청와대서 5년 일하니 고개가 안 돌아가… 마라톤으로 몸 고친 뒤 마음 고치려 시작 기름 떨어지고 엔진에 불난 것 같은 사람들 들여다보면 마음에 통증 하나씩 있더라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2001년 8월 1일 '희망이란' 제목으로 배달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1호는 우리 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메일로 편지 쓰기'라는 소박한 행위를 넘어 '이메일 마케팅' 시대를 열었는가 하면, 요즘 최고의 화두로 떠오른 '힐링(치유)'의 물꼬를 틔웠다. 아류가 무성한데 '원조'의 힘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매일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사람이 300만명을 넘어섰다. 회원들 기부금으로 충주 7만여평 숲 속에 건립한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은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이 붐빈다. 100억원대 매출의 건강식품 쇼핑몰까지 운영할 만큼 몸집이 커졌다. 그래서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낙엽송 쭉쭉 뻗은 숲 속에 그림처럼 들어앉은 '깊은산속옹달샘'에서 고도원(60)을 만났다. 그는 얼마 전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해냄)는 신작을 펴냈다. ◇初心 잃지 않으려 기도한다 ―'아침편지' 회원이 300만명을 넘었다. "숫자는 내려놓은 지 오래다. 어떤 사람은 숫자를 돈으로 보고, 표로도 보지만 내게 숫자와 물량은 큰 의미가 없다. 나의 편지가 누군가의 가슴에 꽂혀서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TV 프로그램에다 여행 상품까지 힐링이 유행이다. 마음 산업 시대다. "예견된 일이었다. 속도의 부작용, 앞만 보고 달리다가 고장이 나고 기름이 떨어지고 엔진에 불이 났다.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내 문제, 내 가족의 문제로 닥친 것이다. 명상센터에 오는 사람들이 겉보기엔 건강해 보여도 만나서 속속들이 이야기해보면 저마다 마음의 통증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더라. 쉼, 잠깐 멈춤이 필요한 시대다." ―11년이면 시들해질 만도 한데, '아침편지'의 위력은 왜 지속되는 걸까. "매일매일 편지를 배달하는 일이 보통 일인가(웃음). 중간중간 슬럼프도 있었다. 이런 글을 누가 읽고 감동할까 하는 두려움이 내게도 있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이어가니 진정성을 봐주시는 것 같다. 믿을 만하다 여기는 것 같다." ―'깊은산속옹달샘'은 아침편지 회원들의 기부금을 통해 건립됐다고 하더라. "명상센터는 아침편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꿈이었고, 일찌감치 회원들과 그 꿈을 공유했다. 우선은 내 집을 팔아 종자돈을 마련했고 1000원부터 거액의 기부금까지 다양한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다. 이게 누군가의 웅변과 선동을 통해 되는 일이 아니다. 진심으로 뜻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몸집이 커지니 '아침편지'의 초심이 흔들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데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가 초심을 지키는 것. 둘이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초심을 잃어도 소멸하지만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도 소멸한다. 명상센터만 해도 직원 70명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거미줄이 생기니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변해서는 안 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분별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이를테면 은행 돈은 1원도 쓰지 않는다. 헛돈을 바라지 않고 국가 예산도 지원받지 않는다. 여유 있으면 성큼성큼 가고, 여유가 없으면 멈춰 서서 기다린다."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온라인 쇼핑몰 '꽃피는 아침마을'은 100억원대 매출 규모라더라. "놀랍게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저게 나중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든다. 유통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니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분명한 건, 그 결과물이 개인의 부로 가지 않고 재단으로 간다는 것이다. 얼마의 수익이 생겨도 다 공적인 재산이다. 수익의 100%를 재투자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든다."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나. "꿈은 무궁무진하다(웃음). 플럼빌리지 같은 명상 마을을 만드는 꿈, 아침편지를 영어와 중국어·일본어로도 써서 전 세계로 배달하는 꿈까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슬프고 힘든 일. 분명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마운 벗이기도 합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아니면 끝내 모르고 말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으니까요'('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중에서). 고도원의 글이 널리 읽히는 이유는 간결하고 감성적인 문장으로 사람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방송인 이금희는 "동서고금 현인들의 지당하신 말씀들뿐이었다면 아침편지가 큰 공감대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꿈보다 나은 해몽처럼 장기판 훈수꾼의 한마디처럼 짤막하게 덧붙이는 고도원의 글 몇 줄이야말로 아침편지의 참맛"이라고 했다. 꿈, 행복, 희망 같은 추상 개념들을 매일 새로운 맛으로 요리해내는 '노하우'는 고도원 자신의 인생 역정, 그리고 그의 독특한 독서력(讀書歷)과 관련 있었다. ―아침편지 1호에 루쉰의 글을 띄웠다. "내 삶이 가장 힘들 때, 경제적으로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이정표가 되어준 글이다. 루쉰의 '고향'은 원래 아버지의 책이다. 절망과 혼돈의 시간이 오면 아버지의 책을 꺼내 읽었다. 글 '희망이란'도 아버지가 먼저 밑줄 그어놓은 문장이었다." ―선친이 시골 교회 목사였다. "평생을 사례비 없이 교회 개척만 하신 분이라 우리 7남매의 유년기는 굉장히 궁핍했다. 가난 속에서도 아버지는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도 책을 강제로 안겨주신 뒤 밑줄 그어가며 읽게 하셨다. 온화한 성품이신데 책을 잃지 않으면 종아리를 때리셨다." ―그때부터 고도원의 책 읽기가 시작됐나 보다. "중2가 극심한 반항기였다. 교회에 사는 게 싫고 목사의 아들인 게 싫고 배고픈 게 싫더라. 그래도 책은 좋았다. 만화, 음란물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지. 당시의 마광수가 방인근이었다는 걸 아나? '벌레 먹은 장미' '밤이 그리워' 같은 음란물을 썼던(웃음). 그 덕에 내가 속독법을 터득했다. 30분에 한 권씩 읽어야 하니까(웃음). 어릴 때부터 써온 독서 카드가 아침편지 쓰는 데 큰 자산이 되었다. 2001년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이미 5~6년은 쓰고도 남을 목록이 있었다(웃음)."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2학년까지는 우등 장학생이었다. 그런데 '연세춘추' 편집국장을 하면서 필화 사건을 일으켰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제적되고 강제 징집되면서 인생이 쫑났다. 운동권 출신이란 딱지 때문에 도통 취업이 안 되더라. 포장마차도 해보고 문방구 하다 사기도 당하고 웨딩드레스 사업하다 망하고. 우연히 잡지 '뿌리깊은나무'의 기자가 되면서 글쟁이 길로 들어섰다. 다시 중앙일보로 가서 15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나름대로 특종 기자였다(웃음)." ―그러다 청와대로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 담당 비서관으로 5년을 일했다. "평민당 출입할 때 DJ를 처음 만났다. 내 인생을 바꾼 분 중 한 사람이다. 한 번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라는 책에 대해 말씀하시더라. 나는 그 책을 아버지한테 매 맞으면서 중학교 때 처음 읽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와 함께 내 인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영감을 받아 15번이나 읽은 터라 토인비 책을 암송하다시피 했는데 그걸 DJ가 좋게 보시고 내게 관심을 보이셨다." ―김대중 대통령이 무척 꼼꼼한 성격이었다더라. "하늘을 찔렀지(웃음). 철두철미하고 분석적이고 용의주도하고. 그분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나 철학, 표현 방식을 연구해서 내 것처럼 토해내야 하는 연설문을 5년간 쓰면서 내 인생의 멘토로 모시게 됐다. 연설문은 서생(선비)적 판단과 상인적 기질로 써야 한다고 충고해주신 분이 DJ다." ◇당신만의 북극성을 띄워라 ―'아침편지' 1호를 쓴 게 청와대 재직 시절이었다. "대통령 연설문 쓰는 게 글쟁이 최고의 관직이라는 둥, 고스트 라이터라는 둥 부러움을 받았지만 결국은 피 빨아먹는 직업이더라(웃음). 5년 동안 딱 사흘 쉬면서 일하다 보니 몸에 마비가 왔다. 고개가 안 돌아가더라. 몸은 마라톤으로 회복했지만 머리를 맑게 해줄 뭔가가 필요해서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마침 이메일이 확산되던 시점이라, 아는 사람 몇몇에게 띄운 글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거다." ―처음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정치를 하려는 거다, 돈을 벌 요량이다 하면서. "청와대 안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그래도 썼다. 그걸 쓰지 않으면 내가 죽을 판이니. 아침편지는 누구보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쓴 글이다." ―책에 보니 '청와대는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들이 그대로 표출되는 장'이라고 썼더라. "마흔아홉 가지 은혜를 입고도 한 가지 일 때문에 등에 비수를 꽂는 사람이 허다하더라. 정치적 욕망을 꺾었다. 휴식할 겸 동유럽을 한 달간 여행하면서 인생의 밑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때 많은 수도원과 명상센터를 보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명상센터까지 운영할 이유가 있었을까. "아침편지를 몇 달 배달하면서 이 일이 단지 글재주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절감했다. 나 자신이 명상적 삶,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였다. 그날부터 명상공부를 시작했다. 잠자기 전 샤워를 하듯 마음의 샤워를 하는 방법에 대해. 종교적 해법과는 다르다. 종교는 자신의 문제를 절대자에게 맡기고 간구하는 것이다. 명상은 자기 안에서 찾는 거다. 자기 안의 신(神)을 통해서 찾는 것이다." ―'아침편지'에 인용하는 문장은 어떤 기준을 갖고 선택하나? "내 삶과 관련된 문장들이다. 그날 나를 성찰하게 한 글, 바로잡아준 글. 그게 다른 사람들 가슴에도 꽂히더라. 미사여구 화려한 명문만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 ―오늘의 20대에게 '아침편지'를 준다면. "꿈꿔라. 너만의 내비게이션을, 북극성을 띄워라. 방향만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달한다." [Why] [김윤덕의 사람人] 11년째 '아침편지' 배달하는 ... ▲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이 자리한 충주의 숲에는 낙엽송이 우거져 있다. 고도원은 명상의 한 방법으로 냉온욕을 권했다. “몸의 방향을 정반대로 바꿔보세요.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방 안에서 방 밖으로, 정신노동에서 육체노동으로!”/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ㅣ
꿈이 그대를 춤추게하라 (소개영상) ※ HD에 파란불이 들어오게 클릭하시고 전체화면으로 보시면, 좋은 화질로 볼 수 있습니다. ※ 유투브(Youtube)로 동영상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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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즐거운 책읽기(고도원의 '인생의 책'편)
OBS TV '차인태의 명불허전'(고도원편)
[리더스 콘서트] "신문은 희망의 노트북… 읽기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져" - 조선일보(2011년 9월8일자) 종합 A8면 - - 조선일보(9월8일자) 문화'리더스콘서트'란 기사글(홈페이지) - [리더스 콘서트] "신문은 희망의 노트북... 읽기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져" '마음의 비타민' 아침편지, 260만 독자에게 매일 배달하는 고도원씨 2011년 09월 8일 (목) 03:10:00 지면보기 8면 대전 신용관 기자 qq@chosun.com "매우 궁핍하게 자란 저는 아침마다 아버님의 심부름을 했습니다. 엄했던 아버님은 '도원아, 김 집사님 댁에 가서 다 읽은 신문 좀 빌려 오너라'라고 명하셨지요. 뭐 대단한 내용이 있기에 저러시나 싶어 저도 신문을 따라 읽기 시작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과 조선일보가 함께 마련한 신문 읽기 순회 특강 '리더스 콘서트'의 하반기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고도원(59)씨는 7일 읽기를 통한 꿈의 성취에 대한 강연을 차분하게 이어갔다. 이날 대전 한남대 학생회관 소극장을 찾은 청중들은 100여분간 진지하게 고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씨는 매일 260만 독자들에게 '마음의 비타민' 아침편지를 배달하는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일간지 기자, 청와대 비서실 연설담당 비서관 등을 거쳐 2001년 이후 책에서 읽은 인상 깊은 글귀를 몇 줄 적고 그 아래 단상을 붙인 '아침 편지'를 인터넷으로 보내고 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꿈너머꿈'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읽기로 찾은 꿈너머꿈'이라는 주제로 고씨는 자신의 인생행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평생 글쟁이 생활을 했고, 글 제법 읽었다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 살아왔으나 아직 나보다 독서카드를 많이 만든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부터 부친에게 매 맞아가며 책을 읽었다는 그는 1971년 연세대 입학 후 교내 신문 '연세 춘추' 편집장까지 했으나 제3공화국 긴급조치 9호에 걸려 강제징집을 당했다. 제대 후 '전기밥솥 하나 들고' 결혼을 했으나 학생운동 경력 탓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서울 중곡동에 문방구를 열었을 때는 복덕방에 사기를 당해 가진 돈을 모두 날렸다. 하늘이 노래지고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후 취직한 잡지 '뿌리 깊은 나무'마저도 1980년 강제폐간당했다."그 10년간 절망의 계곡을 헤맬 때도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 신문이었습니다.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으면 '이 썩을 놈의 세상'이라며 욕부터 나왔지만 그 와중에도 가끔 내게 빛을 주는 기사들이 있었지요. 그 기사를 스크랩해서 희망의 노트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후 일간지에 특채돼 15년간 사회부, 정치부를 거쳤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5년 동안 딱 사흘 쉬었을 정도로 열심히 했으나 어느 날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낀 뒤" 2001년 8월부터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첫 편지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 '희망'의 유사성을 얘기한 루쉰의 '고향'에서 따온 글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편지를 이메일로 받아보는 독자는 10년 만에 260만명까지 늘었다. 책과 신문을 읽으며 스크랩해 놓은 노트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읽기는 사색의 기본입니다. 신문·잡지 같은 매체는 현실의 반영이지요. 매일 물을 마시고 밥을 먹지 않으면 육체가 상하듯, 읽기를 멈추면 정신이 허물어집니다." 그는 또 자신의 학창시절 별명이 '못생긴 남자', 즉 '못남'이었다면서, "외모보다 아름다운 것은 내면의 아름다움인데,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삶,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들여다보고 내 영혼으로,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글이나 뉴스를 읽고 내 마음이 움직인다면 내가 아름다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엔 분당에서 온 한 주부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문을 가깝게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고씨는 "나의 아버지가 넋을 잃고 신문을 보던 모습이 아직도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면서 "강요하면 아이들은 안 읽는다. 부모가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따라오게 되고, 신문에 실린 주제를 놓고 아이들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덧붙여 고씨는 "비판적으로 읽기 전에 우선 각 신문이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남대 학생인 이중우(경영정보학과 1년)씨는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기본기가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읽기가 근간이라는 내용이 크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이성준)과 조선일보가 함께 마련한 신문 읽기 순회 특강 ‘리더스 콘서트’의 하반기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선 고도원(59)씨는 7일 읽기를 통한 꿈의 성취에 대한 강연을 차분하게 이어갔다. 이날 대전 한남대 학생회관 소극장을 찾은 청중들은 100여분간 진지하게 이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260만 아침편지가족이 만들어가는 꿈너머 꿈 앙트(entrepreneur) 2011/09/08 17:38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2001년 8. 1. 아침을 깨우는 이메일 한 통이 전해졌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오늘, 260만 명의 아침편지 가족들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 보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메일 한 통을 보냈을 뿐인데,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나누기 시작했고, 그렇게 쌓인 이메일 한 통은 문화재단으로, 명상센터로 진화되어 갔던 것이다. 놀랍게도,이 모든 일의 시작은 고도원 이사장이 10년 전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이었다. 좌충우돌, 변화무쌍 인생 소년은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 잦은 이사를 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유독 책읽기를 강조하셨다. 그 덕에 소년은 어릴 적부터 밑줄 그어가며 수많은 책을 읽어 내려갔고, 책읽기는 글쓰기로 이어졌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몸에 베인 책 읽기와 글쓰기는 그의 인생2막에서 더 큰 꿈으로 피어나는 동력을 제공했다. 목회자의 삶을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청년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학학보사에서 일하던 중 필화사건으로 수배되어 구속된 후 강제징집 당하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구속, 징집과정을 겪게 되면서 청년의 목회의 꿈은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평생을 품어온 꿈을 떠나보내야 했던 상황은 청년 개인이나, 가족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목회의 꿈을 떠나 보낸 후 청년이 마주하게 된 것은 생활고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청년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포장마차를 끌고 거리에 나서기도,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그는 [뿌리깊은나무]와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게 되었고, 김대중대통령 시절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일했다. 아침을 깨우는 이메일 한 통 언론인에서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화려하게 비치는 세속적 시선과는 달리 그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갔다. 하루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청와대 생활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고, 정치권력을 향한 인간군상의 욕망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상황도 버거웠다. 그의 몸은 돌덩이마냥 굳어갔고, 신경은 예민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좋은 약을 가져다 먹고, 명의를 찾아 다녀 보아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결국, 스스로가 병든 몸을 달래고, 치유시켜 낼 방법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느날, ‘한 줄의 문장이 한 사람을 살리는 치유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문구를 찾아 메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모아둔 문장들을 2001. 8. 1. 부터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놀랍게도,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변화는 그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아침편지에 담아낼 문구를 고르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본인 스스로가 치유되었을 뿐 아니라, 아침편지 덕에 울고, 웃고, 공감하는 이들을 벗하게 되면서 이상한 힘이 생겨났다. 물론, “청와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사적인 메일을 보내는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라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희망과 치유의 문장을 공유하고 싶었던 그의 진정성과 끝없이 꿈꾸는 열정이 있었기에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함께 꿈꾸는 아침편지 커뮤니티 희망의 문구를 담아 실어 나르는 아침편지는 친구에게서, 또 다른 친구에게로 전해졌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그 두 명이 또 다시 다른 이들에게 아침편지를 전하며 자가발전을 하자 아침편지 가족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그가 만들어가는 아침편지는 생활인의 마음 속 깊이 담겨있던 선하고도 여린 마음을 끌어내는 이상한 공감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침편지가족이 늘어가면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아침편지가족들이 직접 강사로 나서는 문화강좌가 만들어졌고, 함께 달리며 심신을 달래는 마라톤모임이 생겨났고, 여행을 통해 명상하는 명상여행을 떠났고, 밑줄 그어가며 읽은 책을 함께 나누며 서로가 꾸는 꿈을 단련시켜 나갔다. 고 이사장은 유독 꿈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꿈이 있으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카이스트 대학원생들과의 만남 이후부터는 “꿈 너머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잘나가는 과학자”나 ‘백만장자”의 꿈은 있을지언정,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고 난 이후의 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공부하고, 배워서는 우리의 미래가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함께 꾸는 꿈"으로 만들어낸 "깊은산속옹달샘" 아침편지 가족들과 함께 고이사장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비책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생활명상이다. 생활명상은 아침편지를 통해 전해지는 문구를 음미하는 것에서부터, 음미한 문구를 건강한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 이사장은 오랜 경험을 통해 습득한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을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에 개설해 아침편지가족들과 함께 다듬고, 운영하며 아침편지만의 콘텐츠를 쌓아가고있다. 깊은산속옹달샘은 고이사장이 아침편지가족들과 함께 자연의 품 안에서 쉼과 치유를 얻을 수 있는 명상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에 대한 꿈으로 시작되었고, 2003년부터 8년여에 걸쳐 부지구입과 골격세우기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충주시 노은면 문성리에 터를 두고 있는 아침편지 명상센터, 깊은산속옹달샘은 고이사장이 자택을 팔아 마련한 돈과 수많은 아침편지 가족들이 모금해준 모금으로 건축되었다.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명상센터의 건립에, 수많은 사람들의 모금과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아침편지를 통해 진정한 마음을 나누었던 고이사장에 대한 아침편지 가족의 신뢰가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깊은산속옹달샘에서는 자연이 주는 치유력과 함께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의 체험은 물론, 건강한 밥상까지 경험할 수 있어 몸과 마음을 통째로 비우고, 채울 수 있는 안식처로 자리잡고 있다. 고도원 이사장이 전하는 리더십, 팔로워십, 서번트십 리더십 아침편지재단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갈 내일은 고 이사장 곁에서 함께 꿈꿔온 아침지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 이사장은 처음부터 함께 꿈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드물기에, 그들의 품성과 잠재력을 보고 같은 꿈을 꾸며 나아가도록 길러내는 것이 리더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고 이사장은 아침지기들의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을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눈여겨 본 후, 이를 이뤄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다. 물론, 시간을 견뎌낸 궁극의 믿음이 리더십을 받쳐주는 힘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팔로워십 아침지기들과 함께 꿈꾸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고 이사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이자 멘티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단 한 개도 없다. 이끄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따르는 법을 새겨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서번트십 아침편지가 만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에 들어서면, 아침지기들의 몸에 배인 서번트십을 대번에 눈치채게 된다. 서로 존중하고 따르는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공존이 언제, 어디서든 아침편지가족들을 향한 섬김으로 체화된 것이다
New Document - 중부매일신문(6월10일자) 8면 - - 중부매일신문(6월10일자) 기사글(홈페이지) - 자연을 벗삼아 맑은 영혼의 꿈을 찾는다… 주말여행. 아침편지 명상센터 충주 '깊은산속 옹달샘' 2011년 06월 9일 (목) 20:54:35 지면보기 8면 정구철 기자 gcjung@jbnews.com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IC를 빠져 나와 음성군 감곡 방면으로 5분 정도 가다 보면 왼편으로 '깊은산속 옹달샘'이라는 연두색의 예쁘장한 이정표가 눈에 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2㎞정도 들어가다 보면 숲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깊은산속 옹달샘'을 만날 수 있다. '깊은산속 옹달샘'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아침편지문화재단'(이사장 고도원)이 운영하는 명상센터다. 이 곳에 들어서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원초적인 자연의 기운을 만날 수 있다. 이 숲 속에서는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을 벗 삼아 비우고 채우며 일상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자연스레 마음이 가벼워지고 온 몸이 맑은 기운으로 가득차게 된다. 꿈이 없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꿈을 만들 수 있고 꿈을 가진 사람들은 이 곳에서 꿈을 더욱 키울 수 있다. ◆꿈을 현실로 만든 기적의 보금자리 지난 해 10월 9일 충주시 노은면 문성휴양림 인근에 개원한 '깊은산속 옹달샘'은 '아침편지문화재단'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야심차게 문을 연 곳이다. '아침편지문화재단'은 중앙일보 기자와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낸 고도원(59)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독자들에게 아침편지를 배달해 온 고도원씨가 '명상센터' 건립을 꿈꾸며 지난 2003년 9월 4일 아침편지를 통해 '깊은산속 옹달샘 꿈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7년만에 개원했다. 한 사람이 꿔 왔던 아름다운 꿈이 많은 사람들의 꿈으로 발전돼 꿈이 아닌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깊은산속 옹달샘' 건립 예산은 모두 회원들의 후원으로만 마련됐다. 적게는 1천원에서 많게는 1억원에 이르기까지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금액이 모여져 지금까지 무려 66억원 정도가 투입됐다. 말 그대로 꿈이 이뤄졌고 기적을 이루게 됐다. 지난해 '깊은산속 옹달샘'이 개원되고 아침편지를 통해 256만명의 아침편지 회원들에게 소개되면서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매월 2천여명씩 이곳을 찾고 있으며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방문객이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기업체 등으로부터 단체참여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총 20만㎡가 넘는 '깊은산속 옹달샘'에는 숲 속 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지은 식당과 카페, 숙소 등 13개의 각종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재 건축 중인 '미완의 명상의 집'을 비롯해 '웰컴센터', '도서관이 있는 만남의 집', '식당과 옹달샘카페가 있는 나눔의 집', '꿈 사다리집', '사랑채' 등 각 건물마다 예쁜 이름을 붙였다. 특히 기부자들의 이름을 따 '허순영님의 하얀 하늘집', '최재홍님의 네잎클로버집', '김정국님의 동그라미집'으로 이름지었고 고도원 이사장은 '고도원님의 춘하추동'으로 불리는 공간에서 매일 회원들에게 배달하는 아침편지를 집필하고 있다. 특히 오는 17일 문을 열 예정인 '꿈꾸는 다락방'에는 26개의 방과 함께 샤워실과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어 단체방문객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고도원 이사장은 최근 '금수강산 수목원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계획하고 6천 그루의 나무와 꽃을 심었다. 계절에 따라 꽃과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풍광을 보일 수 있도록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나무와 꽃을 심었다. ◆다양한 명상프로그램으로 마음의 안식 찾아 '깊은산속 옹달샘'은 각종 명상프로그램을 마련, 이를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로 찌든 사람들에게 안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곳에서 실시하는 명상프로그램으로는 '옹달샘 걷기명상', '옹달샘 하루명상', '잠깐멈춤', '비채명상' 등과 함께 연령대 별 부부들을 위한 '꿈꾸는 부부학교', '중년부학교', '금빛 부부학교'가 있다. 또 '옹달샘 명상다이어트'와 '단식명상', '화려한 싱글학교', '어머니 학교', '아버지 학교', '꿈너머 꿈 청년학교', '자아인 훈련과정'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각자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일정별로는 당일 프로그램에서 6박7일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1박2일 프로그램부터는 생태건축으로 지어진 숙소에서 묵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각종 명상프로그램에는 고도원 이사장이 직접 강사로 나서 '꿈너머 꿈'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실시한다.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잠시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마음의 북극성'을 띄우고 환한 얼굴로 돌아가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걷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면 평소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와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된다. 이같은 명상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안식과 삶의 방향을 찾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이곳을 찾아 명상프로그램을 체험하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삼게된 사람들도 여러 명이다.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건축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진희(40·여) 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웰컴센터 설계에 참여하면서 "20년 후에는 훌륭한 건축가가 되겠다"는 자신만의 꿈을 갖게됐다. 박씨의 꿈을 알게된 고도원 이사장은 다음 날 바로 박씨를 건축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이처럼 이 곳에는 꿈을 꾸는 50명의 직원들이 행복을 함께 나누며 근무하고 있다. ◆꿈을 만드는 징검다리 '깊은산속 옹달샘'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신선한 제철음식을 사용하는 만드는 무공해 음식이다. 음식에 사용하는 소금도 염전에서 천일염을 직접 구입해 항아리에 넣고 1천300℃에서 구워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제천한방바이오엑스포 시 약초를 구입, 부지 내에 심어놓고 매일 점심 메뉴로 약초비빔밥을 제공하고 있다. 아침에는 주로 생식이나 충주사과, 샐러드, 감자, 고구마, 보리빵 같은 음식을 제공하고 저녁에도 소박한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고 있다. 이 곳의 무공해 식단이 알려지면서 가끔 식사만 하러 이 곳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고도원 이사장은 아직도 꿈 너머에 많은 꿈을 꾸고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영간으로 번역, 전세계에 있는 회원들에게 배달해 평생에 한 번 만이라도 '깊은 산 속 옹달샘'을 다녀가도록 할 계획이다. 또 이곳에 국제청소년수련센터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꿈을 이뤄가는 동반자들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깊은산속 옹달샘'이 육체와 정신,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치유센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깊은산속 옹달샘'은 꿈이 없는 사람들이 찾아와 꿈을 만들고, 꿈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더 큰 꿈을 꾸는 인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정구철 / 충주gcjung@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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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줄 아는 사람이 더 큰 성공을 이룹니다 많은 사람들이 ‘멈추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끊기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고,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인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자동차도 기름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고장이 나기 전에 멈춰서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 마냥 달리기만 하면 강제로 서버리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멈추어야 더 큰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고도원, 《잠깐 멈춤》 중에서 한 남자가 있다. 목사 아버지 밑에서 회초리 맞아가며 강제로 ‘밑줄 긋기 독서’를 하며 자란 소년은 연세대 신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공명심이 강했던 남자는 기자가 됐다. 중앙일보 사회부를 거쳐 정치부에서 기자생활을 오래했다. 박학다식한데다 대인관계에 능통하고 사람 속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남달랐던 남자는 청와대로 가 대통령 연설담당 1급 비서관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 연설문을 5년간 담당했다. 힘과 권력이 생겼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마음은 공허하고 몸 여기저기는 굳어갔다. 마음의 쉼터가 필요했다. 남자는 자신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 독서노트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단 편지를 매일 아침 지인들에게 보낸다.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쉽고 짧은 편지. 편지는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고, 10년이 지난 지금 수신인이 218만 명에 달한다. 그는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명상마을을 만드는 것. 남자는 숲속에 오두막 명상센터를 하나 둘 늘려갔고, 아침편지 회원들의 후원으로 명상센터는 점점 자라고 있다. 남자의 꿈은 지금도 자라고 있다. 그 꿈의 종착역은 누구도 모른다. 한 남자가 시작했지만, 꿈을 키우고 실현시키는 것은 218만 명의 회원들이고, 그 회원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쓰는 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10월 충북 충주에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을 개원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이 빽빽한 산속에 자리한 ‘깊은 산속 옹달샘’은 전날 내린 폭설 때문에 더욱 이질적으로 보였다. 인적 없는 숲 속 마을에는 한낮에도 투명한 정적이 흘렀고, 곳곳에는 좁은 보폭의 사람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명상센터 마을에는 옹달샘 카페, 만남의 집, 나눔 의 집, 명상의 집 등이 띄엄띄엄 있고, 뒤편에는 ‘김정국의 동그라미집’ ‘최재홍의 네잎클로버집’ ‘허순영의 하얀 하늘집’ 등 후원자의 이름을 딴 독채들이 있다. 건물들은 통일성이 없는 듯하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내부 곳곳에 있는 책장, 옷장, 식탁, 탁자 등은 모두 나무 느낌을 살려 자체 제작했다. 명상센터 축을 담당한 건축디자이너 최호근 씨는 이곳의 콘셉트를 “인테리어 없는 인테리어”라고 했다. 고도원 이사장은 언덕 위 ‘고도원의 춘하추동’에서 산다. 이곳에서 고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이곳에서 머물며 떠오른 단상을 담은 책 《잠깐 멈춤》을 펴냈다. 집필실 벽면은 책으로 빼곡했다. 책마다 색 띠지가 붙어 있고, 펼치면 어김없이 밑줄이 그어 있다.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세어본 적은 없어요. 하루 세끼 밥을 먹으면서 지금 까지 먹은 끼니를 계산하지 않듯 저에게 독서는 삶이고 운명이에요. 책 좋아하는 아버지를 만나서 책을 많이 읽었고, 여기까지 왔죠. 많이 읽는 날은 하루 열 권도 읽는데, 책마다 속도가 달라요. 최근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같은 책은 이틀 사흘 쫄깃쫄깃 곱씹으면서 읽죠. 요즘은 구보타 시게코의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고 있어요.” 기자와 정치인, 명상센터 이사장. 고 이사장이 걸어온 세 가지 영역의 길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공명심’ 이라는 면에서는 통한다. 하지만 공명심의 종류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정치인은 성공하면 힘과 권력이 생겨요. 그리고 힘과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죠. 하지만 지금은 같은 공명심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달라요. 겉은 멀쩡한데 속은 다친 사람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 눈물 많은 사람들, 맑음과 고요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요. 고요를 지향하다 보면 그 주변도 고요해지죠. 예전에는 펄펄 끓게 하던 일들이 지금은 제 마음을 미동도 시키지 않는 일들이 있어요.” ‘고도원의 아침편지’ 218만 명 회원이 함께 만든 장소 고 이사장은 2001년 8월 ‘희망이란’ 첫 편지로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이메일로 편지를 보낸다. 해외여행 등으로 불가피하게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리마인드 편지를 보낸다. 그가 아침편지를 쓰게 된 것은 그 스스로 숨통이 필요해서였다. 1급 공무원으로 재직 시절, 그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피로와 과로가 쌓여갔고, 몸에서 신호를 보내 왔다. 반신이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한 것. 지금도 그는 오른손이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잠깐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아침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좀 더 적극적인 휴식 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은 그는 동유럽 배낭여행을 떠난다. 아침편지 수신자들에게 동행자 신청을 받았는데, 500명이 신청했고, 그 중 버스 한 대 인원인 41명과 함께 한 달간 동유럽을 다녀왔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 의미 있는 일’의 방향성이 달라진 것. ‘고도원의 아침편지’ 발송 초기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1급 공무원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 “정치하려는 거냐?”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고, 청와대에서 정식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편 지 수신자가 많아질수록, 편지 내용이 쌓일수록 오해가 풀렸고, 나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침편지 회원 수를 보고할 정도로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작고 전 그와 함께 한 점심 식사자리 에서 김대중 전 대통 령은 “고 이사장이 자랑스럽다, 대견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밑에서 정치를 꿈 꾸는데, 당신은 그럴 만한 소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다. 고도원 이사장은 충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전국 어디서나 2~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낙점된 곳이 충주다. 지금의 명상센터 터를 본 순간 “딱 여기다!” 싶어서 둥지를 틀었는데, 풍수지리학자들은 이곳을 “산의 기운이 온화한 명당”이라고 평한다. 명상센터 개원 전 고도원 이사장은 세계 곳곳의 이름난 명상센터를 다니면서 벤치마킹했다. 프랑스에 있는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에서는 종교적 인 색채를 걷어내고 ‘걷기명상’을 취했고, 인도의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는 상업적인 냄새를 버리고 ‘춤 명상’과 명상센터 건물 간의 동선을 배웠다. 인도 동북부에 있는 명상마을 ‘오로빌 마을’에서는 보리수 한 그루만 있던 척박한 대지가 울창한 숲을 이룬 신화적인 기운을 담아왔다. 국내의 아침고요수목원, 허브나라, 천리포 수목원 등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고도원 이사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직접 교류 하면서 그들의 명상을 돕는다. “제가 생각하는 명상의 개념은 멈춤이에요. 길을 가다가, 밥을 먹다가, 말을 하다가 잠깐 멈추고 고요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하던 행위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겁니다. 마음관리를 하지 않으면 공허해집니다. 지금 우 리 사회는 가치의 중심이 육체에서 마음으로 이동하는 중간 지점에 있어요. 점점 마음건강의 중요성이 커지 고, 마음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겁니다.” 그는 ‘꿈 너머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의사가 되어서 불쌍한 사람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것은 ‘꿈 너머 꿈’이다. 그리고 그 꿈 너머 꿈이 위대할수록 꿈을 이룰 수 있는 확률도 높 아진다고 한다. “인생 디자인을 시작하는 시기의 청년들에겐 꿈 너머 꿈이 필요해요. 꿈을 이루기까지는 자기 중심적이어야 하죠. 그 이후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백만장자가 되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건 시시하잖아 요. 저희 프로그램에 오신 한 CEO가 본인의 꿈이 세계 최고의 기업인이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랬 어요. ‘세계 최고의 기부자를 꿈꾸십시오. 그러면 세계 최고의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은 저절로 되겠지요?’ 라고요. 꿈 너머 꿈이 멋있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꿈 너머 꿈 덕분이에요. 꿈 너머 꿈이 멋있고 공적이고 이타적이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생겨요. 고상하고 힘있는 사람이 꼭 생깁니다.” 기획: 김민희기자 l 사진: 김선아